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의 질곡을 뚫고 자신에게 부여된 명을 향해 운전해 가는 것
운명이란 길흉의 질곡을 뚫고, 자신에게 부여된 명을 향해 끝내 운전해 가는 것이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운이 좋다는 말은 흔히 편하고 수월하고, 막힘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오해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운은 정반대였다. 운이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다.
눈앞에 가시밭길이 분명히 보이는데도 피하지 않고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가 시켜서도, 속아서도 아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이 먼저 들고, 그게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때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시댁이 평탄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아주 일찍 직감했다. 어느 하나도 일반적이지 않았고, 어느 하루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가시가 보인다고 해서 돌아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말리는 것조차 나에게 또 하나의 가시가 될까 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신중하고 배려 깊은 부모님에게도 그 침묵은 또 하나의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말리지 않는 선택 역시, 부모에게는 용기가 필요했을 테니까.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밤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소동과 그 불을 끄느라 고군분투하는 내가 정말 괜찮은 건지 걱정되어, 부모님은 새벽마다 내 방문을 열어보곤 하셨다. 자고 있는지, 아직 무너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서야 잠자리에 드셨다.
어느 날 아빠가 딱 한 번만 묻겠다고 하셨다. 이 결혼을 꼭 해야겠냐고. 나는 엄마아빠까지 반대하시면 내가 더는 버틸 힘이 없을 것 같다고, 그러니 부디 말리지 말고 응원해달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묵묵히 우리의 편이 되어주셨다. 아무 말 없이, 그리고 단 한 번도 뒤돌아서지 않았다.
남편 역시 나와 함께 가시밭길을 걸었다. 가족 없이 결혼식장에 들어갈 각오까지 하면서. 그 선택을 보며 나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 사람은 최소한, 나를 혼자 두지는 않겠구나. 부모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게 이해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설득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견뎌온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 준비 과정에서 겪은 모든 시련은 결혼 생활에서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버텨내기 위한 예행연습 같았다. 결혼 후에 겪는 시련 역시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고 받아들인다. 이 세상에 길흉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한 사람이 이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정한 사람이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처음 품었던 뜻을 꺾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이다.
강한 운을 타고난 사람일수록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 극단까지 가봤기 때문에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면, 나는 이 시간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이 가시밭이 나를 꺾기 위한 길이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길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길 끝에는 분명히 우리 가족에게만 주어질, 아주 강한 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