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요새를 수리하는 밤

by 문단

겨울은 방구석부터 온다.

20시간째 전기장판 위에서 눅눅하게 몸을

지지고 있다 보면, 내가 사람인지 이불의 일부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방 안 공기는 이미 숨결에 절어 퀴퀴한데, 창문을 열 생각은 죽어도 안 든다.

어차피 지금의 나로선 이 방을 벗어날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넘기다 영상 하나가 걸려든다.


300억짜리 펜트하우스라나.?




화면 속 대리석은 지나치게 매끈했고,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서울 야경은 현실감각을 잃을 만큼 번쩍였다.

나는 그 화려함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내 협소한 생활의 잣대를 그 요새 안으로 들이밀며 결함들을 집요하게 골라내고 있었다.


“아니, 저런 집은 고층이라 창문이 하나도 안 열리잖아. 환기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기계가 공기 순환시켜 준다지만, 그게 진짜 바람이랑 같나?”


가관이다.
배달 음식 하나 시켜도 그 먼 로비까지 직접 내려가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혀까지 찬다.


“돈을 저렇게 쓰고도 참 불편하게 사네. 배달 봉투 하나 문 앞까지 바로 안 오는 집이 무슨 300억이야.”




나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그 집의 설계 결함을 지적하고, 동선의 비효율을 걱정한다.

마치 내일 당장 그 집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의 ‘불편함’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적 속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창문이 안 열리는 게, 기계 환기 시스템이 자연 바람보다 못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 주인은 그 답답한 공기 속에서도, 이미 자리 잡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니 책상 위엔 가스비 고지서와 붉은 글씨가 찍힌 독촉장이 널브러져 있다.

하루하루 빡빡하게 돌아가는 내 현실은 이 화면 밖에서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저 멀리 닫힌 창문 걱정을 하며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었을까.


이건 비웃음도, 비참함도 아니다.

그냥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그 쓸데없는 분석이
내 방치를 정당화하려던 투명한 의도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웃음이 나는 거다.


가질 수 없는 것에 흠집을 내어 나의 그늘을 지우려 했던 비겁한 시도.



영상이 끝나고 액정이 검게 죽으면, 화면 속에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초라한 인간 하나가 남는다.

야경은 눈부셨는데, 지금 내 앞에는 어제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와 기한 지난 고지서들만 뒹굴고 있다.


나는 저 집 창문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300억짜리 집 창문이 안 열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이 이 눅눅한 이불 속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닫힌 창문 뒤에서도 치열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도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어 스스로를 가둔 채 안도하는 나.



나는 다시 영상을 켠다.

이 지독한 자각을 잊으려면 또 다른 집의 흠집을 찾아내야 하니까.

상상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사치지만, 그 대가로 내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액정이 다시 검게 죽으며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질문 하나가 고여 있다.



그래서, 네 인생의 창문은 언제 열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