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한국에 상륙했다. '애드워드 호퍼가 누구냐~' 아마 '호퍼'를 몰라도 이 그림은 알 거다. 모르겠다고?
SSG 닷컴 광고 스틸컷
그럼 SSG닷컴 광고의 한 장면은 어떤가? 이 광고 이미지는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 했다.
영화 <이창>, <캐롤>
'호퍼'의 그림은 그의 생애부터 현재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이 되고, 미디어 속의 오마주로 쓰인다. SSG닷컴은 물론이고 공포영화의 바이블을 만들어낸 거장 히치콕과 마틴스코세지, 짐 자무시 감독까지.
그의 그림은 왜 사람들에게 영감이 될까?
보통 전시를 볼 때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한다. 배경지식이 있어야 작가의 그림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번에는 애인의 영향을 받아 오디오를 대여하지 않았다.
"배경지식은 나중에 궁금하면 찾아보면 되고, 일단은 내 감상대로 볼래. 후대에 큐레이터들이 분석한 대로 그림을 보면 그 사람들의 해석대로만 보게 되잖아."
(그래서 이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담았다)
관람 동선에 따라 처음 본 그림은 연필로 스케치한 '호퍼'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호퍼 성격 장난 아니었겠는데?'
그림에는 화가의 자아가 드러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연필 선이나 붓의 터치, 색감에서 모든 게 드러난다. 심지어는 그 그림을 그릴 당시의 심리상태 또한 반영된다. 그런데 '호퍼'의 연필 자화상은? 선이 진하고 두껍다. 망설임이란 없는 듯 거칠고 대담하다. 아니, '호퍼' 하면 떠올리는 그림은 보통 터치 없이 뭉갠 불투명 유화가 떠오르는데... 이렇게 거친 질감이라니? 아마 젊었을 때 한 성깔 했던 게 아닐까... 홀로 추측해 본다.
<도시의 지붕들(1932)>,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1930>
전시는 '호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가 다녔던 곳을 토대로 도심과 자연이 반복해 나온다.
도심을 볼 때면. 불현듯 '호퍼'가 현대 화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극히 현실을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인상파나 낭만주의처럼 옛 화가들의 그림에는 도심이 없다. 자연 풍경을 그렸고, 도시를 그렸다 해도 증기기관차 정도다. 비교적 현대로 들어서면,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기보단 작가의 세계가 담긴 추상이 주를 이루므로 '호퍼'의 그림 같은 사실적인 도심을 보긴 쉽지 않다.
아파트라니. 거장의 미술 전시를 보러 가서 아파트를 그린 그림을 보게 될 줄이야..!
호퍼'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감상하게 된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이지 않은 현대인의 외로움에 공감마저 들게 한다.
<황혼의 집(1935)>,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1930)>
그의 그림 스킬을 보면 백 프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았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구도를 보면, 이 사람이 그 틀을 탈피하려는 것도 보인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구도 때문. 건물의 일부가 클로즈업 된 그림을 볼 때면, 멀리서 찍은 사진을 요즘 인스타 갬성에 맞게 크롭 했다는 느낌도 준다. 현실적인 풍경인데도 일반적이지 않은 구도를 통해 스타일리시하게 다가온다.
보통 지평선의 위치는 중앙에서 약간 아래에 위치한다. 땅은 아래에서 땅의 역할을 하고, 하늘은 하늘답게 드넓게 보이는 것. 그게 비율적, 상식적으로도 맞고,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구도이기 때문. 그런데 '호퍼'는? 지평선이 종이의 상단과 닿을 듯하다. 하늘은 손가락 한 마디 만큼만 보인다. 미술이나 사진에서 정답으로 여기는 구도에 '호퍼'는 도전장을 내민다. 그 때문인지 '호퍼'의 그림은 단절되어 보이고, 불안하고, 더더욱 외롭다. 고독함의 정서가 극대화된다.
이 점은 현대인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왜 '호퍼'의 그림이 유독 많은 오마주가 될까 싶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물론 스타일리시한 그의 그림 스타일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매컴 댐 다리>를 위한 습작(1935)과 <매컴 댐 다리>_출처 한국일보
그림을 보며 한 가지 놀랐던 건, 그는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번의 스케치를 한다는 것.
