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스트로보

1.

반드시 써야만 하는 게 있는가?

그걸 쓰지 않으면 죽거나, 죽을 것 같이 아픈 게 있는가?

2.

하나의 참. 참으로 수렴하는 무한대의 거짓말.

나는 거짓말의 룰렛을 돌린다. 화살을 겨눈다.

깜빡

깜빡…

룰렛이 멈췄다고 생각한 어느 때

그것은 여전히 무한대의 가능성이었음에도

나는 운명처럼 점지받았다고 믿고

그래 나는 이제 우연을 필연처럼 말하는 예술가다

3.

피가 흐른다. 거짓말이 흐느낀다.

화살을 뽑아달라고

나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고

그래 너는 특별해서 나를 만난 게 아니란다

너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야

그런데 진짜 운이 없는 쪽은 누구겠니?

4.

그러나 우리의 원만한 관계를 위하여

나는 이 말을 목울대에 구겨넣는다

너는 나의 필연이야

나는 거짓말을 애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5.

그것이 내 죄요 하고 고하니

하늘은 나를 비웃음으로 감싸안으며

그래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단다

너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야

우주를 휘젓는 속도로 돌아도

그 우주에 생채기 하나 못 내는

룰렛 위의 나와 아스라이 돌아가는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