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2017)

강자와 약자가 아이러니를 마주할 때

by 백창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옥자>의 스토리라인은 굉장히 진부하다. 미자가 키우던 슈퍼돼지 옥자가 미란도에게 끌려가고,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니모를 찾아서>, <토이 스토리>, <인크레더블> 등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지겹도록 우려먹던 소재다. 심지어는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인 <괴물>의 스토리라인과도 유사하다.


간단한 설정을 끌고 왔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좀 더 주목해달라는 부탁과도 같다. 가령 <왕좌의 게임>이나 MCU는 그 세계관 자체를 이해하고 뜯어보는 데서 오는 희열이 있다. 그런데 <옥자> 안에서는 미란도 회사나 ALF 단체의 구조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는 ‘육식에 대한 비판’이다. <옥자>에서는 아무 경각심 없이 잔인한 동물실험이 반복되고, 더 많은 고기를 위해 공장식 도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에는 확실히 무분별한 육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러나 <옥자>는 단순히 채식을 권장하는 데서 그치는 영화가 아니다. 그랬다면 ALF라는 단체는 끝까지 영웅적인 단체로 묘사됐어야 하며, 공장 안의 돼지들 모두를 살리려는 시도도 있었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이, 동화적인 선악의 구분을 넘어 그 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그리고 <옥자>에서 그 통찰은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옥자>에는 참 많은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동물해방전선 ALF는 정작 자신의 단원을 두들겨 패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공장에서 태어난 실험동물 옥자는 자연에서 길러진 탓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옥자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은 돈이지만, 옥자를 구렁텅이에서 꺼내는 것도 돈이다(미자가 옥자를 살리는 대가로 낸시 미란도에게 황금 돼지를 건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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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옥자>에는 다양한 강약 관계가 등장한다. 미란도라는 세계적 기업 앞에서 ALF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 조직과 장비를 갖추고 활동하는 ALF 앞에서 미자는 힘없는 소녀일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미자 앞에서 옥자는 지켜줘야 할 약자다. 그리고 미자의 예쁨을 받는 옥자 앞에서 닭은 미자가 좋아하는 백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강약관계는 영화에서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곧 그 대상을 규정하는 것과 같기에, 때로는 구속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령 미자는 나이대에 맞지 않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지는데, 이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그녀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은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기에, 이름 붙은 것과 이름 붙지 않은 것을 차별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가령 옥자는 미자가 특별히 아끼는 돼지이기에 이름을 얻었고, 그래서 영화 말미에 이름이 붙지 않은 돼지들과 다른 운명을 맞을 수 있었다. ALF 단원들이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는 이유도, 단체가 가진 ‘해방’이라는 성격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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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그의 영화들에서 아이러니와 강약 관계를 줄곧 결합시킨다. 즉, 강자와 약자가 동시에 아이러니를 마주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때 그 아이러니는 대체로 강자의 손을 들어준다. ALF 안에서 제이(J)가 케이(K)를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건, 제이가 ALF의 리더 격이었기 때문이다. 옥자를 공장에서 꺼내오기 위해 황금 돼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 미자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모순이 많은데 이는 주로 강자의 방식으로 합의가 된다. 영화가 끝나도 미란도는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돼지들은 여전히 공장에 갇혀있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이러한 면에서 <옥자>는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비관적인 정서를 담고 가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 속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놓는다. 세 개의 씬에서 그 씨앗을 찾아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김군의 등장이다. 김군은 미란도 회사의 트럭 운전사다. 김군은 미자와 옥자를 추격하는 데 동원되지만, 회사가 4대 보험도 안 들어준다며 쫓아가기를 거부한다. 평소라면 해고 등을 빌미로 위협했겠지만, 긴급 상황이기 때문에 미란도 사원들은 발로 뛰며 옥자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뉴스 인터뷰에서 김군은 “이제 미란도사는 완전히 좆됐다”라는 명대사까지 투척한다. 앞서 말했듯이 <옥자>에서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돼지한테도 붙이는 이름을 사람에게 붙이지 않은 것은 분명 의도적인 설정이다. 이름도 없는 트럭 운전사가 (잠깐임에도 불구하고) 미란도를 “좆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옥자>가 보여주는 첫 번째 희망이다.


두 번째 씨앗은 영화 종반부에 있다. 미자가 옥자를 데리고 공장을 나올 때, 갇혀있던 다른 슈퍼돼지들이 새끼 돼지를 울타리 밖으로 탈출시킨다. 옥자는 그 새끼 돼지를 입 안에 물고 집으로 돌아간다. 미자가 옥자를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이름도 없는 슈퍼돼지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러나 그들은 느낀 바와 상관없이 자기보다 약한 새끼 돼지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고, 옥자도 마찬가지로 조건 없이 새끼 돼지를 거두어간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는 미자의 얼굴에는 옥자를 살려냈다는 기쁨보다 씁쓸함이 비친다. 옥자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미자를 생각해보면 의외다. 미자도 이름 없는 것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것일 테다. 이 장면은 굉장히 우울하면서도, 미자가 긴 여정 이후 성장했음을 보여주기에 희망적이다.


마지막 씨앗은 <옥자>의 명대사에 있다. “통역은 신성하다", 케이(K)가 미자의 의사를 왜곡해서 통역한 것을 고백하자, 제이(J)가 두들겨 패며 외친 대사다. 우스갯소리처럼 쓰인 이 대사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갖는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케이는 미자보다 강자다. 따라서 통역은 강자의 몫이며, 약자인 미자의 의사를 하나도 담아내지 못한다. 이에 대해 제이는 “통역은 신성하다”며, 소통의 기본 전제를 역설한다(물론 이를 두들겨 패며 말하는 게 또 다른 유머이지만). 여하튼 통역은 신성하다. 약자의 의사가 왜곡 없이 전달될 수 있는 환경의 조성만으로도, 사회는 조금 더 많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영화 후반에는 케이도 이를 깨닫고 “통역은 신성하다”라는 문신을 새긴다. 봉준호 감독이 등장인물의 팔뚝에 각인시키면서까지 한 번 더 보여준 대사이기에, 결코 가볍게만은 생각할 수 없는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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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를 마주하는 강자와 약자, 그리고 속절없이 강자의 편이 돼버리는 아이러니. 그러나 발버둥 치며 꿈틀대고, 마침내 성장하는 약자. 봉준호 감독이 바라보는 세계는 이렇다. 그리고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 <옥자>에서 그 세계는 더욱 빛을 발한다.


19.02.12.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