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새벽은 늘 크게 오지 않고,
조용히 우리 곁에 앉습니다.
밤사이 마음속에 가라앉은 생각들이
아직 이름을 다 얻지 못했더라도,
하루는 먼저 손을 내밉니다.
어제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오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흐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1986년 2월 25일 — 필리핀 ‘피플 파워 혁명’의 결정적 날, 마르코스 정권이 막을 내리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이 된 날
1986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필리핀 마닐라 EDSA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2월 25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권좌에서 물러났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이 되며
역사는 한 시대의 전환점을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날을
혁명, 승리,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이름 아래에는
거리로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떨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웠지만 물러서지 않은 마음.
혼자면 약하지만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
역사는 결국,
한 번의 거대한 함성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숨이 모여
흐름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한 어르신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졌지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차들은 멀리 멈춰 있었고,
길은 분명 열려 있었는데도
몸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학생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천천히 가셔도 돼요. 같이 건널게요.”
어르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나란히 길을 건넜습니다.
빠르지 않았습니다.
눈부신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건넘 속에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오늘의 기적은
멀리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멈춘 발을 다시 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세상을 이기려는 마음보다
내가 포기하지 않게 하는 마음을 주소서.
들이마십니다.
내 안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머뭅니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자리에서.
내쉽니다.
조급함을,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굳은 힘을.
나는 자주
길이 열려 있어도
마음이 먼저 겁을 냈습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지금 나서면 늦을 것 같다고,
혹은 너무 늦었다고.
그러나 오늘은 알게 하소서.
삶은 한 번에 건너는 강이 아니라,
한 걸음씩 건너며 배우는 강이라는 것을.
가라앉게 하소서.
남과 비교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맑아지게 하소서.
내 발밑에 이미 놓여 있는 다음 한 걸음을.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서두름보다 다정을 건네게 하시고,
나 자신에게도
채찍보다 따뜻한 격려를 먼저 건네게 하소서.
저녁이 오면
나는 조용히 말하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멈춘 곳에서 다시 걸었다.”
비록 천천히 갔어도,
내 삶의 길 위에서
나는 분명
흐름 쪽으로 걸어갔음을.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을 믿고 건너가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