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스페인, 10만 원의 알리바이

by 문단

세상은 참 쉽게도 말한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그 말은 대개 돈 걱정 없이 슬퍼할 여유가 있거나 적어도 친구의 부조금을 내기 위해 자신의 끼니를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자들의 안온한 수사학이다.


진짜 돈이 없을 때, 인간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고결한 정신이 아니라, 추잡하고도 정교한 거짓말의 설계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6월 19일, 초여름의 열기가 습하게 차오르던 오전 8시 21분. 친한 친구로부터 부고 문자가 날아왔다.


액정 너머의 슬픔은 선명했지만, 내 잔고의 숫자는 그보다 더 비정했다.



37,000원.




그 숫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좁은 방 안을 수십 번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했다.


가야 한다, 가서 친구의 손을 잡아야 한다.


머릿속은 온통 장례식장으로 향해 있었지만, 발은 현실의 족쇄에 묶여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지 그들은 전혀 모른다. 그저 내가 어디선가 제 몫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을 거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무지함은 다정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철저히 고립시켰다. 내가 겪고 있는 번아웃과 경제적 파산은 오직 나만의 비밀이었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는 더 완벽한 타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15시간이 흐른 밤 11시 40분. 지하철은 이미 끊겼고, 밖으로 나가려면 몇만 원의 택시비를 감당해야 하는 자정의 문턱에서 나는 비로소 답장을 보냈다.


“계좌번호 보내줘 못 가봐서 미안해 스페인에 있어서 이제 카톡봤음ㅜ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실 수중에 있는 37,000원이면 택시를 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을 택시비로 지불하고 나면 내 손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전 재산을 길바닥에 뿌리고 돌아오는 길의 그 막막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시차 따위는 계산할 지능도 없었다. 왜 하필 스페인이었을까. 마침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지인의 SNS 사진이 내 무의식에 박혀 있었나 보다.


내 비참한 방구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곳.


나는 그렇게 친구를 속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초라함을 가리기 위해 ‘스페인’이라는 가상의 영토로 나를 망명 보냈다.






사실 10만 원은 보내지 않는 게 맞았다.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남의 장례식에 보낼 10만 원은 사치이자 만용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그 돈마저 보내지 않으면 정말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억지로 돈을 빌려 송금 버튼을 누르기까지 다시 37분의 시간이 흘렀다. 6월 20일, 오전 12시 17분.


친구가 보내준 부고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 계좌번호를 확인한 뒤, 마침내 송금을 완료하고 나는 다시 카톡을 보냈다.


“링크 누르니 계좌 나와서 보냈어.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사셨음 좋았을 텐데 암튼 맘 잘 추스르고 좋은 곳 가셨을 거야.”






이 37분은 우정을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 거짓말을 ‘사실’로 세탁하기 위한 비굴한 행정적 절차였을 뿐이다. 10만 원으로 우정의 외피는 지켰지만, 정작 내 몸은 눅눅한 방 안에서 꼼짝달싹 못 하는 박제가 되었다.





송금 후 돌아온 친구의 ‘하트(❤️)’ 이모티콘을 보며 나는 씁쓸한 안도를 했다.


​“들키지 않았다. 나의 지질함도, 택시비가 무서워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친 나의 비겁함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그 말이 위로로 작동하지 않는 자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왜 그 밤에 택시 한 대를 편히 잡지 못했나.


왜 나는 친구에게 “돈이 없어서 못 가”라고 정직하게 말하지 못했나.



돈은 전부는 아닐지 모르나,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자격’이었다.



그 자격증이 없는 나는 몇 년 전 그 여름밤, 서울의 방구석에서 스페인의 시차를 연기하며 그렇게 서서히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