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면 오십

05월 31일 2021년

by WOOJEN

지하 주차장의 차에 시동을 걸면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접어들면 일종의 습관처럼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고속도로를 달린다. 예전보다는 착실한 운전을 하고 있다. 초보 운전자들이나 경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자신들의 운전 실력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라서 가끔씩 운전을 저런 식으로 하냐고 핀잔을 늘어놓기도 한다. 집에서 30분 남짓 걸리는 회사가 내가 다니는 곳이다. 2017년도 10월 중순에 입사하여 4년 차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금방 간다. 어느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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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처지가 그다지 비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과거의 첫 단추 좌표를 요즘은 자주 떠올려보는 것 같다. 사회생활의 처음이었던 맨 처음 회사를 짚어 보면 볼품없는 대학 시절이, 그러다 보면 질풍노도 시기가.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과거 생각이 다시금 이어져 벌써 회사에 다다르게 된다.


운동선수들의 흔한 루틴처럼 회사에 출근한 내게도 그러한 것이 있다. 전날 자료를 취합하여 검토 후 결재를 올리고, 완제품 수량을 영업에 공유하고 관리하는 컴퓨터 파일에 입력하여 데이터를 축척한 후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과 담배 한 모금을 곁들이면 오전 9시 반이다.

평범한 일상 중 비가 오는 날은 숨겨왔던 감수성이 폭발한다. 들고 다니는 USB에는 글쓰기 폴더가 만들어져 있고, 쓰려다 말은 여러 제목의 파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딴생각하듯 새로 만들기를 눌러 지금처럼 글을 쓴다. 언제쯤 끝맺음이 있는 글이 생길지 하고 폴더 안에 든 여러 제목의 파일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특히 비 오는 날에 이런 변덕이 심한 이유가 내 감수성이 원인으로 여전히 알고 있는 상황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악착이셨던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때의 시절에 내 삶의 리듬 변화가 처음으로 생겼던 것으로 여겨진다. 못된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뛰어다닐 나이에 어머니 잔소리가 싫었던 탓에 어머니 병환이 호재로 여긴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놈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누구에게도 오픈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움을 그나마 알아서 일 것이다. 나중에도 두고두고 후회할 대목이다. 엄마,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때에는 모든 것이 소홀했다. 학교생활, 가정생활.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혼란스러운 것을 어린 나이에는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 소식에 큰형이 제복 같은 것을 입은 채로 울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어 가끔 울컥한다. 당시 고등학교 교복이, 나는 군대나 경찰들 제복처럼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시다 보니 어머니 병 치료를 위한 의료보험(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제대로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큰형이 고3이었지만 취업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의료보험에 등재해서 그나마 많은 병원비를 줄일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큰형은 맏이에 대한 부담을 늘 달고 살았다는 얘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형이 대견하다. 아버지의 사회생활 패턴 중 침체기였던 시기에 어머니 병까지 발생한 우리 집안 설상가상의 시절이 그때였다. 그런 시절에 난 처음으로 방황의 시기를 보낸 것 같다.


애써 돌이켜보면 꽤나 똑똑해서 아버지는 늘 내가 서울대에 갈 것을 예언하셨다. 큰형은 한 번쯤 형제 모임에서 대학 진학을 못했던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후회라고 얘기했다. 마음이 짠했지만 이미 지나온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회생활 침체기는 당신 스스로가 많이 배우지 못해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셔서 자식들은 배움이 모자라지 않도록 노력하셨지만 형편상 큰형은 공고에, 여건상 작은형도 공고에, 기대했던 막내인 나는 겨우 지방 전문대에 보냈다. 큰형, 작은형은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될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세월들로 인해 사오십대 시절의 아버지는 아들들과 다소 거리감이 있었을 것이고 서로의 입장을 심도 있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셨다.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세명의 형제가 사오십대에 이르렀으니 과연 아버지와 허심탄회한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잠시 집안 얘기를 더하자면, 큰형은 맏이라는 책임감이 자신의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일들로 인해 현재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긍정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는 큰형의 생각이 고맙고 짠하다. 한편 작은형의 생각을 들어보면 큰형과 비슷하지만 조금의 차이는 있었다. 현재의 길이 자기에게는 적절하다고 느끼고 있고, 자신의 현재 생활을 평범한 삶이라고 표현한다면 앞으로도 줄곧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형들은 비슷했다.


흘러온 시간 동안 늘 다가온 현실을 견디기 위해 형들도 무수한 인내와 희망을 그렸을 것이다. 저도 불쌍한 주제에 형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고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