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최면으로 치료하는 방법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길. 18장. 동물 복지와 최면의 경계선

by 토사님

5부. 윤리, 과학,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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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동물 복지와 최면의 경계선

동물 권리, 치료자의 윤리적 책임

안전성과 부작용 관리


18-1. 최면의 힘보다 중요한 것 ― ‘존중의 시작’

“당신이 아무리 고요해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억압이 된다.”
이 문장은 모든 동물 최면가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서문이다.


최면은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예술이다.
우리가 손끝으로 전하는 부드러운 압력, 목소리의 낮은 파동,
그 모든 것은 결국 “너는 안전하다”라는 메시지의 변형일 뿐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진짜로 닿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존중(Respect)**이다.


존중이 없는 최면은 ‘복종’이 된다

복종은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침묵이다.
하지만 존중은 사랑으로 태어난 고요다.
두 현상은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에너지가 완전히 다르다.


복종은 눈을 내리깔고 명령을 기다리게 하지만,
존중은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최면은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쉬는 것’이다.
당신의 숨결이 강아지의 숨결과 닿을 때,
그 호흡의 리듬이 서로를 감싸며 공명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야 비로소 강아지는 “이 사람은 나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인식이, 바로 진짜 최면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자물쇠다.


“멈출 수 있는 용기” ― 치료자의 품격

진짜 치료자는 언제 시작할지를 아는 사람보다,
언제 멈출지를 아는 사람이다.


강아지가 몸을 살짝 비틀거나, 고개를 홱 돌리거나,
눈을 반쯤 뜨고 멈칫하는 그 미세한 신호—
그것은 “조금 숨이 막혀요”라는 말 없는 부탁이다.


그때 손을 멈출 수 있는 사람,
목소리를 낮추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가 진짜 치유자다.


최면의 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멈춤의 감도다.
당신이 그 침묵을 존중할 때,
강아지는 비로소 진짜로 쉰다.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향기’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오늘은 최면이 잘 안 먹혔어요.”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오늘 얼마나 ‘편안한 존재’였는가?”


최면의 힘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품질에서 온다.


조용히 앉아 있는 당신의 어깨,
너무 조급하지 않은 호흡,
그 모든 것이 강아지의 신경계를 조율한다.
그가 당신의 마음결을 느끼며 눈을 감는 순간,
그것이 바로 최면의 완성이다.


결국, 최면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동물을 진정시키는 법을 배우는 동안,
사실은 우리 자신의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을 향한 존중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연습이 된다.
왜냐하면 마음이 맑은 사람만이
다른 존재를 평화롭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 구절

“최면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존중이 따뜻할수록, 신뢰는 깊게 잠든다.”



18-2. 동물 권리의 철학적 배경 ― “그들은 느끼기에, 존재한다”

1. 생명은 언어보다 먼저 느낀다

인간은 언어로 세상을 구분하지만,
동물은 감각으로 세계를 통합한다.


당신이 “괜찮아”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은 이미 당신의 숨결의 온도와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읽고 있다.


이것이 ‘권리’의 철학적 출발점이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도덕적 고려의 기준이다.”


그 말은 단순하지만, 세상을 뒤흔들었다.
권리란 말로 얻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음으로써 이미 가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2. ‘인간 중심’에서 ‘감각 중심’으로

오랜 세월, 인간은 “이성”을 기준으로 우위를 주장해왔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인간이 더 높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성보다 먼저 깨어나는 것은 감각이다.
감각은 모든 존재의 공통 언어이며,
그 안에서 인간과 동물은 대등한 파동을 공유한다.


최면의 본질 또한 감각이다.
말보다, 명령보다, 진동과 리듬이 먼저 닿는다.
그 진동은 ‘지배’의 통로가 아니라, ‘공감’의 다리다.


3. 권리는 ‘허락’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

많은 사람들은 동물에게 ‘권리를 주자’고 말하지만,
사실 권리는 주는 것이 아니다.


권리는 이미 그들 안에 있다.
인간이 할 일은 ‘인정’이지 ‘부여’가 아니다.


그렇다면 최면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권리를 인정하는 태도는 이렇게 드러난다:

“할 수 있다”보다 “해도 될까?”를 먼저 묻는 마음.

반응을 강요하지 않고, 침묵도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결과”보다 “관계의 평화”를 우선시하는 결정.

이런 태도 하나하나가 윤리적 최면가의 뼈대를 만든다.


4. 공명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동물은 인간을 모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명한다.


공명은 같은 파동으로 서로의 존재를 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최면은 ‘조종’이 아니라 ‘공진(共振)’이다.


이때 보호자와 동물의 관계는
지배–복종 구조를 넘어선다.
그것은 두 생명이 서로의 진동수를 맞추는,
하나의 영적 호흡이 된다.


5. 철학이 향하는 자리 ― “같은 생명의 온도”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회복되는 존재다.


그들이 눈을 감는 순간,
우리의 불안도 잦아들고,
그들이 안정될 때,
우리의 심장도 고요해진다.


이것이 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실이다 —
“동물은 우리가 잃어버린 평화를 대신 느껴주는 존재*라는 것.


마무리 구절

“권리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두 존재가 같은 온도로 숨 쉬는 순간,
이미 실현되고 있다.”


18-3. 최면 중 발생할 수 있는 생리적·정신적 위험

주제: “이완”과 “무기력”은 다르다

최면을 통해 동물이 깊이 이완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경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완(relaxation)’과 ‘무기력(helplessness)’은 전혀 다른 상태입니다.
이 둘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치유가 아닌 방어적 복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1. 스트레스성 무기력과 혼동 금지

동물이 최면 유도 중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편안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과거에 학대를 받았거나 통제에 익숙한 동물은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상태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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