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otivation (개요_2/2)

인간의 욕구

by 주홍은하수

Motivation 스펙트럼


앞서 motivation은 설득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주장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motivation에 쓰이는 주장 또는 구조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훌륭한 Mission 수행으로 조직의 Vision이 달성된다면, 너는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 (보상)은 너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보상’입니다. 진실로 motivation의 성과란 보상의 적절성에 있습니다. 적절성이란 정확도와 크기에 관한 사항입니다. 다시 말해, 듣는 이의 입장에서 아래의 두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만한 사항이어야 합니다.


1) 보상이 나의 욕구를 정확히 겨냥하였는가?

2) 나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할 만큼의 보상인가?


위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욕구와 보상 그리고 그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검토를 진행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motivation 스펙트럼’으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추가적으로, 성공적인 motivation을 위해 검토해야 할 질문이 오로지 적절성이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질문 또한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입니다.


3) 이 Vision은 실현될 수 있는 Vision인가?

4) Vision이 달성되면, 보상을 확실히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문장의 신뢰성 자체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그렇다’ 라는 대답을 위해서는 설득하는 사람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이 또한 뒷 부분에서 간단히 검토하고자 합니다.


물질적인 욕구 (생존/향락)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생존의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이란 다른 모든 욕구의 대전제이며, 그래서 모든 욕구 이론의 가장 밑바닥에는 이 생존 욕구가 있습니다. 이 생존 욕구의 해결 방법은 시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생존 욕구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시공간은 아닙니다. 메뚜기떼가 창궐했거나, 식수가 말랐거나, 좀비가 창궐하거나, 서부개척시대처럼 모두가 총을 들고 다니는 살벌한 무법천지의 공간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모두 쉽게 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만 반드시 공인된 화폐를 통해야만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과거처럼 사냥이나 화전으로 음식을 구할 수도 없고, 아무데나 집을 짓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시장에서 돈을 통해 구해야만 합니다. 저는 ‘생수’라는 제품이 처음 국내 시장에 등장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 당시 어르신들은 이제 물도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거냐며 한탄하셨었죠. 지금에 와서는 물을 돈주고 사먹는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집에도 당연스레 정수기를 정기 구독으로 설치하지요. 이 때문에 이 사회에서 수입이 없어진다거나, 보유한 돈이 일정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은 생존의 공포와 아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생존의 몸부림은 무슨 일이든 하게 만들죠.


그렇지만 이 매커니즘을 조직 내에서 혹은 타인을 대상으로 활용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타인의 생존 또는 생존에 필수적인 돈줄을 움켜지고 설득을 시도한다? 이건 협박이죠. 이 글은 협박을 가르치거나 권장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협박과 협박이 활용하는 공포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단점만 있습니다. 관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뿐더러, 공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져가니까요.


그래서 물질적인 motivation은 실질적으로 생존보다는 향락의 단계에서 더 자주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향락이란 삶의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상승시키는 것이죠. 편안함과 불편함, 유쾌함과 불쾌함의 세계입니다. 더 달콤한 사탕, 더 부드러운 옷감, 더 빠른 CPU와 그래픽카드의 세계지요. 이 향락의 단계의 무서운 점은 한번 상위단계를 맛보면 하위단계로 돌아가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점입니다. ‘큰 집/자동차를 사면 다시는 작은 것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큰 공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그보다 작아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심지어 더 높은 향락의 단계로 가는 것은 대단치 않게 여겨져도 하위 단계로 내려오는 것은 변화가 더 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과 6~7년 전의 TV 자료 영상을 보면 그렇게 낡아 보일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낡다는 느낌을 못받았습니다. 변한 것은 첨단 4K 고화질에 익숙해져버린 눈과 뇌지요.


