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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팔이 Apr 15. 2022

나를 되찾아야 해

0. 정신이 고장난 초등교사

내 인생은, 수능 성적에 의해 정해졌다.


6모 9모 때만해도 전체에서 두 세개 정도 틀리던 수준이었기에 자만했던 것일까? 실제 수능날에 고교시절 3년 내내 구경도 못해본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줄이야.


재수와 적당한 근처 지방대학의 자율전공을 고민하다가

별 생각 없이 밀어넣은 교육대학교에 합격하면서 나는 교직에 종사하게 되었다.



4년 간의 대학 생활, 딱히 되고싶은 것도, 나의 적성이며 진로 희망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렇게 물흐르듯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교사가 되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직장인으로서의 교직은 전국민이 12년간 겪어본 수많은 교사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만만하진 않았다.

일단 나는 교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불가능한 요구를 해대는 몰상식한 학부모가 그리 많은지도 몰랐으며, 교사들이 교재연구를 할 시간이 업무라고 불리는 페이퍼워크를 쳐낼 시간에 밀리게 될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교사가 그래도 돼?' 혹은 '교사 일이 뭐가 힘들어? 애들이랑 놀기만 하면 되는거 아님?' 따위의 업신여기는 시선 따위도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가는데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교직 생활 4년차때 결국 나는 한 사건에 의해 정신과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터지는 아이들끼리의 갈등은 때로는 다툼이자 싸움이었고, 때로는 학부모의 기분이 상하면 무시무시한 각종 폭력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학폭사건이 되어 학교 관리자 및 담당자들의 뒷골을 서늘하게 만들곤 한다.  그리고 양측 학부모는(특히 가해학부모는 늘 하는 말이 똑같다. 우리 애도 당한게 있다, 라든지 혹은 담임은 일이 이렇게 될 동안 뭘 했냐 라든지... 왜 니 애가 남의 애를 패거나 속상하게 한 것이 담임 탓이 되나?) 당연히 담임을 갈군다.

집단 괴롭힘 및 폭력은 학폭사건으로 처리되어야 함에 동의한다. 하지만 실제 학부모들이 학폭열어주세요 하는 건 중 내가 겪어본 대다수는 아이들의 갈등 문제가 학부모의 심기를 건드려서 학폭으로 처리되는 것이 많았다. 학폭 사건이 되는 순간 관리자의 '담임 뭐했노' 를 포함한 니가 좀 잘하지 그랬냐, 그래서 나한테 똥튀었잖아 하는 원망은 열정 넘치는 젊은 교사의 기세를 팍 꺾어놓기에 충분한 데미지가 되었다. 이게 제 잘못이라고요? 어째서요? 항의했더니 니가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그러지. 니 꼴을 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며 더욱 나를 무능한 교사로 몰아가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왜 애들 줘패며 가르치던 현 관리자에게 애들 한대도 안 때리며 양질의 교육을 제공내가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하는가?

그것도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인해서?

애들끼리는 당연히 싸운다. 근데 그게 왜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인가? 애들이 말을 못하게 재갈이라도 물렸어야 했나?





그리하여 마침내 교직사회에 들어온지 7년 차가 되어서는,

그저 그렇게 아이들에게 예전처럼 온 열의를 다하지도 않고 어느 정도 찬 짬으로 행정 업무를 작년에 준해서 대충 처리하면서 만든 시간에 그나마 교재연구라도 해서 하루하루를 해치우는 생활을 쳇바퀴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늘 불안과 분노를 삼키고, 지옥같았던 2019년 때문에 고장난 내 정신을 간신히 숨겨가면서. 여담이지만 정신과 약 정말 효과 좋더라. 그냥 다 때려치우고 혼자 죽을까 고민하던 걸 아무 생각도 안 나게 해서 사람을 살려놨으니 현대의학 정말 만세다.



한번 박살난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예전처럼 온 마음을 다할 수 없어졌다. 다른 말로 하면, 예뻐하는 것도 혼내는 것도 예전처럼 안 하게 됐다.

교육이 아닌 보육을 원하는 학부모들(애들한테 조금만 싫은 소리하면 세모눈을 뜨고 선생 니가 뭔데를 시전한다. 그냥 학원가기 전까지 애들 데리고 시간만 떼워주길 원한다더라), 사고만 안치면 된다는 무사 안일주의의 관리자들, 평소에 아무리 애써도 학폭 한번 나면 (그것도 학부모의 기분에 따라서) 쓰레기교사가 된다는 걸 알게된 후부터는 무엇도 할 의욕이 안 생겼다. 이렇게 성과 없는 직업이 있다니.


미리 말하지만 교사가 열심히 하냐 마느냐는 학급의 사고 유무와 하나도 관련이 없다. 운 좋으면 애들 방임해도 사고 안터지고 운 나쁘면 애들을 품에 안아놔도 사고터지는 게 현 교육현장임. ㅋㅋ


이렇게 고장나버린 정신으로도 교사를 하고 있으니

잘리지 않는 대한민국 공무원 체계에 감사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용케 정상인 코스프레하고 있는 나에게 감탄해야하는 걸까.


이제는 하루하루 애들이 사고칠까봐 불안해하는 것도 지치고, 휴일이나 주말 시도때도 없이 오는 학부모 연락에 달달 떠는 것도 지쳐서 이제야 나는 이 비극 뿐인 내 직장 생활의 무대를 바꿔볼까 고민을 하게 됐다.


고장난 나를 되돌리고

내 직장의 무대를 바꾸려 노력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물론 그 동안에 교직에서 만들어낸 나의 결실과 학생 생활지도 및 학급경영 꿀팁도 함께 남길 예정이다.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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