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베리스모는 리얼리즘을 뜻한다. 리얼하다는 것은 현실이나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다. 19세기말 사람들에게는 ‘자연’이라는 용어처럼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말도 드물다. 사회 혁명과 과학적 발견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시대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을까.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프랑스의 자연주의는 과학적 성과나 실증주의를 문학에 담아 표현했다. 작가는 이런 사회를 분석하고 실험하는 자세로 바라보고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반면 이탈리아 베리스모는 과학 태도의 도입보다는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한다. 현실은 고통과 좌절이 넘실댄다. 파고가 너무 높고 드세다 보니 사람들은 삶을 통제할 수 없다. 미래도 낙관할 수도 없다. 원래 베리스모 작가는 주관을 최대로 억제한 채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자연을 기술한다. 낭만이나 신화, 심리적 통찰도 배제한다. 그런데 관찰하고 있는 현실이 지옥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보니 작품들이 염세적이며 비관적이다.
20세기 중반이라고 나아지지 않았다. 1940년대 말 냉전이 시작되면서 기독 민주주의 세력이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전통과 관습이 큰 힘을 발휘하던 곳이었으므로 종교와 군부, 토착 세력이 뒷받침하는 보수세력은 농촌 지역과 도시 중산층 이상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사회주의 계열 또한 대도시 노동 계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이런 양극형 지지율은 나라 전체가 깊이 분열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1922~1975)는 소설 ‘폭력적인 삶’(1959)에서 이 시대 로마 빈민가에 살던 톰마소라는 인물의 짧은 생을 그렸다. 주변 인물들은 너나없이 몰염치한 데다가 불법 행위도 밥 먹듯 저지른다. 그들에게 폭력, 범죄, 매춘은 일상이다. 톰마소 역시 술 마시고 도둑질하고 사람을 칼로 찔러 교도소까지 다녀왔다. 석방된 후에는 부르주아처럼 살아보려 기독민주당에도 기웃거린다. 그러나 이내 발을 빼고 공산당에 발을 들여놓지만 모두 그가 희구하던 이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살면서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러왔다. 그래도 거칠고 폭력적인 인생의 와중에 또렷한 진실 한 조각을 발견하고 죽었다. 홍수로 고립된 가련한 여자와 그 가족을 구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된 결과다. 남긴 소설들이나 영화로 보아 파솔리니는 현실 혐오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체제를 증오했지,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고귀한 인물 하나를 남겼다.
전후 이탈리아에서는 네오리얼리즘 계열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살상, 폐허, 실업, 빈곤이 더욱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둡고 개선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네오리얼리즘은 앞서 말한 19세기 베리스모 운동에 이론적 기반을 두었다. 이 시기의 영화는 파시즘의 선전 영화나 할리우드 식의 관습을 거부한다. 실제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작가나 감독들은 편집을 최소화하고 직설적인 묘사를 중시해 날것 그대로 현실을 전달하려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드라마를 거부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냉전 체제가 지속되고 정치가 우경화되고 경제도 발전하면서 이런 영화들도 점점 줄어든다.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의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1960)은 네오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에 놓일 법한 영화다. 경제가 성장하고 작품들이 자주 검열되면서 작가들은 도시 빈민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부르주아의 심리학으로 눈을 돌린다. 영화는 지식인의 머릿속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물론 그의 내부는 보잘것없이 텅 비어 있다. 세 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은 한 남자의 우울한 초상을 그린다. 현실은 가치, 도덕을 허물어버렸다. 인물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영화 제목은 매우 반어적이어서 누구든 이 남자의 삶이 씁쓸할 거라고 짐작한다. 당시 풍경 달콤한 꿈을 꿀만한 상황이 아니니까. 이탈리아는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기독민주주의가 가장 큰 세력이었으나 사회주의 계열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사람들이 제2정부라고 불리는 소토고베르노 즉, 후견주의 세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친숙해하는 일도 당연하다. 각 파벌 뒤에는 그들을 이용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후견 권력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세상은 표류 중이다. 종교와 보수세력이 연합한 정부는 체제 유지에만 골몰한다. 그들은 개혁하고 싶지 않다.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군부와 사법부가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아직도 1922년 무솔리니와 같이 한 '로마 입성'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개혁이 없다 보니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계속 빈곤층에 머문다. 구원이 불가능한 잔혹 풍경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는 군중 심리를 능숙하게 이용한 파시즘을 겪었다. 그러니 종교나 정치권은 대중을 현혹시키는 데 선수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점을 이용한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성모를 봤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은 아이돌 스타급이다. TV와 기자, 카메라가 중계하고 사람들은 비바람에도 아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간다. 거기에서 신성이라도 발견하려는 듯. 결국 빗속에서 아이 하나가 밟혀 죽을 때까지 광란은 지속된다.
나라는 혼란스럽고 주인공 마르셀로도 대책 없이 흔들린다. 그는 유명인의 가십을 담당한 신문기자다. 그래서인지 하는 일이라는 게 부유층 상속녀 만나기, 여배우 취재하기, 파티 들락거리기 등이다. 그걸 취재라고 부른다. 그도 한때는 미래에의 청사진이 찬란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책도 내고 싶었다. 그러나 더 높이 올라서지는 못한다. 대신 여자들의 품으로 뛰어든다. 그래봐야 하룻밤 어쩌면 몇 시간 관계에 불과하다. 아무도 깊은 감명을 주지 못한다. 부나비들. 얕고 가볍게 인생을 흘려보낸다. 오래된 애인 엠마는 질투에 휩싸이면서도 이 남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음독자살을 기도하다 깨어나서도 마르셀로를 향해 떠나지 말라고 매달린다.
마르셀로에게도 스타이너라는 진지한 친구가 있다. 그는 바흐와 모란디 애호가이다. 마르셀로에게 본격적인 글을 쓰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매우 사랑한다. 어느 날 이 남자가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자신의 두 아이를 쏘아 죽이고 자살한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작품은 모더니즘에 가깝지만 이 에피소드는 사람들의 현재 위치를 리얼하게 드러낸다. 스타이너는 ‘사랑스러운 작은 피조물들’을 이런 세상에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시궁창 같은 현실이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두렵다. 차라리 같이 삶을 마감한다.
타락한 파티가 끝났다. 기생충 같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갔다. 어부들이 새벽부터 잡아온 거대한 고래를 바라본다. 고래는 큰 눈을 뜬 채 죽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저 공허한 눈. 마르셀로를 향해 천사 같은 소녀가 건너편에서 말을 건다. 그러나 그녀와 소통할 수 없다. 그는 천사와 만날 수 없다. 천사의 손이 그를 떠난다. 그는 또다시 부패한, 겉만 번지르한 삶을 향해 떠난다. 달콤함이 없는 달콤한 삶을 기대한다. 마르셀로는 뒤안길을 너무 많이 봐왔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든 속하기가 어렵다. 엠마의 해맑은 결혼이나 미래에의 청사진은 장래는 그가 볼 때 헛된 꿈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씁쓸할까.
지난 세기 이래로 이탈리아의 1950년대는 고단했다. 이 나라의 양극화는 60년대에도 지속된다. 시위와 파업과 같은 저항은 1968년 로마의 대격전이었던 발레 줄리아 전투로 이어진다. 정부와 경찰에의 저항은 곧 폭력과 선동으로 변모한다. 극우인 네오 파시스트는 ‘긴장 전략’을 이용해 공포감을 조성했고 급진 혁명 그룹은 60년대 말 ‘붉은 여단’과 같은 극좌 테러리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이탈리아의 70년대 또한 달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