엄밀히 생존보다는 향락에 가깝지만, 느끼기에는 생존에 가까운 것들이 있습니다. 현대시대의 물품들이 그러하지요.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핸드폰, 데스크탑 같은 경우는 없는 경우 생존에 도전을 주지는 않지만 삶이 매우 불편해집니다. 그렇지만 안마의자, 공기청정기, 커피머신, OTT, 태블릿 등은 없더라도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있는 것이 편하니까 너도나도 구비합니다. 아마 미니멀리스트란 이런 부분을 다 제거한 채로 비용을 최소화한 삶을 사려는 철학이 아닌가 합니다. 생존에 영향을 주지 않는 향락에 대한 우선순위를 크게 떨어뜨리고자 하는 행동 방식으로 정의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향락이란 더 높은 단계의 향락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지만, 기존 위치의 고수 또는 과거의 좋았던 단계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도 나타납니다. 이를 극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중세 중동의 하시신이라고 하는 암살 조직입니다. 이 조직은 술과 음식, 꽃과 여자로 가득한 낙원을 만들어놓고는 암살자로 쓸만한 소년들을 약에 취하게 만들어 이곳에 데려와 얼마간 지내게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약에 취하게 만들어 원래의 모래로 가득한 지역으로 되돌려보냅니다. 그리고 깨어난 소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 그렇다면 우리의 대의에 봉사하여야 한다.”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면서 난잡한 사생활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대부분 정신적으로는 피폐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일부의 원인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하죠. 특별히 그에게만 미래가 더 불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불확실성이 두렵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본인이 가진 커다란 편안함 그 자체입니다. 높이 올라간 만큼 낙상의 아픔은 커지는데, 불확실성은 결코 제로로 만들 수 없죠. 같은 0.1%의 불확실성이라도 예상 데미지가 100인 사람과 9,999,999인 사람은 두려움의 기대값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뭐다? 정상에 있는 짧은 순간에 남김없이 즐기고 남김없이 취하는 것이죠.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욕구 (경쟁/인정)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추가적인 노동소득 없이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자산에 도달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지요. 참으로 달콤한 이상향입니다. 일어나고 싶은 때에 일어나, 놀고 싶은 것을 하루종일 하다가 자고싶을 때 자는 삶이죠. 아예 허황한 삶은 아닙니다. 그런 수준에 도달한 사람을 실제로 주변에서 종종 보기도 합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이 실제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먹기만 하는 경우를 저는 못봤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더 합니다. 어쩌면 예전보다 더 정력적으로, 어느 때는 무상으로까지요.


사람은 타인보다 우월해지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희망한다고들 합니다만, 솔직하게는 바로 내 옆의 쟤 또는 내가 기준점으로 삼은 준거집단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유사한 광경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동물들이 번식기에 돌입하면 모든 수컷이 자신의 우월함을 뽐냅니다. 완력으로, 튼튼함으로, 영리함으로, 멋진 깃털 또는 부리로 자신을 어필하지요. 굳이 번식기가 아니더라도 수컷은 서로 싸웁니다. 무리 내 서열 정리와 영역 다툼을 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급적이면 물리적으로 싸우지는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그보다 조금 문명화된 방식으로 서로의 우월함을 비교합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패션이나 핸드백에 찍혀있는 브랜드로 우월함을 다투고, 남자들의 경우에는 명함이나 게임 실력이나 주량 같은 것으로 서로 대결을 하여 우월함을 다투지요.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살고 있는 주소와 아파트 평수가 우월함을 대변해주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매일 매순간 벌어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경쟁의 특성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이겨 위로 상승하면, 그 위에는 반드시 또다른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지요. 갖은 노력을 걸쳐 모든 경쟁의 사다리를 오르고 올라서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년의 정상이었던 모습이 올해에도 정상이 될 것임을 보장하지 않으니까요.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경쟁자는 어디서 또 나타납니다. 새로운 경쟁자가 넘어서지 못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견딘 다음에도 경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른바 올타임 넘버원이 되기 위해 과거의 전설과 경쟁해야 할 것이지요.


