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식 파킹 브레이크(EPB), 정말 비상시 멈춰줄까?
시속 100km로 내달리던 차량, 브레이크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 운전자는 당황한 채 운전대를 움켜쥐고 주변을 살핀다. 그 순간, 손끝에 닿는 건 작고 눈에 띄지 않던 버튼 하나. 'P'자가 적힌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다.
이 버튼이 정말 차량을 멈춰줄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들까?
전자식 브레이크, 단순한 주차 장치가 아니다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는 원래 차량을 정차 상태로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다. 기계식 브레이크 대신 버튼 하나로 작동되는 이 시스템은, 대부분의 차량에서 뒷바퀴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일부 모델에서는 주행 중 버튼을 길게 누를 경우, 별도의 안전 알고리즘이 작동하며 비상제동 모드로 전환된다. 이때 차량의 제동 시스템은 네 바퀴 모두에 제동력을 분산시켜 차량을 멈추는 방향으로 제어한다. ABS가 바퀴의 잠김을 막고, 차체 제어 장치(ESC)가 차량의 방향을 안정시킨다.
정말 멈출 수 있을까? 실험은 말해준다
실제로 독일에서 진행된 한 테스트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며 주목을 받았다. 전자식 브레이크를 이용한 비상정지 실험에서 차량은 큰 충격 없이 안정적으로 멈췄다. 실험 차량은 고속으로 주행 중이었으며, 운전자는 EPB 버튼을 3초 이상 길게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하다. 많은 운전자들이 이 버튼의 용도를 '주차 시 쓰는 보조 장치'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버튼 하나가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차마다 다르다, 반드시 매뉴얼 확인을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모든 차량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쏘나타나 기아 K5와 같은 일부 차량은 EPB 버튼을 당기고 있는 동안만 제동이 걸리며, 손을 떼면 곧바로 해제된다는 점이 매뉴얼에 명시돼 있다.
또한 차량이 완전히 멈춘 뒤에는 자동으로 주차 브레이크가 체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면 어떤 SUV는 버튼 하나로 꽤 강한 제동력이 작동되며, 세단은 비교적 부드러운 감속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소비자안전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차종마다 제동 거리의 차이가 컸고 반응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시도하면 위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기능은 '실험용'이 아니라 '비상용'이라는 점이다. 평상시 호기심에 이 버튼을 누르거나 장난처럼 테스트하면 자칫 차량에 손상을 줄 수 있고, 뒤따르던 차량과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제조사들은 사용설명서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주행 중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는 긴급 상황 외에는 사용하지 말 것.” 이 경고는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자동긴급제동 시대, EPB는 여전히 유효한가
2024년부터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에서는 AEB(자동긴급제동) 시스템 장착이 의무화됐다. AEB는 차량이 전방의 충돌 위험을 감지하고, 운전자 개입 없이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그렇다면 EPB는 시대에 뒤처진 장치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AEB가 차량 스스로 판단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면, EPB는 운전자의 의지로 제동을 거는 수동 장치다. 급발진이나 전자제어 이상 상황처럼 AEB가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EPB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작지만 결정적인 그 순간을 대비하자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대비는 언제나 부족하다. 하지만 전자식 브레이크처럼 작지만 강력한 기능을 알고 있다면, 그 위기의 순간에서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
내 차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금 한 번 차량 매뉴얼을 꺼내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항목을 확인해보는 게 나쁘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