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구상만 하거나 슬쩍 시도했다가 금세 발을 빼던 내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 친구 엄마들, 연락한지 1년도 넘은 엄마들에게 A4용지 세 장 짜리 편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제목은 '아이들 책 모임에 초대합니다.'
'책육아'를 지향한답시고 책장에 가득가득 책은 채워두었지만 아이는 좋아하는 책에만 손을 뻗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야 옆에 끼고 앉아서 열 권이고 스무 권이고 읽어주었지만 초등학생용 도서로 단계가 올라가니 아이들 책에도 글밥이 너무 많아 한 권 읽어주기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곳곳에 보이는 독서토론논술 학원에 보내면 간단할텐데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어도, 수학도 내가 가르치려다 결국 포기하고 학원의 힘을 빌렸지만 책읽기와 글쓰기만큼은 내가 진짜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아이와 책 읽고 질문하고 대화 나누기를 시도해보았다. 몇 권의 책을 골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끌어내보려 했지만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런 정보와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시작하니 '재미있었어' 말고는 별로 할 말이 없단다. '이 친구는 왜 이랬을까?', '너라면 어땠을 거 같아?' 하고 쏟아내는 엄마의 질문을 온전히 다 받아내야 하는 아이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게다가 아이의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상하게 말이 줄줄 길어지다가 결국 아이에게 책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꼰대처럼. 아이와 둘이 책 대화 나누기는 몇 번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은 독서논술 교재를 사서 아이와 함께 풀어보기로 했다. 아이는 곧잘 읽고, 문제를 곧잘 풀고, 글쓰기도 제법 능숙하게 해보였지만 문제풀이식의 활동이 내 성에 차지 않아 그것도 금세 그만두었다.
그러다 '책모임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두 딸을 '독서모임'으로 성장시킨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우리 딸도 이런 모임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 어디 이런 모임이 없을까? 하고 생각만 했더랬다. 내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매일같이 지옥철에 몸을 던져 구겨지다시피 출퇴근을 하는 대한민국 서울의 워킹맘이라는 내 정체성을 퍼뜩 깨닫고는 고개를 탈탈 털어 버렸었다. 마침 늦둥이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니 지금이 기회였다! 뭔가 일을 벌일 기회!
그날로 '독서토론', '그림책 수업', '책모임' 에 관한 책들을 읽고,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그림책과 이야기책을 열심히 골랐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떤 모임을 해주고 싶은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겨울방학을 3주 정도 앞두고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 책 모임에 초대합니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아이 친구 엄마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던 나로서는 아이 친구들을 모아 모임을 한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엄마들이 내 계획과 제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모임 계획을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적었다. 이 모임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를 담은 초대글 한 장,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세부 계획 한장, 그리고 한 권 한 권 열심히 골라 만든 도서 목록 한 장. A4용지 총 세 장 분량의 편지를 출력해 곱게 접어 예쁜 봉투에 담았다. 함께 책 모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엄마께 보여드려' 하고 전달하는 건 딸아이 몫이었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누구보다 흥미롭게 지켜보던 딸은 신나게 편지를 들고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이제 편지는 내 손을 떠났고, 참여하겠다는 친구가 몇이나 될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무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안그래도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 괜한 제안을 했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한 명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고!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편지를 보낸 친구 중 한 명이 참여하겠다고 연락해왔고, 어쩌다 연락이 닿아 책 모임 얘기를 전달한 두 명의 친구, 그리고 편지 전령이 되어준 우리 아이까지 총 네 명의 소녀들이 책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겨울방학동안 10번 남짓한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모임을 일주일 앞둔 아줌마의 마음은 벌써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모임 준비 덕분에 육아와 집안일의 고됨을 핑계로 책보다는 TV와 유튜브를 끼고 살던 아줌마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심지어 미루고 미뤄왔던 '뭐라도 좋으니 꾸준히 글쓰기' 도 시작해보려 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인지!
게으른 내가 모처럼 벌인 이 엄청난 일 (무려 10대 소녀 4명을 한시간 반동안 상대해야 한다!)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아이들이 이 모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 기록해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아이들 책 모임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