또,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기는 우월해지기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조금은 다릅니다. 우월의 욕구에게 있어서 타인은 그저 기계적 경쟁의 대상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그저 대보는 것으로만 결정되는 것, 그 밖에 모든 것은 무의미합니다. 10억은 9억보다 크죠, 100점은 99점보다 큽니다. 그리고 큰 것은 작은 것보다 낫지요. 이 냉혹하기 짝이 없는 정량적 부등호의 세계에서는 그 밖의 어떠한 해석도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이와 달리 인정은 소통과 해석이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소통과 해석의 세계에서는 정량적인 결과만 보지 않습니다. 의도도 따지고, 처한 환경도 고려하며, 선천적인 재능도 반영합니다. 스포츠 팀에서 각 팀의 에이스는 분명 인정받지만 오직 에이스만이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에이스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팬서비스가 불성실하거나, 팀 내 불화를 야기하는 인원이거나, 구단에 부담을 주는 사고뭉치라든가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대상이 되는 에이스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분명 플레이는 가장 우월했거든요.


인정을 받는데 어떤 기준과 관점을 취하느냐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개인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배우는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의 미모만을 인정할 수도 있죠. 어떤 며느리는 착한 성품으로 시댁에서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시댁에서는 그의 직업과 연봉을 문제삼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인정이라는 활동은 인정받고 싶은 자와 인정하는 자 사이의 갈등과 조정을 일정 부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정하는 자가 인정하는 기준을 명료히 세우지 않았거나, 대외적으로 내세운 기준 이외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을 때 또는 기준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 인정받고 싶은 개인은 혼란에 빠지고 극심한 에너지의 소모 또는 낭비가 일어나죠.


인정은 영향력을 제공합니다. 개인이 한 집단 혹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수록 그 집단과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올라갑니다. 처음 인정받았을 때는 조직에 소속되는 정도, 그저 전화번호를 교환해도 괜찮은 정도의 수준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정을 받게된다면 그는 집단에서 그리고 개인으로부터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영향력은 실제로 힘이 됩니다. 삼국지에서 천한 노비 출신 첩의 자식에 불과했던 원소가 청류파들 사회에서 일약 촉망받는 스타가 된 것은 그가 호적상 모친의 3년상과 부친의 3년상을 정확히 치른데서 기인합니다. 그의 노력은 인정받았고 인정은 그대로 그의 영향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적통이었던 원술보다도 더 세력이 커지게 되는 밑바탕이 됩니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유튜브, 인스타와 틱톡 팔로워 숫자가 곧 힘이 되는 세상이었네요. 이런 세상에서 굳이 삼국지로 예를 들다니 저는 젊은 감각이라는 면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경제적 자유에 도달한 사람이 왜 일을 할까요? 여전히 그는 그의 또래집단 누군가와 경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유한 현금의 양, 자신과 동일시되는 회사의 위상, 사는 곳, 타는 차, 취미 등등으로요. 그들보다 확실히 우월함을 못박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역사상 위대한 사람 중 하나로 기억되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미증유의 무언가를 성취하여 본인의 이름을 금자탑에 새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죠.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함으로서 여전히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돈을 젊어서 충분히 아주 많이 벌게 되더라도 아마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게 될겁니다.


정신적인 욕구 (Self-image/내.외적 애착)


정신적인 욕구는 이해득실과 무관합니다. 사람이 이해득실에는 위배되는 행동을 할 경우, 그 근거는 대개 이 정신적인 욕구들입니다. 돈 몇 푼, 조그마한 명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좇는 사람이지요. 저는 이 욕구를 아래와 같이 크게 3 분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 Self Image의 보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운 Self Image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사장, 친절한 요리사, 좋은 엄마, 유능한 경찰.. 등등이지요. 이것은 사회학에서 ‘역할’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을 내면화하고 그 내면화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역할과 충분히 일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 모욕감 또는 불쾌함을 느끼지요.