강 위의 다리를 그린다면, 그 다리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투시가 어떻게 되는지. 건축적으로 접근하고, 제도하고, 스케치해 본 후, 화폭에 담는다.
처음 '호퍼'의 자화상을 보고 너무 거칠어서 '이 사람은 건물의 계단도 다 안 그릴 사람이다' 싶었는데... 와... 이 사람은 계단의 각도와 폭까지 계산할 사람이었다.
<도로와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1909)>
전시장의 후반부로 가면 그가 여행 다닌 곳의 풍경이 주를 이룬다. '호퍼'는 자신의 직업을 화가와 여행가라고 말했단다. 그만큼 그의 삶에서 여행은 늘 함께한다.
여행지의 그림을 보면 '호퍼'의 스타일이 극대화된다. 빛과 그림자. 하나의 면을 이루는 오묘한 색상.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면 붓질이 여러 번 오갔다는 게 보인다. 동일 계열의 색깔이 뭉근하게 섞여 면을 이뤘기 때문. 화폭에 서로 다른 색을 그라데이션 하려면 붓질을 더더욱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유화는 수채화처럼 번지거나 뒤섞이지 않으니, 캔버스 위에서 붓질을 통해 경계를 흐트려줘야 하는 거다. '호퍼'는 한 면에 여러 색을 입히기 위해 이 작업을 얼마나 반복한 걸까?
'호퍼'의 그림을 볼 때면 꼭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볼 것을 추천한다. 앞에서는 다양한 색감과 붓이 오간 흔적을 느낄 수 있고, 멀리서 보면 그 흔적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풍경이 장관인 사진을 볼 수 있다.
호퍼와 조세핀이 함께 본 영화 티켓
'호퍼'의 전시에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두 개 있다. 큐레이터의 영상, 포토존, 상업 일러스트존도 있었으나 그건 누구나 볼 수 있으니 제외. 숨겨진 재미 요소를 말하다면 바로 '액자와 장부'.
출처-k스피릿 "서울시립미술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개최 2023.04.19
전시를 보며 감탄의 감탄의 감탄을 한 건, 액자의 활용이었다. 어떤 액자를 쓰냐에 따라 그림은 확연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반 고흐의 그림에 유리를 씌운 후, 얇다란 금속 액자에 넣는다 가정하자. 그림은 단순 디지털 프린팅으로 전락한다. 거친 터치의 흔적, 물감을 터억 올린듯한 두꺼운 질감,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와 시간이 전부 사라진다. 고흐의 그림은 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두께감 있는 무광의 금색 앤틱 프레임 혹은 어두운 고동색의 원목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호퍼' 전시의 액자는 모두 훌륭했다. 삭막한 도시에서는 도심 속 공사장의 파이프가 떠올리는 무광 스틸 재질이 쓰였다. 액자가 '호퍼'의 도심 풍경의 연장선이 된 것이다. 자연에는 원목이 쓰였고, 장식적인 그림에는 장식적인 액자가 쓰였다. 이건 꼭 현장에서 봐야 액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호퍼'의 스케치가 담긴 작은 수첩이 놓여있다. 그 안의 내용을 영상으로도 제공한다. 그걸 보며, '와 이 사람 아이디어 스케치도 하네' '작업 전에 러프 스케치까지' '와 이 메모 뭐야 진짜 꼼꼼하다' 생각했지만.... 이 수첩은 장부였다.
현대 화가였던 만큼 상업미술을 했던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도 일을 했다. 그러니까, 머언 옛날처럼 '진짜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그림으로 비즈니스'를 했다는 것. 이 장부에는 어떤 그림을 판매했는지 알기 위해 그림의 썸네일을 그렸고, 그것에 대한 메모를 적어놨다. 어떤 물감을 썼는지, 누가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까지 자세히 적혀있어서 장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장 풍경
이번 전시에 '호퍼' 하면 흔히 떠오르는 대표작은 없으나, '호퍼'의 예상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볼만했다.
특히나 액자의 활용이 가장 흥미로웠다다. 액자는 '호퍼'가 직접 제작한 건지 추후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에서 바꾸었는지는 모르겠다만, '호퍼'의 그림을 극극극극대화 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요소.
굿즈샵에서 '호퍼'의 장부를 모티브로 제작한 수첩을 구매했다. 장부로 쓸 일은 없지만, 여기에 '호퍼'처럼 작은 그림을 그려 내 발자취를 기록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