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브랜드 뒷 이야기

by Lucia

‘루비월드(Loubi World), 루부탱 브랜드가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진행했던 팝업의 이름이었다. ‘루비 월드? 많은 이들이 유사한 이름을 발음하며 팝업 장소를 지나쳤다. 루부탱 본사 사람들이 들었다면 발끈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루비’라는 표현이 공식마케팅 용어로 쓰인 적은 없다.


루비(Loubi)는 루부탱 고유의 시그니처 컬러, 강렬한 레드를 일컫는 말이다. 동시에 루부탱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브랜드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부를 때도 사용된다. 일종의 은어이자, 브랜드 안의 문화,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재미,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만큼, 이 브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범상치 않았다. 오늘은 그 루비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올리비아이다. 리테일 팀원으로 언제 어디서든 나와 함께 움직였다. 연극영화과 출신답게 외모도, 분위기도 남달랐다. 종종 뭇 남성들의 고백 일화를 들려주곤 했는데, 묘하게 밉지 않았다. 모자부터 구두까지 올화이트 소공녀 스타일로 출근하던 날이 있는가 하면, 검은 레깅스를 입고 번개처럼 창고를 정리하고, 택배 포장을 순식간에 끝내는 날도 있었다.


내가 그녀의 사수였기에, 업무 결과물을 두고 때로는 그녀를 몰아세운 적도 있었다. 우리가 마냥 서로에게 좋은 존재일 수많은 없었던,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였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할 사람 중 하나가 나일 것 같고, 나 역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생각 나는 이 중 한명이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아니, 그릇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 경력이 짭ㄹ고 감정의 기복이 컸던 시절, 회사에서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생기면 쉽게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내 성숙한 상사가 말해주던 조언이 있다.


“Don’t take it emotionally, don’t take it personally”.


“회사 일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개인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마”


그 조언을 들으면서도 나는 곧잘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런 말 없이도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묵묵히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해냈다.배움은 언제나 양방향이다. 부사수라 해도, 어린 팀원이라 해도, 배울 점은 늘 존재한다.


또 다른 인상 깊은 루비는 갤러리아 매장의 매니저다. 나이를 거스르는 듯 윤기나느 피부, 찰랑이는 긴 생머리, 우아한 플레어 스커트를 즐겨 입는 외모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걸걸했고 성격은 웬만한 사내 둘을 합쳐 놓은 듯 강단이 있었다. 그녀는 마법사였다. 고객의 마음을 열어버리 마법을 부리는 사람. 그 말은 단지 고객의 지갑을 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녀가 다른 브랜드로 이직하면, 고객들도 함께 따라갈 정도였다. VIP 고객들은 보통 자신이 이용하는 백화점에서만 쇼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멤버쉽 혜택이나 구매 이력 관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를 보기 위해 압구정 갤러리아 고객들이 여의도 더현대 서울까지 찾아왔다. 매장에 들러 간식만 전하고 돌아가는 고객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냥 고객들이 좋아하는 직원 정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단순할까. 고객이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이유는 분명 있다. 우연히 매장을 찾았다가 그녀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그 순간 진심 어린 상호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고객을 매출로 대하지 않았다. 고객의 말을 귀 기울려 들었고, 사람 자체를 존중했다. 그런 진심은 말 없이도 전해진다. 전해진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트레이닝 시,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 있다.


“사람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줬던 ‘느낌’은 절대 잊지 않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또 한명 기억나는 루비는, 어느 추운 겨울 강남역 뒷골목의 카페에서 처음 남성 직원이다. 고무줄로 질끈 묶은 긴 머리에 락커처럼 보였던 그. 그는 자신이 인생 첫 판매를 한 고객을 아직도 기억한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짜릿함과 감사함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루부탱이라는 브랜드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말이 예뻐서 채용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고객의 독특한 신발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것이 루부탱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 브랜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마침 루부탱 한국 법인 설립과 함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그에게는 완벽한 운명 같은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운명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루부탱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인연이 된 사람들이 지금도 내 곁에 남아 있다. 그들은 루비였다. 꿈을 꾸던 사람들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었고, 매 순간을 진정성 있게 살아내던 이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진심은 어쩌면 우주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지금, 자기 인생의 커리어 이야기 서문을 쓰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제 막 본문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당신의 이야기에도, 좌충우돌의 전개와 클라이막스, 그리고 결국에는 따뜻한 결론이 담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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