어딘가에서 들은 군대 이야기입니다. 어떤 내무실에 어중간하게 모자란 친구가 신병으로 들어왔었습니다. 군대에서 늘 하듯이 갈구고 혼내고 괴롭혀서 일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 내무실의 내무실장은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신병의 맞선임을 불러서 이렇게 말한 것이죠.

“너는 기독교인이고 일부러 신학공부도 할 정도로 믿음에 독실하잖냐. 너가 책임지고 막내 군생활 좀 잘 챙겨줘라”

그 맞고참 덕분에 신병은 군생활을 어려움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제대 후에 따로 감사하다는 편지도 받았다는 훈훈한 이야기이죠.


이렇게 역할로 사람을 통제하는 수법은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방식입니다. 특히 저의 또래들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말들을 수도 없이 들어왔으니까요.


‘너는 형이니 동생의 모범이 되어야 되지 않겠니’

‘너는 남자/여자라는게 행동이 그게 뭐니’

‘너는 이제 중학생씩이나 되었는데 초등학생처럼 굴어서 되겠니’


그러나 위 예시는 우리가 경험하여 아는 것처럼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우선 해당 역할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남자 또는 동생 또는 초등학생이라는 역할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아니지요. 태어나보니 그렇게 되어있었고, 시간이 지나니 나이가 들었던 겁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행동방식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역할에 주어지는 행동원칙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형은 동생에 모범이 꼭 되어야 할까요? 형과 동생은 각각 태어난 스타일에 알맞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꼭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잘 듣는 것만이 ‘모범’의 유일한 예시일까요? 잘못된 것에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범이지 않을까요? 역할에 맞는 행동원칙이란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이 살아오신 시대와 환경에 크게 의존되어 있는 것이고, 그마저도 부모님의 개인적인 신념이 크게 들어가있는 부분입니다. 특수한 환경에서 선택한 개인적인 원칙을 가지고 왔으면서, 마치 세상이 모두 그러하다는 듯이 사회 핑계를 대며 권위로 밀어붙이는 식의 설득은 효과적이기 어렵습니다.


self image는 본인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해석한 역할이자 행동방식입니다. 남들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니라요. 그렇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행동방식을 일관적으로 지키고자 합니다. 이러한 행동방식을 남들에게 설명하고자 할 때 주로 ‘나의 의무’, ‘XX로서의 책임감’, ‘XX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 같은 표현이 쓰입니다. 또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지요.


메이저리그의 오타니가 50홈런-50도루를 기록하는 역사적인 경기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상대팀이던 마이애미 말린스의 감독은 같은 팀 코치로부터 오타니에게 50번째 홈런을 주지 않게끔 고의사구로 내보내자는 조언을 받았지만 감독은 일축해버리고 정면 대결을 고수하지요.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해당 결정을 아래와 같이 부연합니다.


“That's a bad move, baseball-wise, karma-wise, baseball-gods-wise. You go after him and see if you can get him out. I think out of respect for the game, we're going to after him. He hit the home run, that's just the deal.”
(그것은 나쁜 선택이다. 야구에 있어서도 카르마 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야구의 신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는 게임에 대해 존중하였고 그와 대결하였으며 그는 홈런을 쳤다. 그게 다다)


야구 감독은 승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죠. 기록이 남습니다. 오타니에게 역사적인 50홈런을 준 팀의 감독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불명예스러운 기록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피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말린스의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야구라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게임에서 이기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그의 Self-image였기 때문에, 본인의 명예에 악영향을 내릴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그는 카르마, 야구의 신 같은 말을 하지요.


처음 말씀드렸던 군대이야기에서 내무실장은 맞선임에게 모자란 후임을 부탁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Self-image를 슬쩍 건드렸습니다. 앞으로 후임에게 대하는 행동이 훌륭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행동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자극을 준 것이죠. 그리고 맞선임은 그에 맞추어 행동하였습니다. 누군가 맞선임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냐고 물어본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단지 교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라구요.


