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
우리는 달력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시작합니다.
북을 울리거나 깃발을 세우지 않고,
그저 오늘의 공기처럼 담담하게.
하루의 기도문은 거창한 말을 모릅니다.
대신, 빵집 앞의 따뜻한 인사,
횡단보도에서 몸을 먼저 낮추던 손짓,
병원 복도에서 “조심하세요” 하고 건네던 종이컵 같은
작은 온기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이 가슴에 닿는 순간,
마음은 천천히 평온을 되찾고,
행복은 소리 없이 돌아옵니다.
이 글들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하루가 너무 무거울 때
어깨 위에 가만히 얹는 가벼운 손처럼,
밤이 길어질 때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불빛처럼,
그저 곁에 있으려 합니다.
읽는 동안 숨이 고르고,
끝나고 나면 한 걸음 덜 급해지기를.
오늘 9월 10일부터,
우리는 매일 그날의 이야기를 한 줌 떠 올려
기도의 언어로 바꾸어 보려 합니다.
어제의 파문은 천천히 가라앉고,
내일의 불안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당신의 눈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당신의 말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기도문이 당신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었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오늘의 문장을 건네 주세요.
문 앞에 놓는 따뜻한 물 한 컵처럼,
먼 길을 돌아온 이에게 내어주는 의자처럼,
그 사람의 하루도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당신이 전해 준 그 온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밤을 밝힐지 모릅니다.
우리는 완벽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일,
조금 더 맑아지는 쪽을 향해 걷겠습니다.
흔들려도 가라앉을 줄 알고,
가라앉아도 다시 맑아질 줄 아는 마음으로.
오늘부터—
당신의 하루가 부드럽게 시작되고,
누군가의 하루가 당신 덕분에 덜 외롭기를.
1977년 오늘, 프랑스 마르세유 보메트 교도소에서 하미다 잔두비가 단두대로 처형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에서 단두대가 마지막으로 쓰인 날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휘둘러 오던 칼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문명은 더 나은 정의를 위해 때때로 멈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숨을 들이마십니다.
나는 오늘, 칼날보다 먼저 멈춤을 꺼내 들기로 합니다.
말을 쥐던 손, 판단을 들고 서 있던 마음, 그 겨드랑이에 든든히 숨을 끼워 넣습니다.
칼집에 칼을 넣듯, 날 선 문장을 한 글자 뒤로 미룹니다.
아침 횡단보도에서 아이의 신발끈이 풀려 있었습니다.
초록불이 깜박이며 시간을 재촉했고, 골목에서 자전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몸을 낮춰 끈을 쥐고,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손을 보태 주었습니다.
자전거는 급히 브레이크를 잡고, 아이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았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고개를 숙이는 예의로 말 대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알았습니다. 세계가 부서지지 않게 붙드는 힘은, 용감한 돌진이 아니라 짧은 멈춤이라는 것을.
연못의 물결처럼 마음도 한동안 출렁입니다.
뉴스의 자극, 상처 준 말, 오래된 미움의 그림자—
그 모든 칼날이 내 안을 스쳐 가지만, 나는 오늘 피하지 않고 앉아 보기로 합니다.
출렁임이 제 모양을 잃어갈 때까지, 내 숨을 원의 중심처럼 붙잡고.
나는 내 안에서 작게 기도합니다.
오늘, 내 입술이 먼저 멈추고
내 눈빛이 먼저 부드러워지고
내 손이 먼저 내려놓게 하소서.
내가 옳았다는 증명을 미루고
상대의 사연이 지나갈 길을 열어 주게 하소서.
법이 칼날을 거둔 날을 기억하듯
나도 내 언어의 칼을 거두어
누군가의 마음을 처벌하던 습관을
조용히 끝내게 하소서.
나는 배웁니다. 정의는 반드시 처벌의 모양만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을 살리는 정의는, 때로 끝이 아니라 끝내지 않음으로,
단호함이 아니라 단호한 자비로 걸어온다는 것을.
오늘 내가 택한 멈춤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고
내 안의 어둠까지 덜어갈 수 있음을.
숨을 내쉽니다.
칼날이 멈춘 자리에 말이 시작되고,
말이 멈춘 자리에 침묵의 이해가 시작됩니다.
나는 오늘도 배웁니다—
흔들려도, 가라앉을 줄 아는 사람으로.
가라앉되, 다시 맑아지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