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청와대 경비하는 부대에서 했다. 군생활 추억이 있다 보니 지금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찬반이 아니다. 그냥 단절에 관한 개인의 서운함이다.
가을에 휴가 나가는 걸 좋아했다. 경복궁 담벼락 따라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가 노란 잎 쏟아내면, 그걸 밟으며 걷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등병 시절 그곳에서 첫 외출했을 때 효자동 한 구멍가게 들어가 초코바부터 샀다. PX에서 볼 수 없는 수입 초코바 손에 쥐고 은행잎 밟으며 자유 만끽하던 21살 가을의 기억이 생생하다. 구멍가게는 지금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생활관 옥상 체력단련장에서는 경복궁 안쪽을 볼 수 있었다. 대단한 구경거리는 없었지만 옥상에서 경복궁 내부 관찰하다 보면 내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군인 신분 된 후 크게 낮아진 자존감이 조금은 살아나는 듯했던 그 옥상의 짠한 기억도 생생하다.
밤부터 아침으로 이어지는 근무를 서다 보면 같은 시간대에 산책하는 동네 주민을 종종 만났다. 매일 아침 커다란 강아지와 느릿느릿 걷던 하얀 수염 어르신을 보며 언젠가 이 근처에서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2018년에 종로구민이 됐으니, 막연했던 바람 13년 만에 실천한 셈이다.
몇 해 전에는 군생활 함께 했던 연범 헌길 성직과 서촌에서 거하게 마신 뒤 라면 두 박스 사들고 부대를 향했다. 정문 보초 서던 일면식 없는 후임병이 “누구십니까” 하는데 “여기 전역자예요. 나눠 드세요” 하고선 라면 박스 놓고 도망친 기억이 난다. 그쪽엔 진상 취객 정도로 보였겠지만 우리끼린 꽤 행복했다.
대통령 경호처도 있고 101단 경찰도 있어 21세기엔 존재의 이유 자체가 모호했던 부대, 김신조의 흔적이었다. 어쨌든 지극히 개인적인 그 흔적이 청와대를 떠날 수도 있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영원히 상실할까 두려운 기분도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