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났다. 이번 스웨덴의 여름은 도시 곳곳이 북적였다. 평소와 같았다면 스웨덴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떠났을 테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은 국내에서 근거리 여행을 선택했다. 해외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한반도의 8배 큰 면적의 스웨덴에는 아름답고 풍부한 자연이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이번 호에서는 휠체어를 타고서 숲 속을 거닐고, 쨍쨍한 태양 아래,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ALLEMANSRÄTTEN 자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인간의 기본권 중 스웨덴에는 특별한 게 있다. ALLEMANSRÄTTEN 은 자연에 접근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나는 산물을 채취하고 텐트를 치고 머무를 수 있는 권리이다. 스웨덴 땅의 80퍼센트가 개인 사유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떻게 현실에서 가능한지 놀랍기만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웨덴 사회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흔적들을 볼 때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아도, 물병 하나에 간식을 챙겨 든 가방을 메고 가뿐히 숲 속으로 산책을 갈 수 있는 자유가 비로소 내게도 왔다.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바다
스웨덴에서 만난 친구가 어느 여름날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란스크로나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얗고 고운 모래가 널찍이 펼쳐있고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서 일광욕을 하는, 유럽의 전형적인 여름날 해변가의 모습이었다. 사실 나에게 자연은 너무나 먼 상대였다. 해수욕장을 간다는 계획이 잡히면, 나는 신나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휠체어로 그 모래 위를 걸을까, 내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은 있을까, 물에 들어가고 나가는 건 어떻게 하지. 수많은 질문들에 내가 스스로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이번 여정에서도 마찬 가지였다. 하지만 친구는 내게 윙크를 하면서 나의 휠체어를 나무 데크를 향해 힘차게 밀었다. 해수욕장의 주 출입로에서 50미터를 지나자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는 나무다리가 펼쳐졌다. 200m 길이의 나무다리는 해변에서부터 평평한 높이로 만들어져서 휠체어, 유모차, 보행기가 들어가고 나가기 쉽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다리 위를 걸으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이상한 느낌과 부서질 듯이 반짝이는 바다를 보는 기분은 감격적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내게 더 놀랄 일 이 있다고 나를 이끈다. 다리의 끝에 가보니, 사람들이 바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계단이 이어져 있었는데, 바로 그 옆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었는데, 바닷물이 젖어도 되는 플라스틱 재질로 된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안에 마련되어있었다. 해변용 휠체어로 갈아탄 다음 리프트 역시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내 휠체어를 타고 해변가에서 바닷물에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수월했다. 바닷물이 생각보다 짜지 않았고 뜨거운 여름 날씨 덕분에 적당히 달궈진 물 온도가 수영을 하기 적절했다. 어렸을 적 몸이 작을 때 아빠는 걷지 못하는 나를 계곡 물에 직접 안고 물놀이를 시켜주시던 기억이 났다. 성인이 돼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물이지만, 바다에 한번 가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처음부터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고 보니 스웨덴에 와서도 자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탐색해보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나의 무의식 속에서 혼자서는 바다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잡혀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스웨덴의 좋은 시설 덕분에 가능했다는 걸 흥분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스웨덴 친구들의 반응은 신선했다. “소수의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서 시설을 갖추는 게 아니라, 잘 갖춰진 시설이 하나 있으면, 한 장애인을 돕기 위해서 쓰는 수많은 인력이 절약되고, 그 사람들은 누구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으니까 시간과 경제적으로도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비장애인 중심적인 사고에서는 그러한 시설들이 오직 소수의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비용이겠지만,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지속 가능한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숲 속을 걷는 기쁨
스웨덴의 남부지방, 스코네에는 산보다는 숲 속이 많다. 스코네 지자체는 시민들이 가볼 만한 장소를 인터넷과 책자로 소개했는데, 휠체어나 유모차로 가기 쉬운 곳을 따로 추천하는 정보가 스웨덴 자연 초보자인 내게 매우 유용했다. 장애인 화장실의 위치, 휠체어로 가기 부드러운 산책길 루트, 버스나 차로 오는 길안내 등 꼼꼼하고 빈틈없는 정보들이었다. 사실 장애인들에게 아웃도어가 어려운 것은, 자연의 거친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 같은 신체의 어려움을 가지고 가본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정보가 없음으로 자연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잘 정리된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나는 믿는다. 버스를 타고서 1시간 안에 닿는 Fulltofta 자연 휴양림은 다양한 산책로를 선택할 수 있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뭇잎을 보는 게 묘미인 곳 잇다. 휠체어로 가기 편하다고 해서 인공적으로 돌길을 조성하거나, 나무 데크로만 조성된 곳으로 장애인의 접근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조금은 울퉁 불퉁하지만 힘껏 휠체어를 밀면 지날 수 있는 흙길을 따라가다가 조금 경사진 잔디밭을 지나면, 건축가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최소한으로 설계한 나무데크가 휠체어, 자전거, 유모차, 보행자에게 길을 만들어준다. 나무데크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가장 필요한 만큼 적절한 곳에 있다. 단지 휠체어 마크가 길안내표에 표시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힌트를 줄 뿐이다. 그렇게 오래오래 걷다 보니, 키가 큰 숲에 둘러싸여 나는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자연을 돌보는 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자연이 우리를 말없이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장애가 자연으로 가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 곳
스웨덴 사람들은 유행에 따라 집안의 인테리어를 새롭게 꾸미고, 자주 해외여행을 비행기로 다니며 현대 문물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반면에 모처럼 해가 난 날씨에는 훌러덩 옷을 벗고 바다수영을 하고, 오랫동안 숲 속에서 걷는 것을 좋아하며 캠핑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등 자연과 가깝게 살아간다. 자연으로 가는 일이 그저 노력 없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 우리에게도 그것이 이상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 체험이 없었던 것이 내 불편한 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던 환경이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처럼, 장애가 자연으로 가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한국에서 우리는 얼마나 깊은 논의를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본다.
*스웨덴 남부지방 숲속 여행 안내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카니라 랜드스케이프 재단 https://en.skanskalandskap.se/useful-information/accessibility
사회복지사전문잡지 '소셜워커' 2020년 9월호(Vol. 214)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