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상관없이 열심히 밭일을 하고 나서 먹는 음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난히 맛이 좋다. 논에서 일하는 아빠를 따라가서 놀다 보면 저 멀리 엄마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신다. 나는 단 번에 "엄마~" 하고 달려가서 한 손에 들고 있던 막걸리 주전자를 받아 들었다. 엄마는 논 가장자리 버드나무 아래 광주리를 내려놓으셨다. 광주리를 내려놓으면서 엄마 머리에서 뚝 떨어지던 똬리는 가슴쯤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엄마 입에 물고 있던 똬리 끈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리 안에서 감자밥과 마늘종 장아찌와 단맛은 없고 짭짤한 우리 집 고추장, 부추를 잔뜩 썰어 놓은 양념간장과 열무김치가 차례대로 논둑 풀밭 위에 차려진다. 밥상이 차려지는 동안 아빠는 논 옆에 심어 놓은 상추와 풋고추를 따셨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설치한 양수기 물에 대충 씻어서 들고 왔다. 막걸리와 함께 고시래를 외치고 아빠는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켰다. 나는 그 막걸리 한 모금을 꼭 얻어 마셨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에 할머니가 뉴스가를 넣어서 인지 달콤하고 맛이 좋았다. 그 시절 논둑에 앉아서 먹었던 밥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논에서 먹던 밥보다는 못해도 텃밭에서 일을 하고 이것저것 바로 수확해서 먹는 밥도 입을 달게 만들어 준다. 내 텃밭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쉴 틈이 없다. 이 또한 욕심이라고 누군가 조언했지만 그 욕심 덩어리를 떼어내기가 힘들다. 밭에 남아 있는 고춧대를 뽑고 고추를 모두 딴다. 그리고 아직 싱싱한 고춧잎은 하나씩 훑어서 담아 놓아야 한다. 데쳐서 나물로 조물 조물 묻혀서 먹고 남은 건 말려도 좋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놓는다.
텃밭과 마당에 봄인 줄 알고 나와 있는 가을 냉이를 캐서 챙겨둔다. 향긋한 냉이를 데쳐서 된장에 무쳐먹으면 봄 냉이 못지않게 맛이 좋다.
그리고 이제 무를 뽑아야 한다. 김장에 넣을 무를 뽑아서 무와 줄기를 분리한다. 줄기는 흩어지지 않게 무 밑동이 남도록 잘라준다. 그래야 새끼에 꽂아서 처마 밑에 걸기가 좋다. 이렇게 말린 무청은 겨울이 지날 때까지 먹을 수 있다.
이제 앉아서 새끼를 꼬면 된다. 친정 논에서 챙겨 온 짚단을 풀어서 한 움큼 집어 들고 바닥에 탁탁 쳐서 정리를 한다. 한 가닥을 잡아서 전체를 돌려 묶어주고 두 줄로 나눈다. 손을 비벼서 새끼줄을 꼰다. 가끔 침을 '퇴퇴' 뱉어줘야 하지만 썩 맘에 들 지 않는 행동이다. 손이 건조하면 잘 비벼지지 않기 때문에 꼬기가 힘들어서 하는 행동이다. 처마 밑에 걸 만큼 새끼가 꼬아지면 무청을 새끼줄 사이에 엮는다. 새끼 꼬기는 예전 어릴 때 담배를 엮기 위해서 꼬았던 실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새끼줄에 엮어서 걸어 말리던지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해동해서 먹을 때 껍질을 까서 된장과 복아 먹는다.
오늘은 늦게 심어서 아직 속이 덜 찬 배추도 뽑았다. 계속 밭에 둔다고 속이 차지 않는다. 겉잎은 닭에게 던져준다. 무청 남은 것과 배추를 함께 정리해서 삶을 준비를 한다. 솥에 물을 채우고 집 뒤뜰에서 떨어진 상수리 나뭇잎을 긁어모은다. 큰 아들이 긁어모으고 막내딸이 담아서 나른다. 나는 불을 지핀다. 연기가 나자 남편은 공기 오염시킨다고 질색을 한다.
"나는 낙엽 태우는 냄새가 좋아. 수필도 있잖아." 그건 수필 때문에 좋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나뭇잎을 태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배춧잎과 무 줄기를 넣어서 삶는다. 이렇게 만든 우거지를 정리해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온 가족이 함께 텃밭을 정리하고 먹거리를 챙기는 주말을 마무리한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가을 냉이 무침과 배추 우거지 된장국이 차려진다.
삼겹살에 생냉이를 올려서 살짝 익혀서 상추쌈을 쌓아서 남편이 내 입에도 넣어준다. 꿀맛이다.
아빠랑 엄마랑 논에서 먹을 때와 다른 건
내가 부모가 되었고 나의 노력으로 준비한 밥상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