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지난 번 글에서는 Vision과 Mission의 달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이며, 보다 순도 높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Motivation을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일단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 살펴보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이 필요들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이는 원하는 바에 따라 아주 긴 리스트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아래의 4가지로만 정리하겠습니다.
돈
지위
명예
존중
우리는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돈
무언가를 남에게 제공한다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돈일 겁니다.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개인과 개인 간에 무언가를 요청하고 보상할 때는 돈이 기본 단위이지요. 하지만 돈이 처음부터 이런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의상으로만 따져보면 돈은 ‘다른 물건’과 교환 가능한 매개체입니다. 기본적으로 물물교환의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지요. 그래서 돈은 본질적으로 ‘교환가능성’으로 의미를 갖습니다. 문제는 이 교환가능성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증하느냐이죠. 역사적으로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보증했습니다. 하나는 화폐의 재료입니다. 예를 들어, ‘금화’가 화폐로서 가치를 가졌던 것은 그 화폐가 주조된 재료인 ‘금’이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화폐에 찍힌 숫자 뿐 아니라, 화폐 자체의 물질적인 가치가 교환 가능성을 보증해준 셈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100원을 주고 어떤 물건을 샀다면, 나는 100원을 준 것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100원에 해당하는 양만큼의 금을 준 것이라는 것으로도 이해하자는 것이죠.
또 다른 방식의 보증은 바로 화폐를 발행하는 발행처의 이름이 보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 학생회관 까페테리아에서 발행하는 식권은 그 업체의 사업 실적과 재계약 여부에 따라 언제고 휴지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까페테리아 이외에 다른 곳에서 널리 쓰이기 힘들죠. 당장 까페테리아 옆의 문구점에서도 쓸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반해, 정부 혹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는 최소한 세금을 그 화폐로 받기에 적어도 그 국가 사이즈에서의 사용이 보증됩니다. 그리고 국가가 강대하고 영속성이 보장된다면, 그 국가의 화폐는 국경을 넘어서도 통용됩니다. 달러는 미국 중앙은행이 발행하기에 미국이 망하지 않는한 그 유통 및 사용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달러만 있으면 환전이 가능하고 계산도 가능합니다. 로마 데나리우스 화폐 유물이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발견되기도 하는걸 보면 이러한 강대국 화폐의 강력함은 과거에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는 아주 최근까지 두 방식을 결합한 형태로 돈을 바라보고 이해했습니다. 금태환 제도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세상의 유통되는 종이 화폐의 가치를 그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금고 안에 있는 ‘금’의 보유량으로 보증하는 것이었죠. 현대 경제사에 등장하는 브레튼 우즈 체제라는 것이 이런 형태였습니다. 이 브레튼 우즈 체제는 1970년대까지만 유효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끊임없이 발전하는데, 금의 양은 이를 쫓아갈 수 없다보니 여러 모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현물의 가치를 화폐에 대응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아가, 아예 종이로 찍어낸 화폐보다도 더 많은 ‘돈’들이 전산망을 통해 국경을 넘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보증하는 것은 오로지 각 국가의 이름, 다시 말해 신용 뿐입니다.
돈의 핵심이 이 교환가능성이기에 교환가능성이 커질 수록 돈의 힘과 위상은 커집니다. 세계화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돈은 넓이, 깊이 그리고 속도의 측면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해져 왔습니다. 우선 개인이 접근가능한 시장이 더 커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집 바로 앞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집 바로 앞 마트에서 구할 수 없으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가지고 세계 곳곳의 쇼핑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직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해내는데 필요한 것은 단지 가격표에 쓰여있는 숫자와 동일한 크기의 돈을 지불하는 것 뿐입니다. 깊이는 어떨까요. 이제 시장은 대량 생산의 시대에서 개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의 마지막 한 부분까지 채워넣어주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쇼핑몰과 알고리즘의 능력은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니즈까지 찾아주고 추천해줄 수 있다며 단언합니다. 속도는 어떨까요? 이제 원하는 물건은 대부분 하루 아니면 최소 일주일 안에는 내 집 현관 앞으로 배달됩니다. 단적으로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필요로 하는 것 아니 아직 필요를 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물건까지 일주일 안에 집 앞까지 배달해줍니다. 필요한 것은 가격표와 동일한 숫자의 돈 뿐이지요.
