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 제도, 관계 그리고 섹스
한국과 외국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유럽의 젊은 친구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방과 장기적인 미래가 보이는지, 나아가 함께 가족을 꾸릴 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신중하게 관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를 함께 하지 않을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20대 초반 친구들도 ‘가족을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20대 후반에 가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한국보다 생애주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비해 교육과정이 압축된 경우가 많아 전반적으로 생애주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경우가 많다. 흔히 생각하는 진보적인 국가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 파트너와 동거하는 것만으로 배우자의 권리를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다.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인 것이다. 한 사람과의 영원을 약속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시기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하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개념에 빗대면 이해가 되려나.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전쟁 전 5%가 되지 않았던 혼외출생률이 북유럽과 서유럽에서는 현재 50% 정도로 크게 증가하였다.
*참고: 유럽의 혼외출생률에 관한 칼럼, Frank Jabobs, Big Think, https://bigthink.com/strange-maps/births-out-of-wedlock-europe-us/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아이가 있어도 갈라서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보고 참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로서 아이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싱글맘과 싱글대디를 여럿 보았고 그들은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 싱글대디를 보는 시각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스웨덴 사회의 특성상 싱글부모로 살아도 보육과 정부 지원금, 유연한 근무를 통해 한국만큼 혼자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 아니고 사회적 낙인도 덜하다.
나는 외국 연애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 한 번 갔다왔다고 해도 ‘그렇구나~’하고 상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혼이라는 조건보다 상대 자체가 더 중요시되었다. 오히려 이혼한 사람이 이전 결혼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들을 깐깐하게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돌싱특집이라는 말도 있듯이 재혼과 초혼의 구분이 사회적으로 엄격한 것 같다.
두 가지 사회 모두 이해는 된다. '한 번 이혼한 사람은 계속해서 이혼한다, 하자가 있어서 이혼했다'라는 말이 그런가 싶으면서도 우리 사회는 너무 ‘정상’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범주 안에 들지 않으면 사회적 낙인과 배척이 따라온다. 왜냐, 정상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기 때문이다. 근로 환경이나 정부의 금전 및 서비스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상이 아니면 개인의 퍼포먼스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고 이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낙인의 도돌이표 굴레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비정상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의 연애는 ‘오늘부터 1일’이 아니라 가끔 보다가 자주 보는 사이가 되고 매일 보는 사이가 되면 자연스레 남들에게 연인이라고 소개하는 문화인 것 같다. 외국에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파트너를 동반하는 행사가 많이 열리고 서로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이가 깊어지면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고 정말로 가족을 형성하고 싶을 때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동거가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부모님의 반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F+나 FWB(Friends With Benefits)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이는 친구 이상의 관계로, 성관계는 하지만 사귀지는 않는 사이를 뜻한다. 단순히 섹스 파트너와는 다른 것이 섹스 파트너(fuck buddies)는 섹스라는 행위를 위해 만나고 헤어지는 반면, F 플러스는 섹스는 함께 하는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함께 영화를 본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섹스 외에도 친구로서의 우정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츄에이션십(situationship, 번역하자면 ‘썸’이라고 할 수 있는)과는 어떤 차이가 있냐 하면, 시츄에이션십은 사귈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시츄에이션십을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모든 관계는 상대가 누구를 만나든 관여할 수 없으며 동시에 여러 개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의가 있다고 해도 참고할 수 있는 정도이지 실제로 경험하는 관계를 들여다보면 관계마다 상황이 모두 다르고 유대감,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정도, 외부적 요소에 따라 해당 범주에 속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정의하고 이름 붙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관계 또한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한국보다 성적으로, 또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맺기에서 훨씬 개방적이고 선택지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F플러스뿐만 아니라 오픈 릴레이션십(open relationship, 연애나 부부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성관계를 서로 간에 허용하는 관계), 폴리아모리(polyamory, 다자 간 연애) 등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러한 관계가 존재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식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가본 스윙어스 클럽(swinger’s club,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를 하는 것이 주컨셉인 클럽)에서는 중년 부부끼리 와서 다른 커플과 파트너를 교환하는 스윙잉(swinging) 또는 스와핑(swapping)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명이서 즐기기도 하고, 동성끼리 하기도 한다. 내가 갔던 곳은 벽에 구멍을 뚫어놓아 다른 사람들이 성관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고 아예 공개된 곳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하기도 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섹시하다기보다 동물적인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콘돔과 손 씻는 곳, 샤워장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병이 우려스러웠고 정말 말그대로 아무나하고 섹스하는 개념이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한 번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것은 많구나를 체감하는 경험이었다. 또 학교 선생님, 간호사 등 너무나도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서 더 놀랐다.
이 글은 어떤 관점과 태도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옳고 그른 것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본인이 편안하고 이해되고 행복한 방식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뻔한 결론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적고 보니 외설 사유로 신고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감추기보다 오히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건 현실적이고 유용한 성교육이지 성 자체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Michael Fen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