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모 소년: 전교 꼴찌의 반란

“숨만 쉬었을 뿐인데, 성적이 불타올랐다”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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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의 작별

책방은 조용했다.정확히 말하면, 비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지훈은 마루에 섰다. 눈앞엔 도사님이 있었다. 그는 커다란 책장을 텅 비우고 있었다. 책이 빠져나간 자리는 세월이 빠져나간 자리처럼 휘어져 있었다.

“...이사 가세요?”지훈이 물었다.

도사님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내가 가는 건 아니고, 너를 더 이상 붙잡지 않기로 한 거지.”

지훈은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그저 입 안에 **‘왜요’**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 말은목구멍까지 갔다가도사님의 다음 말에 밀려 돌아왔다.

“나는 지금껏 너를 가르친 적 없어.”

“…네?”

도사님이 처음으로 지훈을 바라봤다.그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는 떠날 준비가 끝난 자의 평온함이 있었다.

“너는 그냥, 네 안에 있던 지식을 꺼낸 것뿐이다.”

그는 책 한 권을 지훈에게 건넸다. 표지는 없고, 제목도 없고, 그냥 오래된 공책이었다.

“앞으론 여기다 너만의 방법으로 공부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불 붙일 수 있을 거다.”

지훈은 그 책을 받았다.그건 마치 성냥 한 갑 같았다.

그리고 도사님은, 그저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깐, 봄 햇살이 책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도사님의 등이 멀어질 무렵, 지훈은 문 위에 붙은 손글씨를 봤다.

“이제 너는 네 공부를 해라.”

다른 말은 없었다.그걸로 충분했다.이별은 설명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새벽, 혼자 떠오른 생각

지훈은 눈을 떴다.알람은 울리지 않았고, 새는 울지 않았다. 단지, 무언가가 그를 깨웠다.

심장은 조용했고 ,머리는 묘하게 맑았다. 마치 어젯밤 꿈이 아직 잔상처럼 붙어 있는 기분.

책상에 앉았다. 책은 없었다.시험지도 없었다.그저, 도사님이 준 공책 한 권.

지훈은 그것을 펼쳤다. 첫 장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 하얀 페이지는 무서웠다. 왜냐면, 그 위에 무엇이든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펜을 들었다.그리고 아주 천천히글자를 눌러썼다.

“지식은 감정의 조각이다.”

그 순간, 밖에서 햇살이 부서지듯 들어왔다.지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나뭇가지 끝에 이슬방울 하나, 그 위에 빛이 맺혀 있었다.그 건 마치, 그가 방금 쓴 문장이 물리화된 것 같았다.

지훈은 웃었다.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좋아.오늘은 공부하자.”

누가 시키지 않았다. 누가 보지 않아도.이젠, 자기가 자기에게 물어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절대 시험에 안 나오는 것이지만—삶에는 반드시 나오는 문제였다.


전국 모의고사 안내방송

7교시의 하품 같은 시간은 지나고, 교실은 잠깐의 무장을 끝낸 전장처럼 조용해졌다.

방송이 울렸다.

“지금부터 전국 연합 모의고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살짝 딱딱해졌다. 마치 분필 가루가 무게를 얻은 것처럼. 누군가 숨을 삼켰고, 누군가는 그 숨까지도 암기하려는 눈빛을 뿜었다.

지훈은 펜 한 자루, 작은 노트 한 권, 그리고 시나몬 캔디 한 알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반면 동준은 펜 5자루, 기출문제집, 검은색 수정테이프, 심지어 눈빛에서 “너는 틀릴 것이다” 같은 광선이 나왔다.

지훈은 그 눈빛에 대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복습한 게 아니라…살아낸 걸 시험 본다.”

그리고 시나몬 캔디의 껍질을 벗겼다.그 사르륵— 하는 소리가마치 비장의 필살기를 발동하는 주문 같았다.

시험지가 돌았다.긴 종이 위의 질문들은 멀리서 보면 그냥 잉크고 활자지만, 지훈에게는 그 잉크들이 다 기억, 감정, 장면, 냄새, 사람들이었다.

동준은 기계처럼 문제를 스캔하고 있었고, 지훈은 눈을 감고, 기억궁전의 문 하나를 열고 있었다.

‘국어는 창가. 사회는 시나몬.수학은 왈츠. 과학은 손가락 끝. 그리고 나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한 줄로 정리했다.

“나는 지금, 세계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나를 믿는 시험을 보는 중이다.”

그러고는, 첫 문제를 펼쳤다.

국어 시간: 감정 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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