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4일
오늘을 맞이하며,
나는 마음의 온도를 느껴봅니다.
조금 식어 있는 부분,
조금 굳어 있는 부분,
어딘가 아직 열리지 않은 곳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조금씩 닫히기도 하고,
조금씩 굳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언가를 더 하려 하기보다
이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보려 합니다.
삶은 결국
더 잘 사는 방향이 아니라,
더 따뜻해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1915년 4월 24일 —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시작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고통받았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서로에게 너무 차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억을 통해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마음을 두어야 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세상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다시 따뜻해지려는 선택이라는 것을.
오늘,
길을 걷다가
작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어른이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달래지도 않았고,
급하게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손을 잡고
같이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풀리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기적은
어쩌면
그 ‘같이 서 있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오늘,
따뜻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마음을 주소서.
들이마십니다.
어제의 굳어버린 마음을.
잠시 머뭅니다.
열리지 않았던 부분을 느끼며.
내쉽니다.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는 여지를.
나는 종종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았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지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합니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따뜻하게.
가라앉게 하소서.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을.
맑아지게 하소서.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온기를.
오늘 하루,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조금 더 따뜻해지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저녁이 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많이 바꾸지 않았지만
조금 더 따뜻해졌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강해지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따뜻해지기를 선택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