이처럼 강력해진 돈은 생존을 보장하고 당연하게도 향락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돈은 이러한 개인적인 만족에서 나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주요한 열쇠로도 간주됩니다. 돈은 우월함의 상징을 직접 교환하여 소유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소스타인 베블런의 저서인 ‘유한계급론’에 나오는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높은 지위, 그리고 그것의 상징을 구하여 스스로의 자존심을 높이는데 돈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소비의 핵심일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죠. 쇼윈도에는 우월함을 표시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 늘 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물건을 돈을 주고 구매함으로서 주변에 자신을 과시할 수 있게되고, 주변보다 더 우월해졌다며 행복해합니다. 그와 동시에 남들의 과시에 따라 자신이 몰락한 것 같아 불행해합니다. 현대의 발명품인 SNS는 이 매커니즘을 가속화합니다. SNS란 우월함의 과시를 아주 정확히 타겟하는 집단에게, 능동적으로, 쉽고 빠르게 송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이 비교 우위의 달콤함이 크기에, 우리는 빚을 내서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비교 열위의 쓰라림이 너무나도 크기에, 남들과 최소한 동등해질 만한 표시가 될 무언가를 구비해놓으려 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사회학적인 군비경쟁입니다. 말하자면 강대국이 서로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국민의 행복과는 연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미사일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처럼, 야생에서 수컷 공작이 본인이 화려한 깃털을 엘크 사슴이 수려한 뿔을 뽐내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의도하는 바는 모두 동일합니다. ‘나는 이런 화려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제는 누군가의 우월성을 판단할 때에 과시적인 물건의 매개 조차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가진 돈의 양 또는 연 수입의 크기 그 자체만으로 충분합니다. 특히 돈은 숫자이기에 ‘셀 수 있고’ 대소 판별이 직관적으로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하늘색 신발과 까만색 신발, 단화와 장화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천만원짜리 신발과 십만원짜리 신발은 아무리 바보라도 숫자만 읽을 줄 알면, 가격표를 ‘근거’로 하여 우열 비교를 단숨에 가능하게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영화배우가 훌륭한 영화배우인지, 어느 작가가 더 뛰어난 스토리텔러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또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출연료가 회당 1억인 사람과 회당 5천만원인 사람은 바로 계산 가능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 부분에서 자존심을 찾습니다.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사람이 되겠다. 최고의 대우를 해달라 등으로요. 사실 이 정도의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이면 이미 어느 정도의 돈은 큰 의미가 없는 수준에 도달한 사람일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더욱 돈에 매달리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것으로 자신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스포츠 스타들이 종종 재계약 시즌에 ‘자존심을 지켜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이 부분이죠.
한 10여년 전에 한국 인터넷 블로그에 주로 돌아다니던 ‘헤밍웨이의 원고료’ 이야기가 이 케이스의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된 헤밍웨이에게 어떤 기자가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돈에 신경을 쓰지요?” 라고 묻자 “그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할까봐 그렇습니다.”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어로 된 출처를 찾아내지는 못하여 실제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붙여진 가격표로만 사람 또는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답에 근사한 내용을 아주 간편히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자료로서 객관적이고, 숫자로서 정량적이며, 시장의 검증능력은 신뢰할만한 것으로 인정되니까요. 그래서 그 틈새를 이용하는 사기꾼이 최근 여러 차례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휘황찬란한 고급아파트와 고급자동차 그리고 계좌 내 보유하고 있는 예금 금액으로 스스로의 SNS를 도배하여 그들이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지요. 그러한 사기꾼에게 속은 피해자를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인생의 조언이 필요할 때, 연봉 10억인 사람에게 조언을 듣겠습니까, 아니면 연봉 5천만원인 사람의 조언을 듣겠습니까. 수입이란 그리고 자산이란 그 인물의 됨됨이와 인성이나 지혜로운 수준을 온전히 포섭하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입과 자산의 수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는 그 포장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은 쉽게 훅 넘어가고는 합니다. 이는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은 과거에 비해 돈의 능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돈을 많이 가지고 많이 얻는 것이 능력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개인에게 구성원으로 있어주는 대가로서 어느 정도의 돈을 준다 함은 1) 그에게 생존을 보장하고, 2)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향락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3) 그가 사회적인 관계에서 유불리를 점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하며, 4) 건네주는 돈의 크기는 곧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정량적인 점수를 매겨주는 것을 뜻합니다.
