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도망칠 때가 있다.
갑자기 연락을 끊고,
관계를 멀리 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발 뒤로 물러날 때.
겉으로 보면
그건 회피처럼 보인다.
도망처럼 보이고,
차갑고 단호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 안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가 많다.
도망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던 순간.
기대가 생겼고,
연결이 깊어졌고,
의미가 커졌기 때문에
마음은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버텨내기 위해서.
관계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관계를 잃을 가능성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은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사라지면
기대도 줄어들고,
실망도 줄어들고,
잃을 위험도 함께 줄어드니까.
그 선택은
차가움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에 가까웠다.
마음이 도망칠 때
그 안에는 언제나
모순된 욕구가 함께 남아 있었다.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과
무너지지 않고 싶다는 마음.
기대고 싶다는 욕구와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감정.
그래서 마음은
다가가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
중간 어딘가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 자리는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안전하지 않은 자리였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거리는
포기가 아니라
유예였다.
아직은 지금이 아니라는 판단.
아직은 버틸 힘이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
도망친 마음 안에는
사실 아주 분명한 욕구가 남아 있었다.
안전하게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에 머물고 싶다는 바람.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자리에 대한 갈망.
마음은 떠났지만
욕구까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저 더 다치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도망쳤던 시간들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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