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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Jan 24. 2023

111. 부재와의 동거

지난주에 왼쪽 에어팟을 잃어버렸다. 부재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듣고자 하는 것을 듣는 데 문제가 없다. 다만 동거를 시작한 뒤에, 두 쪽의 에어팟은 그 본질이 다른 데 있었음을 배운다. 귀를 막는 것. 듣기 싫은 것을 듣지 않기 위해. 이제 나는 세계와 꼼짝없이 연결되어 있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라 여태 줄이어폰을 썼다면. 세계는 오직 0이나 1이다. 이제 나의 세계는 0.5다. 0.5와의 동거. (존재와) 부재와의 동거. 나는 세계에게 절반을 내어주고, 세계도 나에게 절반을 내어준다.


나는 오직 존재를 통해서만 부재를 느낀다. 오른쪽 귀가 가득 차 있으므로 왼쪽 귀가 허한 것이다. 부재는 존재의 친구. 이대로 쭉 같이 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내가 늘 바라던 삶이기도 하다. 불일치의 균형.


그럼에도 내가 동거를 처음부터 바랐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새로운 것들이 감각될 뿐이다. 나의 행복은 오직 여기에 있다. 촉수를 잔뜩 열어놓고, 나도 모르는 감각을 받아들이기. 그러니까 모든 구멍을 채운다고 좋을 것도 없다. 이 좁은 몸에 부재까지 들였는데 오히려 숨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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