지위
보상 및 대가의 하나로 지위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특진이라거나 고위직에 임명한다거나 하는 것이죠. 이러한 지위는 얼핏 보기에 복합적인 보상입니다. 높은 지위는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고, 의전 상의 배려 등을 포함한 여러 명예로움도 제공되니까요. 하지만 지위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돈과 명예를 제공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지위는 돈과 명예의 패키지로서도 작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우리 주변에는 높은 지위이나 수입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도 존재합니다. 또 ‘명예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의 지위인데 명예롭기만 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지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집단에서 지위가 의미하는 것은 권한입니다. 권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타인에 대한 권한이 있습니다. 지위를 가진 사람은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설정된 권한에 따라 관련된 여러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요. 타인에게 지시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상을 줄 수 있고 벌을 줄 수 있다면 그는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지위가 높아질 수록 거느릴 수 있는 인원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원의 숫자는 많아집니다. 다음으로는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에는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소속된 조직의 방향성을 결정하거나, 행동의 기준이 되는 원칙들을 정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결정하지요. 조직에서 지위가 낮을수록 상위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을 단순히 실행하는 역할 밖에 부여받지 못합니다. 물론 실행의 측면에서도 의사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디테일하게 많겠지만, 그에 따른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접근 권한입니다. 권한에 따라 일반적으로는 통제되어 있는 구역에 접근할 수 있고, 통제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더 영향력이 높은 사람과 쉽게 연락할 수 있는 권한도 여기에 속합니다. 높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분명히 지위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권한은 불가피하게 더 많은 책임과 그에 수반되는 많은 업무량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권한만 키워주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더 힘들거나 지치게만 만들죠. 이것은 보상이 아닙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학과의 학생회가 이러한 모습이었습니다. 학생회장은 학과 내 학생들의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명예롭게 선출되며, 학과 대표로서 다양한 회의체 및 과의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정작 학생회장에게 추가로 주어지는 베네핏은 없었죠. 다른 학생과 똑같이 학업을 해가면서 학생회 업무를 해야했기에 학생회장이라는 것은 오히려 페널티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를 추대하는 다수의 사람과 거듭 사양하는 피추대인의 실랑이가 늘 연출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는 높은 지위로 인한 권한의 행사 이외에 이전과는 구별되는 대접, 즉각적으로 피부로 와닿는 무언가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 프로야구에서 마이너리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입성했을 때, 분명히 큰 폭으로 연봉이 상승하지요. 하지만 연봉의 차이가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데는 시간이 들지요. 입금된 연봉이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은 그 돈으로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제공받을 때입니다. 그에 반해, 구단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의 호텔급 품질, 어웨이 경기마다 제공되는 1등석 비행기 표, 무한히 제공되는 야구 용품 같은 것들은 즉각적으로 효능감을 얻는 사항입니다.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봐도, 본인이 승진하였음을 실감하는 순간은 통장에 찍히는 돈보다는 본인의 넓은 개인 집무실, 고급 세단으로 제공되는 업무 차량과 운전기사 같은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사기업, 그 중에서도 대기업에서는 이른바 ‘복리후생’이라는 개념으로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주로 계열사의 상품을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든지, 사내 피트니스를 제공한다든지, 나아가 가족 등에게 건강검진을 제공한다든지 등등의 형태로 제공되지요. 이 복리후생은 단순히 인건비의 절감, 계열사의 매출 상승 등과 같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대기업의 일원이 되었을 때의 지위가 어느 정도 수준이느냐를 판가름 짓는 잣대로 쓰이기도 합니다. 경쟁사 간 복리후생의 수준이 근소 열위이거나 할 때, 구성원은 불만을 가집니다. ‘각각 비용으로 환산하여 다 더했을 때의 연봉은 더 높아요’ 라고 인사담당자가 아무리 항변해보아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둘은 심리적으로 다른 계정으로 잡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미시적 구분은 서비스업계에서 추가적인 매출을 발생시키고자 할 때에도 쓰입니다. 카드사에서 또는 백화점에서 회원 계정별로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라 프리미엄 회원 서비스를 둡니다. 이 서비스의 내용을 세세히 살펴보면, 할인혜택 이외에도 라운지의 이용 권한, 무료 발렛파킹, 구분되어 있는 주차 구역 등 일반 회원과 구분되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하지요.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도 굳이 금액별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세분하게 분할하여 제공하지요.
이 대접은 비단 비용이 수반되는 서비스로서만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미시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기도 하지요. 저도 다른 한국 남자와 마찬가지로 일반 병으로 군생활을 하였는데요, 요즘은 모릅니다만 제가 군생활 할 때만 하더라도 이병 / 일병 / 상병 / 병장 사이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세세하게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류는 공식적인 업무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생활에 일일이 깃들여 있었죠. 예를 들어, 내무실에 눕는 것은 병장만 가능했습니다. 일병부터 걸어다니면서 경례할 수 있었습니다. 흡연 후 담배불을 튕겨서 끄는 것은 상병부터 가능했습니다. 이 외에 기타 기억나지 않는 세세한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까딱했다가 이 규칙을 어기는 경우 크게 혼나야 하니까요. 당연히 이런 종류의 규칙이 드러내놓고 명문화될 수 는 없었기에 하나하나 다 외우고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는 한국 군대의 폐단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닙니다. 계급이 있는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중국 고전을 읽으면 왕과 제후와 사대부와 사(士)는 제사를 치를 때에도 정해진 기간이 다르고 올릴 수 있는 음식도 달랐습니다. 황제가 아닌자가 황제만 쓸 수 있는 그릇을 사용하거나, 황제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벌이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모의 증거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로마제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미시적인 생활 속 차이로 사회적인 위 아래를 구분짓는 매커니즘은 이처럼 동서고금이 동일합니다.
