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인 6남매 중에서 어찌 보면 가장 성적도 우수하고 착하고 순종적이었던 내가 진학할 수 있는 곳은 일명 '여상'이었다.
언니는 일찌감치 인문계에 진학하였고(아마도 아빠가 큰 딸은 대학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셔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맏이가 잘되면 동생들은 다 잘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것도 같고... 어슴프레 기억나기에는 언니가 울고 불고 해서 갔던 것도 같고..) 밑에 줄줄이 동생들이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건데 그때 인문계에 진학했어도 되었을 일이었는데 뭔가 내 가슴에 형제애 내지는 효녀노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으므로...
아무튼 그 시절에는 여상도 성적순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입 수시원서를 넣고 합격여부를 통지받는 식이었다. 소위 이야기하는 조금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안정권에 넣자는 중3 담임선생님(부채머리와 사무라이머리를 극혐 하셨던 엘레강스한 선생님)의 권고로 네 번째 순위의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어서 아주 멀지도 않았을뿐더러 비교적 번화한 구도심 가까이에 있고 가까운 곳에 대학교도 있던 그런 곳이었다.
이후에 아빠는 내내 보증으로 쫄딱 말아먹은 자신을 탓하기도 하시고 공부 잘하는 너를 대학교에 보냈어야 했는데..라는 한탄도 하셨고.
그 평생의 한탄이 결국은 언니와 나 사이의 큰 골을 만들기도 했었다.
(30여 년 지나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지방대 시간강사로 출강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드림으로써 부모님의 한탄이 좀 수그러들었던가?)
초등학교도, 중학교도(비록 반은 달랐지만) 남녀공학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여자들만 모여있는 학교에 오니 마음이 어찌 그리 편한지,, 게다가 하향안정권으로 진학을 한 터라 1학년 때부터 내리 학급임원을 맡게 되었으니 부모님의 아깝다는 한탄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급임원이라는 완장을 차고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동아리, <전산반>에 들어가서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하고 시험기간에 죽어라 공부하던 그 시절이 나에게는 가장 자존감이 높았던 그런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직선제, 그것도 러닝메이트로 학생회장, 부회장후보가 함께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자신감 충만했던 내가 눈에 뜨였던지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언니와 함께 학생회 임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당연히 큰 표차로 부회장으로 당선이 되면서 학급에서 머물렀던 나의 나와바리가 전 교내로 확장되었다.
여상이다 보니 보이시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게 한몫을 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더 재미있는 건 그 이후로 나를 따르는 많은 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팬들 덕에 다음 해에 학생회장으로 무리 없이 당선되었다는 것도 안 비밀~
쉬는 시간이면 꽃이며 선물을 들고 우리 반으로 찾아오는 많은 후배들 덕분에 매일이 이벤트였다.
이 이야기를 지금 우리 집 삼 남매에게 이야기하면 "엥~~ 엄마가???"라는 반응이다.
이것들아~ 엄마도 한 때는 잘 나갔었어~
얼마 전 앞서 언급한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 중에
"그래~ 네가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한 게 네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였지?"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어쩜 그렇게 내 귀에 쏙 들어와 박히던지...
내가 살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학생회장 출신' 완장을 차며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학생회장으로서 보낸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 재미있었다.
직선제로 선출된 학생회장은 학생회 임원 8명(차장까지 치면 16명)을 뽑고 학생회를 구성해서 학생회 예산도 직접 짜고, 직접 축제도 연출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축제에서는 당시 여대 탈패에서 활동했던 운동권 언니를 불러서 '사물놀이'라는 허울을 씌워서 탈패 공연도 하고 아빠의 한복을 빌려 입고 고사도 지내고(그때는 잠시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므로) 노래자랑도 하고 연극부 연극공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생들이 그걸 어떻게 다 기획하고 진행했었나 싶기도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고등학생 때가 쓸만한 아이디어가 가장 많은 때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그 장면들은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아마 친정에 잘 있겠지??
그렇다고 공부만 하고 학교일에만 매달렸던 건 아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짜장면도 먹으러 가고 돈도 잘 모아두었다가 경양식집에 돈가스도 먹으러 가고 그랬다.
친구들은 당시 홍콩영화에 빠져서 시험 끝나면 영화관에 달려가곤 했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으니.. 돈이 없었던가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가 둘 중에 하나일 듯하다.
(한때 금성무에 빠져서 난리 쳤던 게 기억나는데.. 그럼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 듯)
한 번은 조회시간에 학주(학생주임)가 뭔가 학생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교생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몽둥이로 때린 적이 있다.
사건인즉슨,, 그 당시 규율반은 조회시간에 학생들 줄 서게 하고 조용히 시키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빡친 학주가 규율반 다 나오라고 해서는 학생들 앞에서 몽둥이로 다리를 때리는 거다.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이 맞고 있는 걸 보고 참을 수는 없지.
겁 없이 학주에게 "때리지 마십시오!!!!"라고 강력하게 외쳤더니 나에게도 날아오는 몽둥이.
없어 보이게 울고야 말았지만... 참 억울했다.
나중에 교무실에서 학주를 만나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선생님도 교장&교감 눈치를 보느라 그랬던 것 같았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창 어렸던 학주 선생님.. 아픈 아내를 둔 왜소한 체격의 그 수학선생님이 왜 학주가 됐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네.
지금 그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면 어렸던 나도 기억나지만 선생님들도, 주변의 어른들도,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도 더 깊이 떠올려지는 건 나이 듦의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