2) 내적 만족


어떤 활동을 하는 이유가 그 활동을 하는게 그저 너무 좋기 때문인 경우가 있습니다. 활동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 행복감이 큰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그저 케익을 만드는 그 자체가 좋아서 케익을 만드는 경우, 게임 방송 해설자를 하는 이유가 그저 게임이 좋아서인 그런 케이스입니다. 이 분들을 구분해 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내어 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기에 안목도 높고 노력도 가능한 한 최대로 투하하지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게 딱 이 말이죠. 좋아서 하는 걸 어떻게 이깁니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최고급 재료와 테크닉, 셰프의 아이디어를 통해 최상의 맛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레스토랑이죠. 단순히 허기를 채우겠다는 목적으로 들어갈 곳은 확실히 아닙니다. 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셰프를 소재로 한 영화 / 드라마 / 예능이 많은데요, 이를 통해 제가 간접적으로 지켜보기엔 이 셰프라는 직업은 스트레스가 참 높은 직업입니다. 방문하는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과 취향을 맞추기 위해, 비싼 식재료를 정교한 방식으로 오차없이 다루어내야 하고, 또한 그 작업을 일정 시간 안에 맞춰서 해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어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실수가 나게 마련이죠. 실수가 벌어진 음식은 손님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객의 눈도 날카로운데다, 셰프 스스로의 자존심이 용납할수가 없죠. 여기에 날카로운 칼과 뜨거운 온도와 높은 습도와 밀접하게 있다는 환경은 모두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듭니다. 당연히 폭언과 모독이 손쉽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죠. 화낸 마음을 진정하거나 다스릴 시간도 없어요. 다음 코스 요리가 나가야 하거든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런 커다란 스트레스에 비해 마진은 높지 않습니다. 한 5 ~ 8%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최고급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떼돈을 벌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인건비 / 임대료 그리고 재료비로 높은 비용을 들이지요. 심지어 셰프들이 홈쇼핑이나 방송 출연을 자주 하는 것도 그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더 많은 부귀영화와 이윤을 남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직원 월급비라도 어떻게 충당해볼까 싶어서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동네 시장의 국밥 맛집이나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해도 마진율은 비슷할 거고, 스트레스는 분명히 적을 거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럼 궁금하죠. 파인 다이닝 오너 셰프들은 왜 고생스럽고 돈 안되는 업을 스스로 선택해서 할까요. 여러 인터뷰를 찾아본 결과, 대부분은 그냥 본인이 좋아서 그리고 하고 싶으셔서 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음식을 고민해서 창조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예술가적인 마인드가 있으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케이스를 대표하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호기심'일 겁니다. 호기심은 사실 가장 이기적인 감정입니다. 그저 더 잘 알고 싶고, 아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겠다는 순수한 내적 만족감 그 자체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도, 괴테의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텔레스와 계약한 것도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내적 만족감을 스스로 찾아 느끼는 사람은 아주 축복받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 외적 애착


