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나의 글은 절벽에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날개를 확인해온 기록이다

by 성장노트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는 내 삶의 안전한 피난처였다. 속상한 날은 마음을 일기에 쏟아냈고, 행복한 날은 기록해 두고두고 펼쳐보았다. 때로는 마법의 일기장이 되기도 했다. 내가 자는 사이 부모님은 내 일기장에 몰래 와 편지를 남겨주곤 하셨다. 그 편지에는 따뜻한 위로도 있었고,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있었고, “그렇게 속상했구나,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라는 진심 어린 공감도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내 일기장을 읽고 반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기도 했다. 내 일기는 소원을 들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나만의 요술 램프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나는 일기를 멈췄다. 신혼 초에는 내가 내 삶에 들이고 싶지 않은 속상한 일들이 내 일기장에 기록되는 것이 싫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내 일기장을 더럽히는 것 같았다.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은 일기를 쓰며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기 버거워 기록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글은 멈췄고, 거의 10년이 흘렀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평범한 안부도 점점 어려워졌다. 나의 근황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속극과 같았다. 연휴나 주말이 지나고 점심시간에는 “명절은 어땠어?”, “주말에 뭐 했어?” 하며 모두 내 주변에 모였다. 욕해주기를 바란 것도, 불행을 나누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네 잘못 아니야.”라는 말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나 자신도 벅찬 이 삶을, 더 이상 타인에게까지 건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똑같지 뭐”라는 말로 내 근황을 접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마음은 더 서글펐다. 그의 부모이기에, 내 아픔을 털어놓는 것은 그를 다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 부모와 언니에게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생길까 봐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삼키고 또 삼키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사실 나는 기록을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연애 시절에는 남편과의 데이트를 블로그에 적었고, 첫 아이를 낳고는 글 대신 그림으로 마음을 풀어냈다. 글로 쓰면 내가 듣고 다쳤던 마음이 또 한 번 더 다치니 그림으로 일기를 대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스타툰을 해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너무 닮게 그려버린 얼굴 때문에 그만두었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이로인해 또 폭풍이 되어 돌아올까봐.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며 일이 바빠졌다는 핑계도 있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버틸 힘만 겨우 남겨두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또 멈췄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시부모님과의 왕래를 재개하면서였다. 작년 10월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연락을 시작하셨을 때 나는 부랴부랴 2년 전 우리 부부가 다녔던 상담 기록을 펼쳐보았다. 곧 만남이 재개될 것을 직감하자 혼자 들여다보는 것조차 힘들었던 종이들을, 이번에는 벼락치기하듯 반복해서 읽었다.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도 이제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굳은살처럼 아픔을 새겼다. 그리고 정리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할지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켜줄 갑옷을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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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는 박사다. 특히 아팠던 기억은 누가 잊으라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함께 겪고 공감해주었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니 기억이 흐릿해진다. 직접 듣고 겪은 일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많이 휘발되었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는 연민과 고마움, 그리움도 함께 섞여 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기대하기도 한다.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면서 많이 유해지셨고, 아이들도 둘이나 있으니,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남편은 우리 가정을 지키려 하지만, 천륜 앞에서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천륜을 등돌리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남편을 다치게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정신을 차리고 전장에 들어가야 한다. 무너지지 않으면서, 이 관계를 내 삶의 일부로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조부모이고, 남편에게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언제든 꺼내보고, 수정하고, 복기할 수 있도록. 그게 브런치였다.


“누군가 나를 절벽에서 밀었다. 덕분에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글들이 내 삶을 떨어뜨린 기록이 아니라, 날개를 확인하는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가 정말 문제일까?”라는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에 이 글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는다면 좋겠다. 직접 겪지 않아도, 내 기록들을 보고 마음의 갑옷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내 글이 How to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는 없다. 정말 알았다면 이미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나르시시스트 시어머니를 대하는 방법을, 무너지지 않으면서 내 가정을 지키는 방법을. 그래서 이 과정을 기록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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