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호두껍질의 내면

by 성장노트

5년 만에 다시 만남이 재개되는 이 시점에도,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남편은 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에 잘 풀어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아버님은 5년 전 제명 선고가 무색하게도 “며느리가 먼저 연락해야 한다”고 남편을 재촉하셨고, 어머님은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고고하게 계셨다. 마치 자신이 쌓아 올린 성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으로 들어와 알아서 질서를 회복하라는 신호처럼.




#상담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역할

상담사는 내게 분명하게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가족이 아닙니다.
그분이 평생 유지해 온 ‘완벽한 여성’의 세계를 대신 관리해 줄 기능적인 존재에 가깝습니다.”


시어머니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단정하고 흠 없는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삶의 결과물로 잘 키운 아들을 결혼시키고, 주말마다 손주들이 찾아와 집을 채우고, 그 모습을 주변에 보여주며 ‘내 인생은 성공적이었다’는 증명을 하고 싶어 하셨다.


문제는, 그 무대를 직접 운영할 에너지는 더 이상 없다는 점이었다. 체력도, 경제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집안의 중심이라는 지위만큼은 내려놓고 싶지 않은 상태. 그래서 갈망했던 순간이 바로 모든 업무는 며느리에게 이양하고, 권위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계셨기에, 겉으로는 늘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 말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며느리인 내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말해주기를 몸서리치게 기대했다.

“아니에요, 제 일이에요. 제가 할게요.”




#며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자리

실제로 나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만삭일 때도, 첫 아이를 낳고 하루 종일 아이만 케어하느라 잠도, 끼니도 챙기지 못하던 시기에도.


참다 못한 시누이는 말했다.

“그냥 다 해.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할 일을 하고,
‘아기도 어린데 힘들게 왜 이런 걸 했어’는 우리가 해줄 말이야.”


그 말 속에는 명확한 서열 인식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기능해야 하는 위치였다.




#남편이 서 있던 자리

상담을 통해 더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아들이자, 자기 자신이자, 남편을 대신해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였다. 한을 쏟아내고 위로 받고, 몰아치는 감정을 쏟아내도 늘 그 자리에 있어주던 기둥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5년의 단절이 지나고 아무 설명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가도 아무 질책 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가족으로서의 복귀가 가능했다.


반면 나는 다르다. 나는 그들의 자식도 아니고, 그 가족의 정서적 복원을 책임질 의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부모에 대한 흉을 보지 않았고, 남편이 “미국에 계셔서 못 뵙는다”고 둘러대는 거짓말에도 침묵으로 협조했다.


그들이 나 없이 평화로운 재회를 하는 것까지는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예상한 일이었고, 걱정도 없었다.




#변하지 않은 구조 앞에서의 고민

다만 한 가지가 남았다. 5년 전까지 시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나를 성에 차지 않아하셨고, 그 곳에서 나를 지키고자 하는 남편의 모습에 이성을 잃으며 “연 끊자”는 말을 습관처럼 하셨다, 그렇게 감정을 가감없이 쏟아내고 판을 벌리는 역할은 늘 어머님이 맡으셨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언제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시 행복한 가족의 외형을 만들어 드리는 것. 그것이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시댁 식구들의 오래된 발상 앞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나는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높은 성 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존엄과 자존심을 지키는 분이고, 그 존엄을 모두가 지켜드려야만 이 가족이 유지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서 가족이 아닌 내가 어디까지 해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반드시.





시어머니의 은혜는 남편이 받고, 어질러진 관계를 수습하는 일은 여전히 내 몫으로 남겨진 이 구조.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는 나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되묻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근본 원인과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평생 말이 통하는 나에게만 기대려는 이 가족이 버겁게 느껴진다.


나는 그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일지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선까지만 하고 싶다.


이제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인 남편이 불안하지 않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미치지 않고,
나를 잃지 않고,
우리 가정을 지키며
이 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다.


5년의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변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나만큼은 변해야 한다.

그래야 5년 전과는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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