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도 먹는 거야.
"엄마 이 것도 먹는 거야?" 딸이 벚나무를 가리키며 말한다.
"어, 먹어도 되는 거야. 따 줄까?" 나는 버찌를 따서 입에 넣어준다.
"씻어야지. 아빠한테 혼나." 딸은 입을 벌리면서 말한다. "비밀이야." 씩~ 웃으면서 말한다.
"안 죽어?" 딸은 의심스럽게 다시 묻는다.
"죽지는 않고 아플 수는 있는데 걱정 마. 10개도 안 먹었으니까."
"맛있다." 딸은 혓바닥을 내밀면서 더 먹고 싶다는 눈빛을 보낸다. "더 줄까?" 나도 한 움큼 버찌를 입에 넣으면서 말한다.
"응, 많이 따서 씻어먹자." 들고 나온 1회용 아이스커피잔을 내민다.
"주전자에 담아야 제맛인데..." 나의 혼잣말에
"주전자가 그릇이야?" 딸은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어린 시절 버찌를 따기 위해서는 주전자가 필수였다. 나무에 올라가려면 손목에 걸고 올라갈 그릇이 필요했다. 그래서 손잡이가 달린 주전자가 최고였다. 그때는 나무도 참 잘 탔다. 이렇게 따온 버찌는 주스도 되고 버찌청 그리고 버찌 술로 변신한다.
내가 힘들면 가족이 건강해져.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역만 다른 시골에서 살고 있다. 딱 3년 정도만 도시에서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숙소는 더 깊은 산속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출근을 하곤 했었다. 그러니 사실 쭉~~ 시골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시골 출신 엄마답게 아이를 키웠다. 엄마의 역할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먹거리에 집착하는 엄마였다. 그것도 인스턴트는 절대 먹이지 않고 키우려고 애를 썼다. 직장을 다녔지만 모유를 먹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재료는 친환경을 찾아서 다 만들어 먹였다. 간식도 만들어 먹였다. 치킨도 찹쌀가루를 입혀서 만들어 먹였고 요플레도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만들어 먹였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 사랑이 지나쳤다. 그래서인지 큰 놈은 지금도 김은 직접 들기름을 발라서 구운 김만 먹는다. 슈퍼에서 양념해서 파는 갈비나 불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 이상한 향이 난다고 한다. 아이들은 내가 직접 한 음식과 사 온 음식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머리를 쓴다. 사 온 음식에 내 레시피를 첨가해서 반반 섞인 맛을 내놓는다. 이제 아이들이 나이도 먹고 눈치도 늘어서 다 맛있다고 말은 하는데 잘 안 먹는다.
예전에 비하면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먹지만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외식도 잘 안 하고 배달음식도 잘 시켜 먹지 않는다. 물론 산속에 살아서 배달이 오지 않는 이유도 크다. 가끔 내가 버릇을 잘 못 들여서 내 신세를 볶는구나 싶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자라주고 있다. 아파도 잠깐 끙! 하면 일어난다. 힘들었어도 "너, 훌륭한 엄마다. 잘했어."라고 나를 칭찬해 주는 이유가 된다.
노동인가? 힐링인가?
내가 진짜 자연친화적 시골 엄마가 된 것은 빌라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다. 아들 둘이 만들어 내는 층간소음 때문에 이사를 결정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이사를 했지만 사실은 나에게도 행복을 주는 선택이 되었다. 정원의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상추라도 심어야지 하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이사를 하고 얼 마 되지 않아 텃밭은 꽤 넓은 평수로 변했다. 집을 짓지 않은 옆집 땅에 풀이 무성했다. 풀을 뽑다 보니 돌을 골라내게 되고 돌을 골라내다 보니 개간한 땅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나의 텃밭은 텃밭이라기에는 넓은 밭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기본 채소는 물론 기본양념이 되는 파, 부추 고추, 마늘, 양파, 콩, 들깨, 참깨 등을 욕심껏 심었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내 본성을 깨우듯 텃밭에서 음식재료를 만들어 먹었다. 콩을 심고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 된장, 간장을 담갔다. 오늘도 나는 계절에 맞게 밭을 일구고 거름을 준다. 씨앗을 심고 모종을 심는다. 가을을 시작하는 내 텃밭은 풍성하고 건강한 우리 집 밥상을 상상하게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집 주변은 간식거리로 가득하다.
봄이 되면 냉이를 캐서 냉잇국이나 나물을 먹고 질경이나 민들레도 반찬으로 변신한다. 그다음에는 쑥을 캐서 쑥국과 쑥개떡을 만들어 먹는다. 아카시아가 피면 꽃떡을 만들어 먹고 집 앞에 벚꽃이 지고 나면 버찌가 있고 그 옆에 오디가 있다. 버찌가 다 떨어질 때쯤 산딸기가 열린다. 산딸기를 실컷 먹고 나면 토마토와 참외가 익어 있다. 이렇게 먹고 나면 가을이 오기 시작한다. 이른 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람쥐처럼 알밤을 줍기 위해 밤나무 아래를 아침저녁으로 왔다 갔다 한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는 새벽부터 나를 깨워서 바가지를 들게 하고 밤나무 아래로 보냈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스스로 밤을 줍고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다 먹지도 않고 사람들 나눠주는데 힘들게 왜 하냐고 애들은 불만이 많다. 엄마 욕심 때문에 본인들이 힘들다는 거다. 그래도 남편은 시키는 대로 잘 줍는다. 다만 썩은 것 벌레 먹은 것 구분을 하지 못하고 주워 오는 게 흠이기는 하다. 자기는 서울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 가족에게 건강한 음식과 간식을 내어 주었다. 나는 그것을 냉큼 냉큼 받아서 먹는다. 감사한 일이다. 물론 부지런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나 얻을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노력한다.
나는 퇴근 후에 또는 출근 전 아침 일찍 시간을 내서 매일 텃밭을 살핀다. 그런 면에서 자식농사와 텃밭 농사는 동일하다. 텃밭에서 씨앗을 심고 채소를 가꾸고 풀도 메고 벌레도 잡는다. 약을 치지 않는 것은 내 철칙이다. 자연에게 얻어먹는 만큼 나도 그 정도는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덥다고 쉬고 춥다고 쉬고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미루면 농사가 엉망이 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다 때가 있듯이 농사도 똑같다. 지인들은 먹거리를 나눌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 먹는 게 가성비가 제일 좋아요. 꼭 건강 생각해서 적당히 하세요". 가족들도 끼니를 챙기지 않고 일을 하거나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사 먹자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나에게는 힐링의 장소이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또는 직장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는 텃밭으로 나간다. 라디오를 들고나가기도 한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라디오 사연을 듣다 보면 위로도 된다.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흙냄새와 그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지렁이도 나에게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 내가 노력하고 관심을 쏟은 만큼 성의 표시를 해주는 텃밭의 채소들은 보람이라는 것을 안겨준다.
그리고 엄마를 많이 생각한다. 4남매 대학 보내느라 밤낮으로 밭과 논에서 사셨던 우리 엄마는 힐링이 아니라 삶을 위한 현실이고 치열한 노동이었겠지?
오늘 저녁은 김장무를 속아낸 열무 무침과
호박을 넣고 끓인 된장으로 저녁 밥상을 차려봅니다.
"고등어구이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