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에서
무너지는 순간을 가장 두려워하던 때가 있었다.
감정이 감당되지 않을까 봐,
지금의 모습이 부담이 될까 봐
마음은 늘 스스로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썼고,
흔들리는 순간에는 먼저 거리를 두었다.
무너진 채로 곁에 남아 있는 건
관계를 잃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는 언제나
‘버틸 수 있을 때만’ 허락된 자리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넘치기 시작하면
나는 스스로를 수습한 뒤에야
다시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내가 무너진 상태 그대로였는데도
떠나지 않던 사람이 있었다.
말이 정리되지 않았고,
감정이 엉켜 있었고,
스스로도 나를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는데
그 사람은 굳이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괜찮아지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설명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앞에서는
무너진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눈물을 급히 닦지 않아도 되었고,
감정을 정리해 와야 할 의무도 없었다.
관계는 늘
서로를 지탱하는 일이라고 배워왔지만,
그 순간의 관계는
지탱보다 ‘이탈하지 않음’에 가까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경험은
마음을 아주 조심스럽게 바꾸어 놓았다.
무너진 상태의 나도
곁에 있어도 되는 존재라는 감각.
그 감각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보다
먼저 숨을 고르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는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너져도 떠나지 않던 사람은
나를 붙잡은 사람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남겨준 사람이었다.
그 경험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오래 기억한다.
관계는
항상 단단한 모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너진 순간에도
곁에 남아주는 연결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 기억은
이후의 관계 앞에서
마음을 조금 덜 움츠리게 만든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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