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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r 12. 2024

1년

1년만큼 멀어진 남편에게


시간이 흘러갔다고 해야 할지 돌고 돌아서 다시 제자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어.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기억하고 싶지만 잊고 싶은 사연 속에 머물러 있는 당신을 보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1년을 보냈어. 먹어야 해서 먹었고 웃어야 해서 웃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3월은 다시 내 곁에 와있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그날 이 시간은 모두가 함께였었지.' 주위를 둘러보았어. 자기가 그려 놓은 그림도 테이블 위에 사진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네.  며칠 전에 법원에 다녀왔어. 기다리는 일만 남았지만 그 끝이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야. 나의 일상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막내를 깨워서 학교 갈 준비를 해.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유치원으로 출근을 해서 일을 시작하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에 독서를 잠깐하고 브런치에 연재를 위해서 즐거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씩 쓰는 작업을 해.


일이 끝나면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잠깐 글을 읽거나 쓰다가 잠들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편이 없으니까 편한 것도 있어. 밥을 꼭 챙겨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났어. 자기는 특히 외식을 싫어했잖아. 퇴근하다가 너무 힘든 날은 아이들하고 칼국수나 짜장면을 사 먹고 들어 오는 일도 전보다는 많아졌어.


 그런데 반대로 엉뚱한 곳에서 눈물이 터지기도 해. 마늘밭에 보온 덮개를 걷다가도 그렇고 막내가 학교에 제출하는 가족상황을 쓰다가도 그래. 얼마 전에 유치원 서랍장 정리를 하다가 자기가 학교에서 받아다 준 커피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다가도  그랬지.  아주 가끔 그러니까 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 애들의 속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잘 지내고 있어.


3월 11일은 아침 일찍 법당에 올라가서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웠어. 1년 동안 잘 버틸 수 있었던 나를 칭찬해 주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는 기도를 했어. 1주기를 기억하고 위로해 주는 신경순 작가의 톡을 시작으로 안부를 물어주는 분들께 답장을 했어. 그리고 3월 11일을 '만화. 웹툰 저작권의 날'로 제정한다는 소식도 전해줬어. 저작권 후진국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납골당에 갔을 때 큰 놈이 전날 밤에 아빠가 왔었다고 한  얘기 들었어? 꿈속에서 번호를 알려줬다고 하는데 이 번주에 다 같이 로또를 살 거야. 나한테는 미안해서 못 오는 거지? 좋은 번호 알려 주러 오면 용서해 줄게.  퇴근 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서진이 엄마가 왔었어. 음력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모르고 왔다가 자기랑 마시려다가 못 마신 한라산 소주  제사에 올려 달라고 부탁하고 갔어. 내가 꼭 한라산 소주 사서 올려 줄게.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어. 별일 없이 지냈는데 몸이 움직일 수 없이 힘들었어. 작년 오늘을 내 몸도 기억하나 봐.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이 삶이 고맙다가도 가끔은 답답함으로 힘들기도 해. 이렇게 1년을 보냈고 아픔에서 멀어지기를 바라는 일이 내 기도가 되었어. 2년만큼 멀어지고 3년만큼 멀어질수록 행복한 기억만 남겠지? 그럴 거라 믿으면서 애들하고 잘 살게.

아직은 그리운 사람아! 안녕!


~내년 봄에는 조금 더 행복해져 있기를 바라면서 마누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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