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는 왜 사랑을 계속 확인하고 싶을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안에 놓인 것들

by 이화윤 Lee Hwa yoon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온 세상이 다른 빛깔로 물든다. 블루나 그레이 색깔이던 일상이 로즈나 핑크빛으로 바뀌고, 길가의 가로수 이파리도, 함께 보는 하늘이나 바다도 새삼 운치있고 사랑스럽다.


그 사람이 곁에 없어도 가슴 어딘가에 닿아 있는 것 같아 괜스레 설렌다.


연애 초기의 아침은 시작부터 다르다. 눈을 뜨기도 전에 그가 생각난다. 어제 나눈 마지막 문자, 헤어지기 직전의 온기, 오늘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그리움이 번진다.


이 감각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이토록 달라지는 걸까


그러다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끊긴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정말 나를 생각하는 걸까. 혹시 마음이 다른 데 간 건 아닐까.' 가슴 밑바닥에서 불안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확인하는가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확인하고 싶어지는 마음. 이것은 사랑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는, 아주 인간적인 불안이다.


아무 이유없이 물어본다. 나를 얼마나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널 아끼고 좋아해. 그 정도야? 아니 하늘만큼, 바다만큼, 우주보다 더. 무덤덤한척 받아넘겨도 속으론 기쁘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솜사탕이나 생우유 아이스크림을 입에 머금는 것 같은 그 찰라의 달콤함.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유일하게 선택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존재적 의미다.



사랑의 희열을 향한 욕망은 사랑에 빠진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지는 순간, 사실 우리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비워진 나의 마음을 다시 채워달라고.


인간은 본래 관계 안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통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점검한다.


사랑을 확인받는 순간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이 화학물질은 사랑에 빠진 시기에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만들고, 연인을 만나고 싶은 강렬한 갈망을 일으킨다.


이게 사랑이구나.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다. 이 세상 단 한사람을 만난 것 같은 충만함이 온몸을 감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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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각을 다시 원하게 되고, 더 자주 확인하고 싶어진다. 사랑을 온전히 받고 싶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열망은 연인들에게 때로 불안이 된다.


그래서 사랑할 때의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상대의 사랑의 증거를 찾는다. 표정, 어감, 답장 속도, 포옹의 깊이와 체온까지.


과거의 사랑이 현재의 사랑을 흔들 때

또다른 이유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절에 닿아 있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묻기 시작한다.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을까. 울었을 때 누군가 와 주었는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외면당하지 않았는지.


그 경험들이 쌓여 우리 안에 하나의 내적 지도를 만든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관계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 지도가 충분히 따뜻하게 채워진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비교적 조용하게 받아들인다.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 반응이 충분하지 않았던 사람은 연인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그 자리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다시 허기처럼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사랑해'라는 말이 들릴 때만 일시적으로 안심하고, 그 안심이 사라지면 다시 불안이 찾아온다. 확인하고, 채우고, 다시 비어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더 깊이 사랑할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이 불안은 나약함이 아니라, 이 관계가 당신에게 그만큼 소중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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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시대가 사랑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많은 연인들의 가장 솔직한 고백일지 모른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확신이 없어서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다.


SNS를 열면 더 다정해 보이는 커플, 더 완벽해 보이는 관계가 넘쳐난다. 우리 둘의 평범한 저녁이 누군가의 빛나는 여행 사진 옆에 놓이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초라해진다.


상대가 잘못한 것도 없고, 우리 사이가 나빠진 것도 아니다. 그저 비교가 불안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 불안은 사랑이 식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은 타인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신호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의 다름도 더 선명해진다. 처음엔 같은 것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 다름은 틀림이 아닌데, 때로는 틀림처럼 느껴진다. 차이가 보일 때마다 관계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렵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일방적인 사랑이든 편중된 사랑이든 사랑의 균형을 잃으면 실패하기 쉽다.


사랑받고 있어도, 선택받고 있어도, 그 선택이 내일도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오늘의 사랑을, 또 확인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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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표현이 가진 진짜 힘

왜 우리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까. 사랑의 초기 단계, 관계의 불안, 그 사회적 뿌리까지 돌아보고 나면 한 가지가 보인다. 연인 사이의 확인과 표현이 쌓일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그만큼 깊고 건강해진다.


존 가트맨은 수십 년간 커플을 연구하며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건강한 관계의 핵심은 거창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애정의 축적이라는 것.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가 가진 힘은, 그 말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진심으로 전해지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방이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작은 신호들 (칭찬, 격려, 감사의 눈길, 미소, 문자, 스킨십 등)이 쌓여 성숙한 애정 관계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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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

애정 표현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가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이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사람이 실제로 나를 덜 사랑하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내 안의 오래된 불안이 다시 깨어난 것인가.


그 구분을 할 수 있게 되는 날, 당신은 상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나 오늘 좀 불안한 것 같아. 안아줘도 돼?"


이 말은 집착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상대에게 정직하게 전달하는 용기다. 이것이 건강한 사랑이 시작되는 방식이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지금, 이 순간, 확인받지 않아도.

그리고 그 사실을 언젠가는 스스로도 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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