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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스튜 Jun 21. 2022

해방이 될까. 해소면 될까.

나는 해소를 꿈꾼다.


안 보던 드라마를 다 봤다. 드라마는 한번 보면 다음 회를 봐야 하고 다음 회를 보면 또 다음 회를 봐야 해서... 두 시간짜리 영화와 다르게 몇 주는 그 여운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끈기 없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든  드라마를 본 것이다.



< JTBC 나의 해방 일지 >


아마 한 3회? 4회? 쯤부터 본 것 같은데 드라마가 참 매력 있더라. 남다른 매력이랄까. 잔잔하고 담담한데 슬프고 안타깝고, 그러면서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다. 우리라 함은 약간의 굴곡은 있지만 비교적 평평하고 평탄한 길을 걷는 사람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평범하다는 상자에 갇혀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갈망하고 목이 마른 사람들. 특별히 불행하진 않지만,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음 편히 숨 뱉을 아가미 하나 제대로 달리지 못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하물며 드라마 포스터에도 그렇게 쓰여있겠는가.

'지겹게 평범해, 누가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어쩌면 여러 번, 매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안정적이야, 인생이 참 지나치게 안정적이야. 사실 어떤 이는 그 안정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안정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안정에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아마 100% 만족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제 손안에 가지고, 어느 정도 도전과 성취를 반복했지만 마음 한 구석 구멍 난 독처럼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드라마의 메인 주제가 되는 해방 클럽은 그렇게 생겼다. 친목을 위해 회사 내에서 만든 모두가 참여하는 동호회를 극 내향인 미정과 몇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그 사람들이 모여 소수정예로 만든 것이 해방 클럽.


사실 해방 클럽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편안했다. 나 역시 내향인 중 한 명으로써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공감을 일으키면서 좋았다. 누구 하나 과하지도 않고 튀지도 않고, 태클을 걸거나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우리만의 세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배려가 존중이 되는, 사려가 관심이 되는, 항상 누군가와, 때론 세상 속 작은 일부가 되어 원하는 세계를 만들고 싶은 내향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긴 시간 이렇게 살다가 말라죽을 것 같아 상상 속 누군가를 만들어 낸 미정처럼,


어떤 이는 약하다, 여리다, 치부할지라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세계. 해방 클럽.



'나를 추앙해요'

사랑 말고 추앙해요. 낯설면서도 참신한 단어. 미정은 출신도 모르고 어디서 뭐 하다 온 사람인지도 모를 구 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 말한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

미정은 왜 추앙이란 단어를 썼을까. 미정은 회사와 사회, 세상에게 큰 의미를 기대하며 살지 않는다. 그럭저럭 어느 정도 보통의 나날을 살아간다. 자신의 집이 어디에 있는 건지 자꾸 묻는 사람들 (말해줘도 모르지만), 겉으론 친한 척 챙기는 척 해도 뒤에선 다른 말하는 직장 동료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직장상사. 미정은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자신의 삶에 어떤 환멸을 느끼는 듯하다. 지루한 일상에 무언가 새롭고 특별한 일이 나타나길. 그리고 마침 눈에 띈 구 씨. 미정은 구 씨를 구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님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 또한 구원받길 바란 걸까.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서로를 구원해주는 추앙의 사이가 되어간다.



'그렇게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환대해.'


'갑자기 내가 사랑스러워요.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미정은 겨우 살아내는 삶에서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점점 마음이 열리고 자유로워지는 미정이 참 좋았다. 다른 주인공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미정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를수록 주인공들은 각자의 해방을 위해 끝까지 나아간다. 더 솔직하게, 더 진정성 있게. 하지만 진정으로 해방되었을까. 세상에서 완전한 해방이란 존재할까. 어쩌면 판타지 같은 건 아닐까.

만약 예전의 내가 이 드라마를 봤다면 나 또한 여러 상황에서 해방되고 싶었을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들, 나와 맞지 않는 상황들, 사람들...  그러나 해방이 충족되지 않을 것을 안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해방을 꿈꾸진 않는다. 그토록 도망쳐도 결국 자신이 풀어야 할 일들은 남아 있다. 대신 나는 해소를 꿈꾼다. 그날그날 작은 해소라도 된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끙끙 앓고 있던 문제, 미루고 미루던 숙제,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관계, 매일 사소한 일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잠시 해소면 충분하다. 그것이 더 이상은 도망치지 않고 내가, 우리가 오늘을 살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여전히 어렵고 어려움 속에서

과연 해방이 될까.

다만 해소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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