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에 가득 담은 요술 밥상
나는 오늘도 끼니 걱정을 한다. 쌀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찬을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하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요술쟁이 같았던 엄마를 생각한다. 밥때가 되면 엄마가 늘 하셨던 말이 '오늘은 뭐하고 먹나?' 하시면서 큰 바구니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반복되던 그 모습을 생각하다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밖으로 나간 엄마는 잠시 후에 바구니에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가득 담아 들어오셨다.
"엄마, 뭐야?"
"저녁 먹으려고"
"뭐가 그렇게 많아?"
"오이랑, 부추랑 호박이랑, 호박잎도 있고 고추도 있고...."
"나 호박잎 먹고 싶었는데."
"그래 된장찌개 해줄게 싸 먹어."
"와 맛있겠다."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엄마가 따온 호박잎의 껍질을 깠다. 밥 냄새가 솔솔 날 때쯤 엄마가 나를 부른다.
"호박잎 가져와. " 나는 후다닥 샘가로 달려가서 후르르 대충 씻은 호박잎을 들고 부엌으로 뛰어간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는 무쇠 솥을 열고 밥의 중앙을 피해서 옆쪽으로 호박잎을 재빠르게 집어넣고 솥뚜껑을 닫는다.
잠시 후에 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우렁을 꺼내 놓으신다. 우린 다 같이 앉아서 우렁이 속을 꺼낸다. 동생은 하얀색 소금 같은 알을 가지고 논다. 오늘 저녁은 부추와 우렁이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추가된다. 오늘 요술 밥상의 메뉴는 우렁이 된장찌개, 호박잎 쌈, 열무 겉절이, 오이, 새우젓 무침, 빨간 생고추가 들어가서 초록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져 더 먹음직스러운 호박볶음이 차려져 있다. 대청마루에 작은 상 두 개가 차려진다. 할머니와 아빠와 남동생 내가 앉고 다른 하나에는 엄마와 나머지 동생들이 앉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차별을 위한 상이 아니고 큰 상은 제사상으로 쓰던 상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는 내 맘대로 이상 저상을 오가며 밥을 먹었다. 메뉴의 차이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 동생들의 기억은 다를 수도 있다.
"와, 우렁이 맛있어."
"많이 먹어" 된장찌개 속 채소들을 제쳐가며 우렁이를 찾아주시던 아빠가 생각난다. 난 유난히 우렁이나 동태 눈알 같은걸 좋아해서 아빠가 찾아주시거나 빼주시고 했던 기억이 난다.
" 엄마는 요술쟁이 같아."
"요술쟁이?"
"밖에만 나갔다만 오면 반찬이 막 생기잖아."
그렇다 우리 엄마는 요술쟁이가 맞다. 엄마는 평생 밥상만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키워내느라 끊임없이 요술을 부렸다. 자고 일어나면 학교 행사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이 만들어져 있었고 없었던 보충학습비가 마련되어 있었다. 새벽 첫차로 공장에 출근했던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요술을 부린 덕에 우리 4남매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
다만 요술쟁이 엄마의 부작용은 딸들이 엄마처럼 일복이 터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술봉을 잘 못 휘드르셨나보다. 딱 이 장면만 생각하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엄마의 요술 밥상을 흉내 내면서 산다. 봄부터 아니 지난 초겨울부터 텃밭에 가득 심어 놓은 채소들로 밥상을 차린다. 물론 닭도 키우지만 아직 닭을 잡는 것 까지는 따라 하지 못하고 있다. 싱싱한 유정란만 여기저기서 주워다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이 계절에 먹고 넘어가야 하는 고구마 줄기 요리다. 올해 고구마 줄기가 너무 좋아서 고구마는 수확이 꽝일 것 같다. 긴 고구마 줄기를 들어 올려서 굵은 것을 하나씩 딴다. 한 줄기에서만 따지 말고 여러 줄기에서 골고루 따준다. 오늘은 된장찌개에 넣을 것이랑 볶아 먹을거리만 딴다. 며칠 뒤에 고구마 캐기 전에 마저 따서 고구마 김치를 해 먹고 삶아서 나물로 먹을 것을 살짝만 말려 놓을 계획이다. 옛날처럼 바싹 말리지 않아도 된다. 냉동실이라는 보관 창고가 있기 때문이다. 다 딴 고구마 줄기를 가지고 집 앞에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껍질을 깐다. 양이 많지 않아서 삶지 않고 그늘에 앉아서 생으로 깐다. 바로 까는 것은 잘 까진다. 하지만 맨손으로 하면 손끝이 까맣게 변한다. 하지만 나물로 먹을 것은 양이 많아서 삶아서 까야 수월하다. 이렇게 다듬은 고구마 줄기를 들고 빨간 고추도 하나 따서 들어온다.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소금을 넣고 데친 고구마 줄기는 참 예쁜 초록색이 된다. 작년에 농사지은 들깨를 찾아본다. 수제비 할 때 넣어 먹으려고 농사를 졌는데 오늘은 고구마 줄기에 넣을 생각이다. 식탁 아래 놓아둔 들깨를 찾았다. 채에 받쳐서 씻는다. 믹서기에 넣고 후루 루루 갈아둔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마늘도 넣고 양파도 넣고 고구마 줄기를 숭덩숭덩 잘라서 넣고 볶는다. 간장과 된장으로 간을 하고 들어오면서 딴 빨간 고추를 으슥하게 썰어서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깨 간 것을 넣고 버무리듯 볶아준다.' 음식은 대충 해야 맛있다'는 나만의 지론대로 대충 해서 식탁에 올린다. 오늘 내 식탁의 메뉴는 고구마 줄기를 넣은 된장찌개, 고구마 줄기 볶음, 가을상추와 늦고추, 봄에 담은 쌈장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돼지고기 볶음이 추가되었다. 후식은 수돗가 옆 텃밭에 달려있는 빨간 토마토다.
"자기 마트 갔었어?"
"아니, 왜?"
"나물이랑 상추랑 다 있길래"
"아빠는 엄마가 텃밭에서 딴 거야"
"우리 집에 상추가 있었나?"
"아빠는 맨날 봐도 몰라? 상추가 두 군데나 있는데?"
"그래?"
"여기 봐 모양이 다른 상추잖아."
"그러네. 맛있다."
남편은 같이 심고도 시키는 대로만 해서 너무 모르고 딸은 몰라도 좋을 것까지 다 알아채서 문제다. 아들들은 그냥 먹기만 한다.
"엄마는 마술사 같아. 수리수리 마술이 하면 채소가 반찬으로 뚝딱 변한다니까."
"그렇지? 엄마는 마술사, 외할머니는 요술쟁이였는데..."
자연이 주는 밥상은 예나 지금이나 맛있다.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은 예나 지금이나 행복하다.
수리수리 마수리 내가 만들어가는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