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군대에 가는 걸 당연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도 우리 주위에는 군대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입가에 침을 튀겨 가며 허풍을 떠는 남자들이 많다.
지금은 현역으로 입대하고 싶어도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 있고,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불법을 저질렀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후보자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남자들과 군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여 있는 것이다.
60년 넘게 살아 온 내 인생에서도 군 생활은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날들이었다.
지금은 2년 정도면 복무 기간이 끝나는데 내가 군에 입대할 당시에는 꼬박 33개월을, 흔히 하는 말로 감옥에서 썩어야 할 판이었다.
일제 강점기나 한국동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나나 내 주위의 친구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별별 궁리를 다 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한답시고 집에서 빈둥대고 있었는데 곧 입대하라는 영장이 나올 처지에 놓였다. 군대라는 조직 생활도 싫고,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을 날려버리는 것같아 시간이 아까웠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두 녀석과 의기 투합하여 군대에 가지 않을 방법을 연구했다. 셋은 나이가 같았을 뿐만아니라, 무엇보다도 체격이 왜소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방법인 살을 빼서 체중 미달로 면제를 받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 우리는 55키로 정도였는데, 소문을 듣기로는 45키로 미만이면 면제 대상이라는 거였다.
신체 검사를 3개월 정도 남기고 우리는 체중 감량을 위한 미션에 돌입했다. 밥은 하루에 한끼만 먹고, 달리기로 땀을 빼고, 다시 사우나를 찾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수분을 섭취하면 체중이 많이 나간다기에 목이 말라도 여간해서는 물을 마시지 않았고, 틈만 나면 침을 뱉았다. 7키로 정도 감량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다.
드디어 신체검사를 받는 날. 몸무게를 재 보니 다들 45키로 정도였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신검장으로 갔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한 친구는 무종을 받아 면제가 되었으나 둘은 재검이 나왔다. 너무 오래 되어 검사장에서 잰 두 친구의 몸무게가 얼마나 나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한 명은 성공적으로 면제를 받았지만 둘은 1년 후에 다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체중을 늘려 입대하라는 조처였다.
다음 해에는 또다시 도전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둘 다 체중 관리니 뭐니 아예 포기하고 순순히 입대하기로 했다. 한 살 어린 애들과 동기가 된데다, 괜히 1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 같아 굉장히 억울했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7월 중순에 입대하여 조치원 훈련소에서 한달 동안 신병 교육을 받을 때는 매일매일 황토 먼지 속을 기어다니면서 땀에 절어 지냈다. 특히 가뜩이나 작은 체구에 책이나 보면서 노닥거리다가 무거운 M1 소총을 메고 제식 훈련이나 사격 연습을 할 때는 그냥 이대로 푹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서 어찌어찌 신병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의정부 101 보충대로 가는 밤 열차를 탔다.
'아! 이제 전방으로 배치되어 고생 좀 하겠구나.'
전곡에 있는 열쇠부대에서 또 한달간 훈련을 받고 드디어 연천 청산리에 신설된 4대대 소총수로 배정되어 거기서 제대할 때까지 복무하게 된 것으로 나는 어엿한 대한민국 육군 군필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같이 재검을 받은 그 친구와는 같은 날, 같은 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았고, 자대배치를 받을 때 같은 중대로 배정이 되어, 제대할 때까지 그야말로 전우애로 굳게 뭉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세상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삶의 터닝포인트를 찾게 된다. 군대에 있는 동안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직원이나 하급 공무원으로 인생을 보낼 처지를,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경험하고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국어교사로 바꿀 수 있도록 채찍질 했다고 생각한다.
40명이나 되는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내무반에서, 훈련장에서, 거의 24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학교나 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경험도 많이 있었다. 지금까지 영월이라는 한 지역, 그것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과만 어울리다가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환경에서 지내던 사람들과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었다.
지금 군 생활 3년 동안 얻은 가장 중요한 걸 몇 가지 꼽아 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익혔다는 것, 그리고 죽는 것까지도 크게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집안 형편이 좀 나아졌다는 변수가 있었지만, 안정적인 공무원 직장을 그만두고 7년이나 늦게 대학에 진학한 것도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못할 게 없다는 무모함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모름지기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갔다 와야 한다.'는 논리에 꼭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가 처한 처지에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군대에 안가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과적으로 군대에 갔다 왔기 때문에 좀더 나은 인생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사족 하나.
자대배치를 받은 곳이 새로 만든 대대라서 훈련보다는 작업을 훨씬 많이 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날, 벙커 작업 중 트럭에 살짝 부딪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쉬다가 부대 안에 있는 px에 스카웃 되어 과자나 팔면서 말년까지는 편하게 지냈다.
사족 둘.
그 때 군대 안 가려고 살 빼던 셋 중에 면제 받았던 친구는 안타깝게도 예순을 앞두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등졌고, 입대하여 함께 제대한 친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자주 만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