사람들은 이기적이라지만, 때로는 정말 자기가 좋아서 남을 돕습니다. 그저 남을 돕는 것 그 자체로 진정 만족합니다. 이 경우도 여러 케이스 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애착 대상을 돕는 케이스입니다. 이 때의 애착 대상은 친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오랫만에 찾아온 손자에게 줄 쿠키를 굽는 할머니,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열심히 도시락을 싸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또 내가 속하거나 속했던 조직이 애착 대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졸업한 모교에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동서양 어디서나 볼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애착 대상이 비교적 외부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포츠 클럽이나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는 팬클럽의 경우죠. 아이돌이나 스포츠 선수가 손자나 모교와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 케이스 또한 진심으로 애착 대상이 잘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실질적인 도움도 아낌없이 줍니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한 이타적인 행위를 광의의 교환관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손자가/모교가/아이돌이 우리에게 어떠한 종류의 즐거움을 제공하니 우리 또한 애정과 서포팅을 통해 지지를 하게 된다는 의견이죠. 하지만 그 말대로 이타적인 행위가 오직 합리적 교환에 불과하다면, 즐거움 제공이 중단되거나 제공받은 즐거움과 제공한 가치의 합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 이타적 행위가 즉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상이 꼭 그러하지는 않지요. 성적이 한 해 나빠졌다고 응원하는 팀을 당장 바꿔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이 쓴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영어 원제 : Exit, Voice and Loyalty)’ 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문제가 발생한 조직에 속한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로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탈’이고 다른 하나는 ‘항의’이죠. 그 중 이 책에서 중요하게 조명하는 것은 바로 ‘항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탈’하지 않고 ‘항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조직이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고 쉽게들 말을 하지만요. 모두가 불만이 생기는 즉시 떠나버리면, 그 조직은 곧 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불만이 누적적으로 쌓이게 되면, 언젠가는 사람은 마음을 접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임계점이 다를 뿐이죠. 사람마다 다른 이 임계점, 견디는 정도를 이 책에서는 ‘충성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책에서 이 ‘충성심’이란 다소 양가적인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충성심이 있는 자는 당연히 조직 내에서 존중받아야 할테지만, 충심으로 ‘항의’를 하는 사람이 되려 조직 내 분란을 일으키는 불충한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하죠. ‘이탈’이 불가능하여, ‘항의’밖에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탈' 할 수 없기에 가장 높은 목소리로 ‘항의’합니다. 그리고 그 항의를 충성심으로 포장하지요. 그러나 이들이 보이는 충성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충성심과는 결이 살짝 다른 것입니다. 이 책은 이렇듯 다양한 충성심의 양태를 보여줍니다.


위에서 말한 ‘애착 대상’을 돕는 케이스는 높은 충성심의 극단에 있는 케이스로 보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이탈’을 하지 않습니다. 정말 심하면 ‘항의’를 시도합니다만, 이내 곧 다시 애착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극단적이니 사례가 희귀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위 콩깍지가 씌였거나, 귀신이 씌였거나 더 나쁜 말로는 대가리가 깨진 상태라고도 하고, ‘가스라이팅’으로 오용되어 쓰이는 바로 그 상태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감정이입이 끝까지 진행되어 완전히 동일시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경우를 광의의 교환관계로 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교환은 교환이 끝나는 순간 그 즉시 종료되는 관계, 다시 말해 낮은 충성심의 극단에 있는 경우라고 봐야 할테니까요.


지금은 이런 케이스가 있다는 것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경우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를 동양에서는 측은지심이라 부르고, 서양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를 내용입니다. 측은지심은 맹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은 이후의 득실을 따지는게 아닌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반죽음이 된 사람을 값없이 돕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심성에 어느 정도는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내재된 심성이 발현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머릿속으로 계산을 벌인 후 이지요.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사마리아인이 도움을 주기 전에 사제와 레위 사람이 길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을 보았음에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는 행위가 어쩌면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법 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낯선 이에게 편히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로 일어날 잠재적 피해를 막아주도록 보장하는 법입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보고 복잡한 계산 없이 도움을 주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법이지요.


심지어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를 행하지 않을 때, 죄책감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대상자가 어려움에 단순히 처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만 어떻게 해결해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 될 것 같은 가능성이 강하게 보였을 때 이 죄책감은 몇 배로 더해지지요. 그래서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어떤 마을을 비춰주면서 기부금 등의 도움을 구하는 광고 등의 TV 광고 같은 것 말이지요. 그래서 이를 ‘빈곤 포르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극적인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재화를 받아내는 행위가 마치 포르노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지요.


