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의 모음집

윤하 리메이크 앨범 <써브캐릭터 원>에 관한 생각

by 빨간망토 채채

*글의 편의상 존칭은 생략하였습니다.

윤하가 리메이크한 곡 4곡을 묶은 미니앨범 <Sub Character One>이 지난 3월 9일 발매됐다. 네 곡이지만 매우 강렬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곡 한곡의 개성이 매우 매우 뚜렷하고,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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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리메이크 앨범에 큰 가치를 두는 편은 아니다. 아이유의 꽃갈피 시리즈는 흘러간 8090년대 가요를 요즘 세대에 조명했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리메이크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 '커버'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원곡의 임팩트를 이기는 리메이크는 별로 없기도 하니 말이다. 가수의 개인 채널을 통해 커버곡은 충분히 소비될 수 있기도 하고.


그런데 이 앨범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낯선 수록곡 제목에 윤하가 새 미니 앨범을 냈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곡들을 처음 접하는 청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대중적으로 향유되던 곡들이라기보다 마니아 층을 지닌 음악들이기 때문이다.


윤하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신보이지만, 실은 취향이 낸 앨범이다.
보통은 가장 무난한 애가 앞에 서고, 좋아하는 애들은 뒤에서 고개만 끄덕이는데…
이번에는 그중 몇 명이 말없이 앞으로 나왔다.

지난 계절을 향한 자백이 깃든 <계절범죄>
주인공의 옆에 있던 <Sub Character>
타임라인 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염라>
땅에 붙잡힌 감정과 한계를 끊어낼 <Skybound>
네 곡의 음악을 빌려 윤하의 Sub Character를 소개한다.

- 앨범 소개 글 中


처음에 들었을 때는 윤하가 '원래 즐겨 듣던 곡'들을 커버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J-pop 감성도 섞여있고, 데뷔곡 '혜성'과 같은 팝 락 감성도 있고, 피아노 기반의 곡도 있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앨범 발매에 앞서 나온 코멘터리 영상에 따르면, 윤하는 지난해 원래 다른 미니 앨범을 내기 위해 준비했었고 연말에 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이틀곡이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던 차에, 프로듀서 미로(Miiro)가 피처링을 부탁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미로의 곡을 들으며 '계절범죄'에 꽂힌 윤하는 새로운 곡 작업보다 리메이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기왕 하는 것 리메이크로 미니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고 새롭게 곡을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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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OUNHA Commentary Video : 써브캐릭터 원 part 2


곡의 조건은 '취향이 명확하게 깃들어 있는' 곡. 이 네 곡을 고르기 위해 거의 몇천 곡을 들었다고 한다.


그 곡을 서칭할 때 정말 수천 곡을 들은 것 같아요. 전혀 제 손길이 닿을 것 같지 않은, 알고리즘에서 절대 건네주지 않을 것 같은 곳까지 다녀왔거든요. 주변의 동료들에게 모두 부탁해서 찾고 이러느라 하루에 진짜 수백 곡씩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듣고 그중에서 '아 나의 취향의 행방은 이쪽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들으면 이런 곡이 윤하한테 어울린다 이런 것보다 그냥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곡들이 있잖아요. '이거 어디 있었어?' '이거 뭐야? 이런 게 다 있었어?' 그래서 이건 취향이 만든 앨범이에요.

뭐가 좋으면 막 소개하고 싶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만들게 된 앨범이에요. 이걸 제가 리메이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좋고 원곡을 들어도 너무 좋고, 그런 앨범입니다.

- 윤하 코멘터리 비디오 中




원작자의 조명, 그리고 재해석을 위한 고민

앨범 소개 글에 따르면, 이건 윤하의 취향이지만 동시에 '다소 무난하지는 않은', 조금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는 취향의 모음집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영역에 대해서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적인, 일반적인 취향이란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취향이란 단어 자체가 개인의 기호를 나타내는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써브캐릭터 원은 우리가 비주류라고 일컫는 지대의 음악들을 윤하라는 중심축을 통해 조명한다.


앨범 코멘터리에는 원작자 분들이 등장하는데, 대중음악 씬에서는 낯선 이름들이었다. 원작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곡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원곡을 이해하고, 세심히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이 리메이크 앨범으로서 지닌 의의가 돋보인다.


미로(Miiro)는 1인 프로듀서로 단편소설과 함께 곡을 발표하는 것이 특징이다. 1번 트랙인 계절범죄는 동양풍의 후렴 멜로디가 인상적으로, 윤하의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창법이 매력적으로 구현된 곡이다. 원곡에서는 단편 소설의 내용처럼 마음이 아릿하고 슬픈 감정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다면 윤하 버전에서는 긴 겨울 웅크리고 있었던 마음이 초봄을 맞이하며 슬픔 속에서도 힘을 내보려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 원곡과는 또 다른 보컬과 편곡으로 듣는 재미를 배가한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윤하가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 피아노 화음을 강조한 편곡이 윤하의 취향과 장기가 잘 반영된 것 같다.


