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주(공부) 후에 뵙겠습니다!

by 김영주 작가

사주 공부를 하면 좋다. 그동안 전혀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보고 철이 없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부정하곤 했다.


얼굴이 동안이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럴 때면 "제가 철이 좀 없어서요." 하며 쑥스럽게 웃으며 지나가곤 했는데, 사주 공부를 해보니 나는 진짜로 철없는 사람이었다. 철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계절이 흘러가는 시간과 기의 흐름에 둔감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철없는 사람인 내가, 철이 없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철 좀 들고 철 좀 보고 철 좀 느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사주명리는 참 괜찮은 학문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사주명리를 얘기하면 가장 먼저 드는 의문.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에 관한 정보로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고 삶의 지도가 펼쳐진다는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게 말이 돼?


예전 같으면 그저 이러한 물음표만 던지고 나서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거야' 하고 사주명리 세계관 속으로 한 발짝이라도 들어가 볼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속는 셈 치고 그 세계를 좀 보니, 지금까진 거의 해본 적 없는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른바 달력의 문제다. 먼 옛날 인류의 선배들은 살아가면서 점점 달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해가 뜨면서 날이 밝아졌고 어느 순간 해가 사라지면서 어두워지곤 하는 날들의 반복됨을 몸으로 느끼면서, 그러한 변화의 규칙성을 눈치 챈다.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해가 지면 잠을 자야 또 해가 뜰 무렵 일어나야 한다는 몸의 규칙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강 근처에서 사는 이들에겐 강물이 범람하는 때와 마르는 때의 규칙성을 파악하는 게 사는 데 유리했고, 바닷가 사람들은 간조와 만조의 규칙성과 달과의 관련성을 알아낸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살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관찰과 실험과 실패와 시행착오 및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가면서 자연의 규칙과 우리네 삶의 규칙성에 대한 통찰도 깊어갔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르듯이, 서양과 아랍의 사람들은 밤하늘 별의 규칙적인 변화를 관찰하며 점성학 세계관을 만들었고, 동양의 사람들은 해와 달과 사람을 관찰하여 사주명리 세계관을 만든다.


서양이 태양력과 태음력을 베이스로 하는 달력을 만들어내고, 동양은 거기에 사계절의 변화와 변곡점들을 반영한 절기력이라는 체계를 만든다. 1년을 4개의 계절로 구분하고, 12개의 달로 더 나눈 건 공통이다. 동양은 여기에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 매 달 2개의 변곡점의 존재를 알아내 24절기를 규정한다. 입춘으로 시작하여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까지로 한 해가 구성된다.


사주명리에서 한 해의 시작은 양력 1월 1일이 아니다. 입춘일이다. 매년 2월 4일 무렵이다. 곧 다가올 2022년 임인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밤에 하는 연말 가요제전에서 12월 31일 11시 59분 50초에 MC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팡파르와 함께 "네, 드디어 2023년 계묘년 토끼해가 밝았습니다!"라고 감격해하며 외칠 텐데, 두 가지가 틀렸다. 첫째, 2023년 1월 1일은 아직 계묘년이 아니다. 임인년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입춘이 되어야 비로소 계묘년이 된다. 둘째, 토끼해가 밝지 않았다. 자정이 밝긴 뭐가 밝은가. 무지 어둡다. 아무튼, 이렇게 해와 월과 일과 시간의 60갑자 체계를 동양의 한자문화권의 선배들이 만들어 낸 거다.

서양의 생각과 동양의 생각 중 가장 큰 차이는 이거다.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태어나는 그 순간일 때의 해와 월과 일과 시에 만나는 에너지 혹은 기가 아기에게 딱 접목되기에 운명의 여덟 글자가 새겨지는 것이다. 왜 운명일까. 자연의 움직임이 규칙적이 듯이 사람의 움직임 역시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람은 함께 살기에 가족과 사회라는 더 큰 장이 만들어질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처음부터 완전체적인 세계관으로 구축되지 않았다. 살아 보고 살아 보고 살아 보아야 했다.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했다. 가설이 제시되고 관찰하고 고쳐지고 수정되곤 했다. 당나라 때까지는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삶을 풀어도 말이 되었는데, 더 살아 보고 살아 보니 설명이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졌다.


