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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Sep 07. 20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맨 여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나의 지난 여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맨 날들이었다.''



2021년 여름. 코로나가 발생한지 2년이 넘게 지나고 있어 누구나 지쳐갈 때였다. 나름 조심은 했지만 코로나 확진자와의 접촉으로 2 주 동안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 안에만 있어야 하니, 책이나 읽어야 하는데 도서관에도 갈 수 없어서 할수없이 책을 몇 권 사기로 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고 예전에 읽고 싶었던 것도 고려해 보다가 민음사에서 출판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선택했다.


무척 긴 대하소설이라 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없었다면 평생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심정으로 먼저 '스완네 집 쪽으로'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두 권을 구입했다.


처음 50쪽 정도를 읽을 때까지는 괜히 이걸 선택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배경이 150년 정도 전의 프랑스, 그것도 우리네 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귀족들의 생활을 그린데다가, 중세 유럽의 신화로 버무려 있어서 공감은 고사하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인물들의 심리나 배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잘 묘사되어 있고, 외국어를 번역한 것인데도 문체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한 문장이 거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긴 문장을 읽을 때 느껴지는 유장한 호흡은 나를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 푹 잠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주인공 마르셀이 첫사랑 질베르트를 만나는 장면을 프루스트는 이렇게 서술한다.


''그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에 사람의 모습을 부여하여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되찾게 해 줄 부적처럼 주어졌다.''


몇 개의 문장을 중첩시켜 그 의미를 금방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읽는 과정에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일 때 매일 같이 놀던 짝꿍, 남몰래 흠모하던 옆집 소녀,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형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실체라기보다는 우리가 의식 속에서 자의적으로 그려낸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 14권으로 된 이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을지 좀 자신이 없었지만, 두 권을 보고 나니 빨리 다음 권을 대하고 싶은 기대감이 생겼다.



3,4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만난 노르푸아라는 외교관과 작가 베르고트, 그리고 발베크 해변에서 만난 알베르틴 등 여러 소녀들과의 사랑이 시작된다.


작품을 읽다 보면 19세기 말 프랑스 귀족들의 삶은 정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멋지다. 드넓은 저택에서 하인들을 거느리고, 거의 일상적으로 파티를 열어 음악이나 미술 등, 최고의 예술을 즐길 수 있었으니. 그러기에 그 시대에 이런 대단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경이 되는 주위 풍경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를 정말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서술했다.



5,6권 '게르망뜨 쪽'과 7,8권 '소돔과 고모라'도 부피가 있는 데다 19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열심히 읽느라곤 했지만 시간은 정말 오래 걸렸다.


마르셀은 공작의 조카 생루를 동원하고, 아버지의 연줄에 힘입어 마침내 살롱에 진입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고귀함과는 전혀 동떨어진 위선과 천박한 삶의 실체였다.


그런 생활 중에 자기를 너무나 사랑해 주었던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떠나 보내는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이별은 불가피하게 찾아온다. 그러나 진정한 죽음, 영원한 이별은 물리적,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유한한 우리의 삶을 기억 속에, 아니 문학이라는 양식을 통해 영원히 남겨두려는 시도로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다.



9,10권 '갇힌 여인'은 화자가 파리에서 알베르틴을 자기 옆 방에 기거하게 하면서 겪는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는 알베르틴을 너무나 사랑하면서, 그녀의 모든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상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특히 이전에 있었던 알베르틴의 동성애 전력을 문제 삼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하여 결국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녀를 죽을만큼 사랑하면서도 그녀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프루스트의 글은 어려워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책에서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권을 읽는 시간이나 노력이 분량이 비슷한 다른 책 서너 배에 달해서 10권까지 읽는데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이 책에 대한 해설서도 4권이나 읽었고, 책을 읽으면서 멋진 표현이나 공감이 가는 부분을 노트에 적어 놓은 것도 15 페이지 정도나 되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확진자와의 접촉으로 또다시 10일간 격리 생활을 하느라 두세 권 정도를 재독하면서 독서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다.



11 권부터는 아직 출판사에서 나오지 않아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뒤돌아 보니 지난 여름 몇 달은 프루스트의 책에 파묻혀서 지낸 느낌이 든다. 마르셀의 집에서 마르셀의 가족들과 울고 웃으며, 스완네 집 쪽으로 산책을 나서고, 꽃핀 소녀들 속에서 가슴 설레이면서, 또한 나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 날들이라고나 할까?



프루스트의 책은 읽고난 다음 긴 여운이 남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영 동떨어진 세계, 시대의 삶인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건 어쩌면 우리가 이 시대,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깊은 갈망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수십억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백년도 안 되는 찰나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 인간들, 더구나 죽고 나면 무로 돌아가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긴 시간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고 있다. 프루스트는 그 답을 오랫동안 남아 있을 예술 작품의 창작에서 찾았다.



프루스트는 좋은 가문에서 자라 여러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화려한 사교계에서 폼나는 인생을 구가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덧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무려 13년 동안 기본적인 수면이나 음식 섭취 외에는 오직 글쓰기에만 매달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낸 프루스트의 모습은 정말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작가의 꿈은 요원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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