지위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 전에, 보상으로 제공하는데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고자 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슈퍼 히어로가 할 정도로 상식이 되었습니다. 지위란 큰 권한을 주는 것이기에 그 권한을 무사히 수행해 낼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높은 지위에 주어지는 즉각적인 베네핏만을 보상의 종류로서 간주하여 사용한다면, 자칫하여 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발생합니다. 또 지위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에 그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어떠어떠해야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암암리에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주의깊게 살피지 않고 결정자의 독단만으로 높은 지위를 파격적으로 내린다면, 그 지위를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지위를 제공한 자가 정치적으로 몰락하거나 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게 됩니다.
명예
보상의 하나로서 명예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위와 명예는 헷갈립니다. 사회적으로 선을 긋는다는 것에서 유사하고, 희소하다는 점에서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차이는 있습니다. 지위가 권한 및 권한에 뒤따르는 혜택이 키워드라면, 명예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기억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대대손손 기억하자는 것이죠. 이렇게 기록에 남기는 행위가 불멸에 가까울 것이라 여겨질 수록 더 명예로운 것으로 느껴집니다. 승전의 장수로 돌에 이름이 새겨져 남겨진다거나, 마을 어귀에 기념문이 세워진다거나, 이름을 딴 도로나 건물을 세운다든지, 헐리우드 바닥에 이름과 손바닥이 남겨진다든지 하는 것 등입니다. 이는 모두 유한한 삶에 영원의 주춧돌을 놓고자 하는 욕망에서 미롯된 것입니다.
이런 명예에 대한 추구는 스포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NBA의 여러 선수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승 횟수와 우승 MVP 횟수로 스스로가 영원히 평가받을 것을 알기에 오히려 스스로의 연봉을 낮추어 이른바 반지원정대를 결성하고는 합니다. 돈을 많이 준다는 팀보다 우승할 수 있는 팀을 더 선호하는 선수들이 많지요. 리오넬 메시도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기 위하여,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이었던 월드컵 우승을 아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들은 우승 인센티브 금액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영광의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기를 원하는 것이죠.
20세기 초, 남극 횡단을 목표로 결성된 '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는 이른바 인듀어런스 호의 기적으로 유명합니다. 탐험 도중 배가 난파되었고, 이후 모진 자연의 시련 속에서도 탐험대장인 어니스트 섀클턴과 탐험대원의 꺾이지 않은 의지로 전원이 무사 귀환하는 데 성공하지요. 여기에서는 탐험 출발 전 탐험대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인용할 만 합니다. 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MEN WANTED
for hazardous journey, small wages, bitter cold, long months of complete darkness, constant danger, Safe return doubtful, Honour and recognition in case of success.
구인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의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탐험대원들은 비록 뜻하던 남극횡단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성공보다도 더 대단한 명예와 영광을 얻었습니다.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여러 군데에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하고, 이후 다시 어느 배에서 무슨 일을 하던 그들은 어니스트 섀클턴과 인듀어런스 호에 있었다는 사실로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히 여김받고, 내부에서 특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다만 생전에 특별한 재산을 축적하거나, 높은 지위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명예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약속되고 인정받는 보상입니다. 인정받는 사회의 범위가 공간적으로 더 넓을 때에 그 명예는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지역적인 명예와 세계적인 명예는 본질적으로 상하의 관계를 가집니다. 그래서 아시아 챔피언은 결국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죠. 또 시간적으로 길게 영속될 것이라고 간주될 때 명예는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어느 회사 조직이나 동아리보다는 국가 또는 국가에 준하는 국제기구에서 명예를 내렸을 경우, 그것은 최대의 명예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과 저 같이 대부분의 사람이 속하여 보상을 받는 조직은 그만큼 대단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우리 조직에서 최고의 명예를 받은들 이 조직에서 한발자국만 나가도 의미가 퇴색되고, 솔직히 조직 안에서도 2~3년이나 기억이 지속될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조직도 사람도 매년 바뀌어나가니까요. 그렇다면 이 명예를 통한 보상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두 가지의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번째, 영속적인 기억은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잘 남을 수 있도록 장치를 여럿 만들어주세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화려하게 시상을 한다거나, 벽면에, 로비에 또는 홈페이지 어딘가에 보상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사진을 새겨놓는다거나 하는 것이죠. 여러 사정 때문에 얼마안되어 모두 지우고 치우게 될 수도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일단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두번째 조직이 기억할 수 없다면 개인의 삶에라도 깊게 각인되도록 작업을 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트로피를 만든다거나, 특별한 사진을 만들어준다거나요. 조직은 기억을 못할지언정 트로피는 개인의 장식장에 남아 개인의 부모님과 자식이 두고두고 이야기거리로 삼을 겁니다.
