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5일
오늘을 맞이하며,
나는 조용히 커튼을 걷습니다.
밤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는데도
빛은 이미 창가에 와 있습니다.
세상은 늘 이렇게
조금 먼저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어제의 마음이 아직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흐린 물이 가라앉듯
생각도, 감정도
시간을 만나면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무언가를 빨리 해결하려 하기보다
한 번 더 숨을 고릅니다.
삶은 언제나
서두르는 사람보다
흐름을 믿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44년 3월 15일 — 로마의 ‘이드스 오브 마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날
그날 로마에서는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쓰러졌습니다.
역사는 그 사건을
배신과 권력의 이야기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그날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힘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인간의 삶은 결국
흐르는 시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을.
아침 산책길에
한 아이가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약해서
연은 자꾸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 실망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한 번 불었습니다.
연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아이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연이 하늘에 머무르는 것은
줄을 잡는 힘 때문이 아니라
바람을 만나는 순간 때문이라는 것을.
삶도 어쩌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붙잡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우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
어딘가에서 찾아옵니다.
오늘,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하소서.
들이마십니다.
어제의 걱정과 피로를.
잠시 머뭅니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자리에서.
내쉽니다.
나를 재촉하던 조급함을.
가라앉게 하소서.
비교하는 마음을.
맑아지게 하소서.
내 삶의 흐름을 믿는 평온을.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두른 판단 대신
조용한 이해를 건네게 하시고,
내가 걷는 길 위에서도
결과를 붙잡기보다
과정을 사랑하게 하소서.
나는 오늘
세상을 크게 바꾸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삶은 언제나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맑아지는 순간부터
다시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많이 이루지 못했어도
내 마음을 흐름 속에 두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