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기6
북부 오울루에서 헬싱키까지는 버스로 장장 8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탔던 장거리 버스는 중간중간에 간이 휴게소나 매점을 들르면서 쉬는 시간을 주는데 귀여운 사슴으로 홍보하는 이 핀란드의 버스 회사는 8시간 내내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갔다.
화장실은 버스 안에 내재된, 손 씻을 물도 나오지 않는 화장실이었다. 찜찜한 손을 손소독제로 달래며 최대한 손에 묻히지 않고 가져온 간식을 먹었다. 간간이 지나는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내리고 새로운 탑승객을 태우는 5분에서 10분 남짓한 틈을 이용해 겨우 스트레칭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도 버스든 비행기든 장소불문하고 나는 잘 수 있을 때 체력을 보충해두는 생활력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시간 버스 라이딩은 정말 쉽지 않았다.)
8시간 만에 버스에서 내려 지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은 너무나도 반가웠다. 헬싱키에서는 친구가 집에 초대해주어 고맙게도 일주일 간 친구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8시간 버스를 타다가 드디어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된 덕분이었을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였을까, 오랜만에 친구를 다시 보게 되어서였을까, 헬싱키 대중교통앱을 다운받고 친구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독 상쾌하고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마커스는 마이애미 여행에서 만난 친구이다.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쓰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멕시코에 다녀온 나와 멕시코로 향하는 마커스는 멕시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해졌다. 이후에 칸쿤에서 다시 만나며 비치 테니스를 쳤고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낸 인연이다. 호스텔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마커스의 집에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마커스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데 재택근무를 하며 회의가 있을 때만 회사에 출근하는 부러운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일 년 중 절반 정도만 일을 하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마커스는 몇 달씩 여행을 간다. 부러운 삶이다... 이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언젠가는 배를 사서 세계를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마커스는 그 목표를 위해 항해술을 배우고 있었다.
자유로운,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은 영혼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생각해보지 않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생각할 거리를 갖게 되어서 좋다. 마치 전에 없던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멕시코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추천해준 사람도 마커스였다. 덕분에 특별한 동굴 다이빙을 할 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의 범위가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 마커스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헬싱키에서의 첫째 날은 워킹투어에 참여했다. 나는 도시 어딜 가나 워킹투어를 빼놓지 않는다. 보통 도시에 도착한 첫날에 워킹투어를 하며 도시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그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것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여행하는 전략을 쓴다. 또 맛집이나 해당 도시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에 관한 추천도 해주기 때문에 여행팁을 얻는 데에도 아주 유용하다. 워킹투어를 하며 다른 여행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추가적인 장점이다.
여행팁: 워킹투어에 참여해라. 보통 큰 도시라면 오전에 한 번, 낮에 한 번 워킹투어가 진행된다. 유럽의 대도시라면 프리 워킹투어가 없는 곳이 없다. ‘프리’라는 말은 정말로 무료라기보다 투어가 끝난 후 주고 싶은 만큼 가이드에게 팁 형식으로 금액을 지불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정해진 금액은 없지만 관례적으로 인 당 10~20유로를 낸다. 그치만 투어의 만족도와 본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스스로가 결정하면 된다.
보통은 현금으로 지불하지만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현금을 잘 쓰지 않는 국가에서는 QR코드를 가지고 다니는 가이드도 보았다. 하지만 해외 계좌 송금은 복잡해서 페이팔이 아닌 이상 그냥 현금으로 지불하는 게 편했다.
워킹투어의 좋은 점은 혼자 돌아다녔다면 몰랐을 내용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방송국 안에 있는 공중전화부스를 보며 가이드는 핀란드가 북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언론자유와 투명성이 굉장히 높은 국가로, 누구나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핀란드에서는 소득의 2.5%를 언론을 위한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공영방송 YLE세) 방송국 건물은 통유리였는데 언론의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디자인했다고 한다. 나 혼자 왔더라면 알지 못했을 세세한 정보들을 계속해서 던져주는 것이 워킹투어이다.
- 다음 편, ‘핀란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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