그리하여 송나라, 명나라 때로 오면 해가 아니라 일을 중심으로 해야 설명이 더 명쾌하다는 걸 알게 된다. 자평진전의 세계관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대적하는 세계관들도 출현했고 그러한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다만, 지금 현재도 사주명리 세계관은 명리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에 공론의 장에서 논쟁이 되고 있지 못하다. 소수의 대학원과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 사주명리학과가 개설되긴 했지만, 아직 대학의 과로서 개설된 곳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강호 동양학자 조용헌의 말마따나 한의학과 풍수지리학은 시민권과 영주권을 땄지만 사주명리학은 여전히 불법 체류자 신세이다. 점점 나아지길 바란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에는 명리학이 당당히 과거 시험 과목에 있었다. 공무원 시험 과목이었다는 얘기다. 조선이 망하고 서양의 문물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며 밀려났을 뿐 뜬금없는 학문이라거나 혹세무민 하는 미신이 아니다. 그러니 거리감 둘 필요 없다.


나보다 훨씬 먼저 사주 공부를 하고 있는 드라마 작가가 있다. 며칠 전 카페에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후학인 내가 물었다.


“사주명리 공부 좀 해보니까 좀 어때? 난 지금까지 살면서 내 사주를 들고 가서 좀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너한테 보여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형, 내가 이쪽에 관심을 가진 건 2년 정도 됐는데 본격적으로 책을 보고 유튜브 영상 좀 보기 시작한 건 이제 겨우 1년 좀 넘었어. 그래서 나도 아직 남의 사주팔자를 보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은 안 돼. 근데 이거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난 철학관 같은 데 몇 번 가본 적 있는데 가서 내 원국을 보여주면 그 사람들은 바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작해서 대충 30분 정도 좔좔좔 말하거든? 근데 공부 좀 해보니까 그렇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

“말이 안 된다니?”

“이게 원국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풀이를 하려면 따져볼게 진짜 많아. 천간지지 여덟 글자를 보자마자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야. 적어도 몇 시간은 연구해야 말할 수 있다고 봐.”


그의 얘기는 원국을 보자마자 30분 정도 이른바 썰을 푼다는 건, 지극히 맞춤형이라는 거다. 사실 사주를 보러 철학관을 찾아가는 고객들은 궁금한 것들이 거의 정해져 있다. 입시철에는 자녀의 입시운이 궁금해서 갈 테고, 중년 여성이 표정이 좋지 않게 들어오면 남편 문제일 확률이 많다. 게다가 철학관의 관장님들은 얼마나 많은 고객들을 대해봤겠나. 그들이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을 때 질문 한두 가지 던져보면 대번에 답이 나온다. 먼저 물어보는 고객들도 적지 않을 게다. 우리 애 대학에 붙을까요? 혹시 남편이 바람이 난 건가요? 애 아빠 사업이 잘 될까요? 그러면 그 질문에 해당하는 풀이부터 하기 때문에 속성으로 가능해진다는 거다.


“형, 내가 만약 공부를 더 하고 남의 원국을 어느 정도 풀 수 있는 정도가 되잖아. 그러면 나는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는 그 사람 원국을 받아서 연구를 한 다음에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생각해보면, 강헌 씨가 대학입시에 떨어졌던 19세 겨울 우연히 마주쳤던 친구 아버지가 그의 원국을 달라 하고 나서 사흘 뒤에 오라고 했다.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그게 정상인 거다.


방송작가를 업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사주 공부를 하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많은 생각은 사주명리는 매우 훌륭한 포맷이라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다큐멘터리다. 사주명리에 관한 담론들을 담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꼭 시도해보고 싶은 건 토크쇼다. 출연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사주명리라는 포맷으로 풀어간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색깔의 토크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출연자의 여덟 글자를 하나씩 보면서 그의 삶의 궤적을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사주명리 포맷으로 데이팅쇼를 해보면 어떨까. 과연 운명적인 사람은 있는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다만 방송에서는 사주명리 소재가 심의에 저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튜브 혹은 해외 OTT를 뚫어볼 수밖에 없다. 특히 사주명리 기반의 토크쇼와 데이팅쇼는 해외에 팔 수 있는 포맷 제작도 가능할 것이다.


이밖에도 사주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많고도 많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훨씬 더 많은 내공을 쌓고 다시 찾아오겠다. 지금까지는 이제 막 사주명리 세계관에 들어선 한 사람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두서없이 기록한 이야기들이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공부한다.


여러분, 사주(공부) 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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