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임 첫 날, 내 욕심이 과했던 걸까.

by 빵글

몇 주간 책을 고르고 자료를 만들며 준비한 책모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25년의 첫 일요일 밤, 집 구석구석을 열심히 정리하는 내 마음은 자꾸만 바빠졌다. 호기롭게 시작한 책모임인데, 엄마들에게 야심찬 계획서까지 보내고 회비까지 걷었는데,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면 어쩌지? 너무 시시해하면? 아니면 너무 어려워하지는 않을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거 정말 잘 될까? 하는 걱정이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두 잠든 밤, 깨끗이 잘 깎은 새 연필 8자루와 색연필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연필꽂이를 거실 책상에 올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마치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있는 양 빈 의자에 골고루 시선을 주어가며 내일 책모임의 시작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먼저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각자 인사를 시키고, 모임 이름을 정하고...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계속해서 걱정만 하다 새벽 늦게야 겨우 잠이 들었다.


드디어 모임 첫날, 집에 친구들이 이렇게 많이 온 적이 없던 터라 아이도 들뜬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방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고 평소 산발로 다니던 머리도 묶어달라고 성화였다. 하나 둘 아이들이 도착하고, 대체 뭐하러 여기 온거지? 하는 듯한,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얼굴로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먼저 내 소개를 하고, 우리가 여기에 모인 목적은 책을 읽고 생각주머니를 키우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 이야기에 정답은 없고, 서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이 유일한 규칙이라고 하자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모임의 첫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이게 정말 나일까?' 였는데,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책 모임의 첫 주제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 이름은 ㅇㅇㅇ이고 10살이야.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남동생이고 취미는 그림그리기야."로 이어지는 상투적인 자기소개가 아닌 진짜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기를 바라서였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과 함께 점수를 매기는 소감나누기 시간, 아이들은 "로봇을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게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적을 남겨] 부분에서 사람들이 그 흔적이 지후가 남긴 걸 알아차리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주인님을 알 것 같아요! 하고 로봇이 당당하게 말하고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말도 안 되는 가면을 쓰고 엄마에게 바로 들키는 장면이 너무 웃겼다.", "[내 안에 내가 있어] 장면이 제일 인상깊었다." 고 각자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았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어! 나도 그랬는데!"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오,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우리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각자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도, 별점도 다 다르지?" 하니 아이들이 정말 그렇다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IMG_2697.jpeg 소감나누기를 위해 책에 별점주기 활동을 하는 아이들


다음은 각자 자신을 소개하고, '그림책 질문수업 (이한샘 저)' 에서 힌트를 얻은 활동인 '질문 꼬리잡기'를 해보았다. 한 친구의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는데, 질문을 받은 친구가 대답을 하면 다음 차례의 친구는 그 대답에 대해 다른 질문을 하는 방식이다. 규칙은 '네' 나 '아니오' 의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지 않기. 아이들은 생각보다 질문하기를 어려워했는데, '나는 옆돌기를 잘해' 라는 친구의 말에 '너는 옆돌기가 좋아?' 라고 묻기도 했고, 강아지를 키우는 아이에게는 강아지에 대한 질문만 한바퀴를 돌아 결국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크게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두 바퀴 돌 수 있도록 기다렸고, '너는 언제부터 옆돌기를 잘하게 됐어?', '옆돌기를 왜 좋아해?' 하는 질문을 이어가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무리 활동으로는 질문 꼬리잡기 내용을 바탕으로 '내 친구 소개는 글쓰기'를 해보았다. '질문 꼬리잡기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라는 이야기를 강조하지 않아서였을까, 아이들은 서로 각자의 자기소개 글을 보여주며 거의 그대로 옮겨적기도 했고, "너는 취미가 뭐야?", "너 싫어하는 게 뭐라고 했지?" 하며 아예 인터뷰를 시작할 기세였다. 내가 의도했던 건 친구의 특징 한 가지를 깊이있게 파고들어서 그 특징에 대해 묘사하고 소개하는 글쓰기였는데... 나의 의도가 보기좋게 빗나갔다. 다만 아이들이 즐겁게 글을 쓰고 있는 데다 오늘은 첫 날이니 욕심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었다며 다음 책을 잘 읽고 모이기로 입을 모아 약속하고 돌아갔지만 어쩐지 내 마음은 '책모임 시작 너무 잘 했다!' 하는 시원함보다는 왠지 모를 찜찜함이 가득 남았다. 곰곰이 곱씹어보아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의 깊은 생각과 이야기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글쓰기 활동이 많아져서 아이들이 재미없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일단 시작만 하고 나면 술술 진행되겠지 생각했던 책모임인데. 하기만 하면 무조건 아이들이 좋아할 거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기대했던 뿌듯함보다 오히려 마음속에 커다란 숙제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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