존중과 지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저는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제목만 읽으면, 내용을 굳이 안읽어도 된다는 점이죠. 한국인은 칭찬에 인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눠보면 칭찬을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칭찬은 아이를 망친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실제로 칭찬은 어려운 기술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칭찬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글이 한가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누구나 공허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피상적인 내용으로 아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거나 들을 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칭찬이죠.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할까요? 본인이 칭찬을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는 경우에 그러할 겁니다. 사회 심리학에는 자기검증이론(Self Verifica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자기가 스스로에게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대로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서 일관성을 찾고 싶어한다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외모가 아니라 연기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라 독실한 종교인으로 존경받고 싶어하는 사람. 매력적인 스포츠맨보다는 가정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배려해주는 것이 더 큰 보상이 될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Self-image와 연관되어 있는 말이지요.
이 배려에 있어서 취할 수 있는 단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존중과 지지입니다. 타인에 대해 존중한다 함은 타인을 자신과 같은 수준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그의 의견과 생각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을 말하고, 지지는 여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한 독실한 종교인이 되고 싶은 사업가를 그저 기이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을 물어 공감해주고 높이 평가해주는 것이 존중일 것이고, 도움이 되도록 유사한 모임을 소개해주거나 다른 종교인과 연결지어주도록 한다면 그것은 지지일 것입니다.
조직에서는 어떻게 이 존중과 지지를 활용할 수 있을까요. 육성의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맡고 싶은 역할이 있을 수 있지요. 그리고 그것은 정말 예상 못한 어떤 것일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점점 매니저보다는 뛰어난 전문 능력을 가진 실무자로 인정받는 것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매니저로서 주는 부담감과 적은 보상이 원인인지 아니면 정말로 스스로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미지가 실무자이기 때문인지 알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잘못된 솔루션을 내릴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셀프 이미지가 조직 밖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 내 인원을 대하는데 있어서 조직 안의 환경만 고려하는 것은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구성원은 조직 바깥에서도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집에 가면 누군가의 부모 혹은 자식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선생님이기도 할겁니다. 조직 내부 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Self-image를 존중해주고 고려해주는 것도 보상의 한 종류로서 도움이 됩니다. 한국의 기업이 구성원의 경조사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것도 이렇게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회사가 그저 노동에 대한 보상만 주는 계약적 관계 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 아들로서의 위상을 세워주기도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배려는 단순히 들어가는 비용의 정량적인 계산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존중과 지지는 위의 benefit들과는 이처럼 다릅니다. 특히 이른바 외적인 보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쉽게 공식화 할 수 없다는 면이 다르지요. 개인들이 면대면으로 관계할 때 발생하는 일이고, 많은 대화와 교감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사적입니다. 그래서 이 보상이 잘 작동할 때는 무엇보다 강력합니다. 본래 사람이란 본래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선비는 스스로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잘 작동되지 않을 때는 사적인 앙심을 품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해를 끼치려고 들지요.
‘최후통첩 게임’ 이라는 사회적 실험이 있습니다. A, B 두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중 A에게 10달러를 주고 이를 나머지 한 명과 나누게 합니다. B는 이를 승낙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지요. A는 최초의 제안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승낙하면 두 명이 합쳐 10달러를 얻고, 거절하면 두 명이 조금도 돈을 얻지 못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5:5로 제안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승낙을 얻어냅니다. 그러나 9:1, 8:2로 제안받는 경우에는 대부분 거절당합니다. 이는 이상한 일입니다. 이른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돈을 적게 준다고 해더라도 승낙하여 1달러라도 얻는게 맞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불공정한 제안은 존중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고 이는 둘 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방향의 보복심리로 작용하게 되지요.
지금까지 Motivation을 위해 욕구와 베네핏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각각의 베네핏이 어떤 욕구에 대해 대응되는지 그 스펙트럼을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하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Motivation을 실제로 작동시킬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려사항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