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라떼라는 말을 들으면 공연히 “나”를 생각하는 나이가 됐고 나 역시도 자의 반 타의 반 “One of 꼰대”다. 생각해 보니 재밌는 현상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을 특히 선생님을 “꼰대”라 불렀었다. “담탱이”도 있었지만 꼰대는 선생님의 일상 대명사였고 그들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본인의 부모, 특히 아버지를 꼰대라 불렀다. 영화 <친구>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대학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꼰대”는 한동안 잊혀 있었다.
사회생활을 광고대행사에서 시작했는데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대행사는 소위 튀는 애들, 앞서가는 애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꼰대가 그 안에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꼰대들에게 “꼰대”라고 부르는 애들을 이해하거나 그들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들이 쓰는 말, 약자, 먹는 거, 입는 것들을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라는 묵시의 압력이 있었다. 내 선배들에게 X세대 끝자락인 나를 이해하라고 윗사람들이 어느 정도 종용했던 것 같다.
요즘은 어떨까? 똑같다. MZ에 적응하고 이해하고 디지털에 적응하고 이해하고 30여 년이 지났지만 21세기 꼰대들도 똑같은 노력을 강요받는다. 눈길 닿은 곳 어디서나 MZ 이해하기, 요즘 트렌드, 당신의 꼰대 지수, MBTI, 두아 리파, 빌리 아일리시, 뜨는 디자이너, 애들이 보는 넷플릭스 등을 이해하고 함께 하라고 한다.
왜 꼰대들은 항상 아래 세대를 이해해야 하고 뭔지 모를 뒤떨어짐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꼰대’로 가두리 쳐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가르치려 드는 걸 넘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계선에서 꼰대는 포지셔닝을 잘해야 한다. 강요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틀림과 다름을 다 인정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니는 회사에서 나는 팀장이다. 아마 팀장들 중 최고령일 것 같다. 30대 초 팀원이 있는데 그 친구 엄마가 나랑 나이가 비슷할 정도다. 나는 사실 팀원들에게도 회사 대장에게도 스스로 꼰대라고 말한다. 인정하기 싫은 걸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게 그냥 편해서다. 아닌 척할 필요도 없고 아니라고 해도서 얻어지는 것도 없다. 나 스스로 꼰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맡고 있는 업무가 브랜딩, 마케팅, 콘텐츠 등 트렌드에 민감하고 그럴 잘 해석해 업에 적용하는 일이고 나 스스로 팀원들이나 회사 내 누구에게도 그 부문에서 뒤지지 않고 또 그만큼의 경험과 역량을 지녔다고 자부하고 그런 ‘자뻑’으로 산다.
꼰대인 나는 내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내 생각이 옳다는 믿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는 50줄인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팀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함으로써 내 생각도 발전이 되기도 한다.
꼰대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꼰대의 모습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꼰대 스스로가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어느 시대의 꼰대이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다음 꼰대가 될 세대들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회의에서 회사 대장이 물었다. “팀원들이 자기 보고 꼰대라고 안 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꼰대인데 아니라고 하면 안 되죠. 근데 저는 아주 잘 나가는 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