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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Apr 03. 2023

밥벌이 10주년

2012년부터 인턴기자 생활하다가 정식 채용돼 첫 출근한 날짜가 2013년 4월 1일이다. 이달 1일이 기자 생활한 지 만 10년 되는 날이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 빼고 살면서 뭔가를 10년 동안 꾸준히 해본 게 처음이지 싶다.


대학원 다니다가 우연히 언론사 인턴십 들어왔을 때만 해도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갈지 몰랐다. 숨 막히는 연구실 탈출해 광화문으로 출근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을 뿐이다. 채용 확정된 날 광화문 성공회성당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고맙다면서 울었다.


기자 되고 첫 사수였던 민수선배는 칭찬 한 번 없이 스트레이트 기사 습작만 3개월을 시켰다. 처음으로 “쓸 만하다”는 소릴 들은 글은 영국의 어느 빌딩 옥상에 풍력발전 설비가 설치됐다는 시답잖은 기사였다. 민수선배는 이 기사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을까.


금요일자 과학면 마감 후 서촌 넘어가 소주 마시던 막내 시절의 목요일 밤들이 생생하다. 2차에서 끝나든 4차까지 가든 마지막은 늘 다래국수였다. 다래국수 사장님이 바삭하게 튀겨주던 임연수어 구이가 그립다. 지금도 갈 순 있지만 그 시절을 복각할 순 없다.


신혼여행 가서 기사를 썼다. 이런 게 기자 정신인 줄 알았던 시절의 오버였다. 10년 동안 좋은 동료와 취재원을 많이 만났다. 나라를 뒤흔든 특종 경험은 없다. 전국구로 조리돌림 당한 적은 있다. 발제 압박은 여전히 고되다. 여기서 벗어나면 행복해질까.


너스레 떨며 술 받아 마시다가 농과 농 사이에 스을쩍 공장 이야기 끼워 넣어 원하는 답변 들을 땐 스스로 제법 숙련된 기자처럼 느껴진다. 다음날 숙취에 늦잠 자고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노트북 펴놓고 기자실인 척할 땐 내 나태함에 치를 떤다.


기레기 욕하면서 그 활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즐기는 이 세상의 모순을 매일 매 순간 본다. 하나뿐인 입사 동기 아영이는 진작에 기자를 관뒀다. 난 아영이처럼 능력자가 아니라 일단은 좀 더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순간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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