대중 매체에서 쓰이는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이미 애착을 가졌거나, 애착의 초기 단계에 돌입한 대상이 사실은 어려움에도 빠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애착 매커니즘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더 하는 것이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에게 주로 이런 방법을 씁니다. 꽤 유망한 능력을 가진 친구인데, 사실은 이런 어려운 사연도 있는 친구였다! 라는 내용을 조금 더해주는 것이죠. 그러면 그 출연자에 대한 응원과 지지가 더 오르게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죠.


세 번째는 보복 또는 복수입니다. 이는 애착과는 상관없으나 애착의 역방향으로 작동하기에 애착의 하위 카테고리에 넣었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든 꼬이게 만들겠다는 심보지요. 어떤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직접적으로 육체적 / 재무적 피해를 준 당사자일 수도 있고, 본인을 무시했거나, 인정하지 않았거나, 부끄럽게 만든 사람일 수도 있구요, 그게 아니면 항상 자신보다 잘나서 강한 시샘을 느끼게 된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피해를 받았고, 이에 대해서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동력이지요. 어쩌면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의식하고 또 집착한다는 면에서 애착과 동일한 지점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테베라는 도시국가에 신성 부대라고 불리는 보병 부대가 있었습니다. 이 신성 부대는 3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특징은 이들이 150쌍의 동성 연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평시에는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용감무쌍하게 싸우게 만들고, 둘 중 하나라도 부상당하거나 전사라도 한다면 그 때부터는 복수에 미친 괴물을 하나 전장에 집어넣는 효과를 노린 것이죠. 실제로도 꽤나 테베에서 강력한 정예부대로서 활약했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쟁이라는 환경에 의도적으로 노출시켜서 헌신과 복수를 유도해내는 것이 참 냉정하고 잔인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보복과 복수를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motivation으로 쓰는 것은 권장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입니다. 우선 보복과 복수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이런 마이너스 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유지하려면, 고통받았던 순간을 주기적으로 떠올려야 하는데, 이는 심적으로 아주 피폐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에서도 나오듯 복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매일밤 쓸개를 햝아야 했고 다른 누군가는 매일 밤 가시덤불에서 잠드는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복수라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이 복수를 위한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특히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설득이 이루어지려면, 1) 조직 전체에 피해를 끼친 대상에 대한 복수여서 설득이 용이한 경우이거나, 2) 앞서 본 ‘피해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것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적인 욕구를 모두 물질적인 욕구로 치환하여 해석하는 시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정신적 욕구를 마치고자 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다 돈 때문 아냐?’ 입니다. 많은 것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정신적 욕구는 사실 표면적으로 제시하는 구실에 불과할 뿐이고 사실은 전부 물질적인 욕구가 원인이라는 해석이지요. 두번째는 진화론이나 유물론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서 정신적인 욕구도 파고들어 분석해보면 사실 거대한 이해득실의 큰 그림 속에 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이런 방향의 해석이 의미있지만 냉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꾸어서 설명한다는 데서, 듣기에만 그럴 듯해 보이기만한 이유와 구실을 잘드는 도구로 해체하여 행동의 실제 원인을 파고들어가 찾아낸다는 점에서, 이런 방향의 해석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의 호의 같은 감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냉소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여행 유튜브를 보다보면 현지인이 여행 유튜버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주다 못해 집까지 초대해서 재워주는 장면이 종종 나오곤 합니다. 누군가 현지인에게 외지인을 왜 도와주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다양한 답변을 할겁니다. 외국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안되어보여 도움을 주고 싶었다. 같은 또래의 자기 자식이나 조카가 떠올랐다. 우리 동네는 손님에 대해 정성을 다해 대접하여 보내야만 비로소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등등. 그러나 꼭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저 대답은 그냥 으레 하는 말에 불과하며 ‘값비싼 고프로를 들고 다니는 모습에 한 몫 잡아보려고 그랬음에 분명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보상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죠. 보상을 기대한 모습을 겉으로는 숨기고 싶어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100% 그 의도로만 행동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계산으로도 행동하지만, 분명히 감정과 전통 또는 습관을 근거로도 행동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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