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비트를 농사지어서 손수 말린 귀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사회에 나와서 만난 두 살 많은 친구다. 사실 언니가 맞다. 하는 일 빼고는 종교부터 성품까지 너무나 다르다. 경쟁자로 만났고 그 관계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린 30년 지기 친구가 되었다. 어려운 회계 문제나 운영계획은 내가 도와주고 일찍 할머니가 된 친구는 내가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나 불끈하고 예민한 성격 때문에 잠을 못 이루면 층층시하 시부모님 모시고 농사짓는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사는 자기를 보면서 성질내지 말라고 위로해주는 언니 같은 친구다. 뜨거운 물로 우려낸 비트 차 빛깔이 친구 마음처럼 너무 이쁘다. 면역력에 문제가 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늙는 것도 서러운데 병원에 자주 가는 것도 서럽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차를 만들어 온 것이다. 다리 건너와서 처음 만난 옆동네 유치원 원장님이다.
시골쥐의 꿈
대학을 졸업하고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과 가깝다는 교수님의 소개를 받고 면접을 보기 위해 낯선 길을 달려왔다. 집을 구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던 나는 교직원 숙소가 제공된다는 조건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신촌에서 버스를 타면서 '나도 이제 서울쥐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들떴던 시골쥐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신촌을 벗어나서 점점 도시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사님께 도착지를 물었다. "거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려 줄게요. 한 숨 자요." 한 숨 자라는 말에 너무나 당황했지만 "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시내를 완전하게 벗어났다. 차창 밖은 추수가 끝나고 군데군데 볏짚이 무더기가 보이는 넓디넓은 논만 눈에 펼쳐졌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아뿔싸! 서울쥐가 되는 건 나의 꿈이었던가?' 그 뒤로도 기사님께 몇 번을 묻고 물었는지 모른다. 기사님 말대로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물살과 강가에 흙이 내가 보던 금강과 달랐고, 바다라고 하기에는 물빛이 내가 알고 있던 푸른 바다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30년 시작의 운명의 다리를 건너왔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도착한 이곳은 신호등도 없는 작은 읍내였다. 밤 9시가 되기 전에 불이 꺼지고 대남 방송이 들리는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곳에서 나는 유치원 교사를 시작했다. 직장 첫 해 큰 사고를 겪고 선배들의 어이없는 상황들을 보면서 1년 뒤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3년 뒤 나는 다시 돌아왔고 30년을 한 직장에서 버티고 있다. 교사에서 원장으로 직책이 변했고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고단한 워킹맘의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첫 번째 친구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주말도 숙소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당시 학부모님께 보내는 안내문도 타자를 이용해서 작성했다. 모든 수업 준비가 수 작업으로 이루어져서 주말에도 숙소와 유치원을 오가며 수업 준비를 했다. 어떤 날은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넓은 교실에 앉아서 일을 하고 어떤 날은 빗소리를 듣고 때론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면서 오리 붙이고 하면서 이곳의 자연과 향기와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점점 서울쥐의 꿈은 사라지고 도시 생활은 해 보지도 못했는데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태 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텃밭농사도 짓고 어쩜 이곳은 나에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친구
주말에도 유치원을 떠나지 않고 지내다 보니 근처 시장이나 산책길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자주 만났다. 자전거도 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같이 놀기도 하고 과자도 사서 같이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가 유치원 숙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12시 30분에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가방만 집에 던져놓고 다시 유치원으로 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도 연락하는 한 놈은 아예 저녁까지 먹고 가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내가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마음을 잡아준 친구가 되었다. 지금에 비하면 유치원 교사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도 형편없었고 유치원과 미술, 피아노 학원의 구분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그때가 참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초임을 보냈고 졸업 때 까지도 명확하게 정하지 못했던 나의 진로가 결정되는 해가 되었다. 가난해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숙소를 따라온 직장이었지만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에 처음 제자들이 되었다. '유치원 교사는 제자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 선생을 기억하는 제자도 없고 중요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좋은 선생이 돼라'라고 말씀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은 틀렸다.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나를 도와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술 한 잔에 마음을 털어놓는 제자들이 곁에 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제자도 있고 제자 학부모도 있다.
두 번째 친구에게 묻어온 소중한 인연들
요즘 동료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힘든 일이 학부모와의 관계라고 대답한다. 아이들하고 지내는 건 두렵지 않은데 학부모님들 대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사실 현장에서 봐도 아이는 아이라서 이해도 되고 예쁜데 엄마의 행동과 말 때문에 당황스러운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학부모님들 때문에 버텼는데.... 믿지 않지만 사실이다. 대학을 막 졸업한 어리바리한 초임교사에게 지금은 환갑이 넘은 그분들은 꼬박꼬박 존대를 하시고 허리를 굽혀 예를 갖쳐주셨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셨고 옥수수라도 찌면 아이손에 배달을 시켜 주셨다. 누구라고 특정할 것이 없이 정이 많았다. 사립유치원이라서 돈을 내고 다니는 곳이었지만 내가 내는 교육비가 얼만데...라는 계산은 없었다. 행사 때 한복이 없으면 기꺼이 빌려주셨고 아이들이 실수를 해서 팬티를 빨아가면 미안해하셨다. 무엇보다 나를 믿어 주셨고 응원하고 격려해주셨다. 나는 그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성장했다. 진짜 내가 잘 난 줄 알고 주저 없이 성장했다.
나를 위한 기록이 시작되다.
더 늦기 전에 나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고 행복한 삶에 시작이 되어준 내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글로 적어 기억하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포장이 덜 된 현장의 이야기로 부모가 된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비트의 효능]
비트로 만든 차를 꾸준하게 마시면 빈혈 예방과 빈 혈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혈관 내의 콜레스테롤과 노폐물, 유해성분을 흡수 배출해주는 황산화 성분은 비트가 가지고 있는 영양소 중 하나인 베타인(색소)은 독소를 해독하고 간세포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비타민과 미네랄과 같은 무기질 성분이 많고 체내 피로 해소를 돕는 칼슘이 풍부합니다. 비트의 안토시아닌 성분이 눈의 피로와 회복을 도와 안구 세포는 물론 눈 근육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