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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Apr 11. 2024

<바흐의 평균율> 없는 음악 감상실 ‘平均律(평균율)’

달라서 선택받는, 색다른 평균을 만들어내는 LP Bar – 평균율

요즘은 PC-Fi로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데 그러다 가끔 정말 하이엔드급 기기로 전달되는 제대로 된 소리를 듣고 싶을 때, 음악감상실을 찾는다.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압구정의 “몽크투바흐”로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장의 취향이 오롯이 벤 제대로 된 클래식과 재즈를 아주 좋은 하드웨어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홍대, 을지로 등에 있는 올드 감성 감상실도 가끔 찾는데 보유한 음반, 음원도 막강하고 사용하는 기기들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좋은 경우가 많다. 이런 곳을 갈 때, 항상 같이 가는 클래식 멘토가 있다. 거의 30여 년 간 클래식 음악을 공부시켜 주는 형인데, 이번에는 아주 독특한 감상실이라면서 을지로 3가에 있는 ‘平均律(평균율)’이라는 곳을 소개했다.

 “평균율”. 가게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바흐의 평균율>이 떠올랐고 형의 취향이 반영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입구에 달린 작은 간판에 심플하게 적힌 “Vinyl Music coffee & bar”로 정체성을 가늠케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을지로 길거리 호프도 보이고 바로 밑에 층에 아주 힙해 보이는 타코 가게도 있다. “아, 여기도 힙지로구나.”

오래된 계단을 오르니 더 오래된 철문에 심드렁하니 재즈베이시스트 사진과 가게 로고가 보이는데 여기부터 믹스매치가 시작됐다. 철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나의 직관도 형의 취향도 모두 날아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좁은 공간에 힙한 친구들이 옹기종기 앉아 엄청난 수다를 안주로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고 그 사이로 <비지스> 음악이 흐르고 있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들자마자 <평균율>은 무너졌다. 

혼돈의 메뉴판이다. 마실거리, 먹거리를 고르는 고유의 기능보다는 가게의 정체성과 주인의 음악 선곡 철학이 담겨있다. 몇 가지만 짚어보면 “신청곡은 테이블 당 2곡 한정, 신청 가능 장르는 재즈/보사노바/삼바/소울/블랙뮤직/50-90년대 팝, 최신 가요와 해외음악은 플레이지 하지 않습니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신청곡은 제외될 수 있습니다.” 대박이다. 이런 음악감상실이 있다니. 

정신 좀 차리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두 대의 Technics 턴테이블, 아주 오래된 미국 EV 스피커, 그리고 편하게 꽂혀 있는 LP들, 조리대, 바 그리고 여전히 들리는 비지스. 분명 색다르고 힙해 보이긴 한다. 

맥주가 나오고 “평균율”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이 집만의 감성이 조금씩 보인다. 

하지만 직관이 한 번 무너지니 내가 생각하는 “평균”과의 비교가 슬며시 일어나며 여기에 맞추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다. 어쩌면 축적된 나의 편향에 기인할 수도 있다. 가게 이름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봤다. “평균”.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 이외의 사람들이 가지는 평균과 나의 평균이 같을 수 있을까? 음악감상실은 이래야 해, 혹은 이럴 거야 하는 것은 어쩌면 외부의 무엇이 내 취향에 그저 맞았기에 내 안에서 그걸 받아들이고 내 것인 양한 건 아닐까? 지금 이 공간, 이 시간, 이 사람들, 이 음악은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들 만의 무엇”인 것이다. 


까탈스럽고 덜 친절한 것 같은 그리고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음악 선곡의 범위나 이곳의 분위기가 누군가에겐 낯섦을 넘어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성의 시간이 아니던가? 을지로가 힙해지고 신당동이 관심을 끄는 건, 이전과는 다른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선택받을 만한 그 뭔가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 4월 을지로, 독특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는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평균”일 수 있음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굳이 평균을 좇아 산 건 아니지만 너무 평균에 익숙해진 아재가 일탈할 공간을 하나 만난 것 같아 4월 밤이 나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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