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4월 24일
1904년 4월 24일 출생 / 1997년 3월 19일 영면
빌럼 드 쿠닝은
세상을 단정하게 정리해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기보다
대상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부서지고,
다시 살아나는지를 그리려 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붓질은
매끈하지 않았다.
선은 자주 갈라졌고,
형태는 쉽게 붙잡히지 않았으며,
색은 충돌하듯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더 뜨거운 생명감이 솟아난다.
빌럼 드 쿠닝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추상과 형상을 완전히 갈라놓지 않고,
둘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며
그림이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밀어붙였다.
그의 위대함은
새로운 기법 하나를 만든 데만 있지 않다.
그는 예술이
정답처럼 굳어버리는 순간을 거부했다.
회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싸우고,
계속 태어나고,
계속 변해야 한다고
캔버스 위에서 온몸으로 말한 사람이다.
특히 그의 작품 속 여성상과 도시 풍경,
그리고 추상적 화면들은
아름다움을 고정된 얼굴이 아니라
움직이고 뒤틀리고 살아 있는 힘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드 쿠닝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기보다
회화라는 생물에게
다시 맥박을 돌려준 사람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예쁘게 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살아 있게 그리려 했지요.
선 하나가 떨리고
색 하나가 밀려오고
형태 하나가 무너지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처음 알았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반듯함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빌럼 드 쿠닝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파괴와 창조가
서로 반대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형태를 해체했다.
그러나 그것은
형태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익숙해진 눈을 깨우기 위해,
우리가 대상을 다시 보게 만들기 위해
한 번 부수고 다시 묻게 한 것에 가까웠다.
이 얼굴은 무엇인가.
이 몸은 무엇인가.
이 풍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본다고 믿어온 “현실”은
정말 그렇게 단순한가.
그는 묻고 또 물었다.
붓으로.
지우고 덧칠하며.
밀어내고 다시 끌어오며.
그래서 그의 그림은
편안한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다.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식을 바꾸게 만드는 사건.
우리는 때때로
위대한 예술을
완벽하게 정리된 것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어떤 위대함은
정리를 거부하는 데 있다.
삶 자체가 원래 그렇게 단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간의 감정과 기억과 욕망도
한 번에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끝까지 정직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빌럼 드 쿠닝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혼란을 미화하지 않았지만
혼란 속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
무너짐 속에서도
새로운 형상이 태어날 수 있다고 믿은 사람.
어쩌면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삶이 흐트러졌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들 속에서도
아직 살아 있는 리듬은 남아 있다고.
4월 24일은
형태를 부수는 용기를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생명과 자유를 보여준 사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의 삶은 말합니다.
예술의 위대함은
완벽하게 다듬는 데만 있지 않고,
살아 있는 혼란의 맥박을 끝내 놓치지 않는 데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