3.JPG 이미지 출처: 미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miiro.kr/)


2번 트랙이자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Sub CharacterWizu의 곡으로, 역시 1인 프로듀서로 음악을 발표해 왔다(무려 04년생이시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곡인데, 주연처럼 반짝이는 '너(상대방)'를 부러워하는 '나'가 화자다. 원곡 뮤직비디오에서는 2명의 캐릭터가 나오는데,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2절에서는 주연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주연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생각한 장면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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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u - Sub Character 뮤직비디오 (서로 부러워하는중)


원곡은 Wizu의 (남성) 보컬로, 댓글에서도 있는 의견이지만 가사가 조금 들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든지, 조금 더 사운드 임팩트가 크다면 더 좋을 것 같다든지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윤하 버전에서는 그런 것들을 정면돌파해 버린다. 매우 파워풀한 보컬에 선명한 밴드 사운드가 화자의 폭발하는 마음과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원곡 가사가 순화된 구절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내가 나쁜 놈일까, 그저 내가 이런 놈이라 → 내가 나쁜 맘일까, 그저 이런 나라서). Wizu는 버클리 음대 유학파인데, 한국적인 K-pop의 정서를 가지면서도 J-pop적인 요소를 지닌 곡이라 의외였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제목을 지닌 3번 트랙 염라. 이 곡은 작곡가 'ampstyle'과 보컬 '초희'가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달의하루'의 첫 번째 싱글이다. 2020년에 나온 곡으로, 서브컬처를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와 확실한 음악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일본 J-pop, 우다이테 감성의 곡이긴 하지만 동시에 한국적인 멜로디나 가사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음악 세계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작곡가 ampstyle과 보컬 초희로 구성된 ‘달의하루(Dareharu)’의 첫 번째 싱글 ‘염라’가 발매된다. 첫 번째로 업로드된 악곡 ‘염라’는 짧은 기간 내에 유튜브 조회수 150만 회, 구독자 약 4만 명을 돌파하는 등 서브컬처 오리지널 음악 콘텐츠로서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번 ‘달의하루(Dareharu) 첫 번째 싱글 ’염라’는 ampstyle이 전반적인 프로듀스를 담당하였으나, 애니메이터 람다람(RDR)과 seibin, Mitsukiyo, AZ, 유경환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제작에 함께 참여해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염라’를 시작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을 계속해서 업로드할 예정인 ‘달의하루(Dareharu)’.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안타깝게도 작곡가 ampstyle은 3곡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곡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것 자체가 남겨진 이들에게도 어떻게 보면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윤하의 곡을 통해 새롭게 고인을 기억하고, 또 알아간 이들이 늘어난다면 말이다. 이 곡은 외국에서도 주목받는 애니메이터 람다람(RDR)과의 협업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1.png 달의하루 - 염라 M/V


4번 트랙인 Skybound밴드 카디(kardi)의 곡이다. 정말 록페스티벌에서 떼창하고 싶은 노래. 카디는 2021년 JTBC 슈퍼밴드2에서 결성되었고, 3위까지 오르며 깊은 인상을 남긴 밴드다. 멤버 구성에 거문고가 있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밴드다. 2022년 첫 미니앨범을 낸 뒤, 최근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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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가딩가 스튜디오: [ㄷㄷ] 카디(KARDI) - SKYBOUND [Official Live in Busan] @부산국제록페스티벌


2023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서 떼창하는 장면이 너무나 자유롭고 이 곡과 어울린다. 윤하 버전은 좀 더 다듬어진 록 같다면, 카디의 원곡은 좀 더 와일드한 느낌이 난다. 뭐가 됐건 들으면 가사 속 드넓은 바다가 연상되는 멋진 곡이다.


더 올려봐 위를
Through all kind of battles
Look, who's in the mirror
드넓은 바다 그 곳에서 나
I'm gonna make it
방향키를 잡아
이 노래를 따라
자 돛을 펴고 바람을 타고




미니앨범의 4곡은 모두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다. 무려 시리즈로 이어지는 구성. <써브캐릭터 원>은 커버곡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엔 아깝다. 윤하의 고민과 색깔, 취향이 담겨 있으면서도 하나로 엮어 잘 정돈된 취향의 모음집을 경험한 기분이다. 나의 취향에 맞는 곡을 찾고 또 찾아, 그걸 다시 새롭게 만들어 부른다는 것. 다소 숨겨있었던 곡들을 윤하의 영역으로 끌어와 함께 무대에 세운다.


앨범명이 <써브캐릭터 원(one)>인걸 보면... 다음 시리즈도 나올 가능성이 있는 걸까?라는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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