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산골로 간 까닭
승용차가 많이 없는 시절이었다.
주 5일근무도 생소한 어느 토요일 오후에 퇴근을 한, 그는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지 못하고 지방에서 그녀가 있는 시골로 가야했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그가 도착한 곳은 덕유산이 가까운 거창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라 함양이었지만, 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의 병원이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 앞 정류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버리고 떠난 지 꼭 일 년만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그는 눈치 채지 못하였다. 어색한 웃음으로 간단한 인사를 대신한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버스를 타고 그녀가 기거하는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닭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다. 오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마주친 마을주민들은 그를 보자, 눌러 쓴 모자를 더욱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왜 그런지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목사 내외를 뵙고 나서 그녀가 기거하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기실, 그녀가 사는 곳은 집이라 할 수 없었다. 서까래는 무너졌고 문은 다 떨어져나가 비틀거렸으며 방은 냉기가 가득했다. 그는 그 광경에 억장이 무너졌다. 모두 나 때문이야, 하고 그가 내뱉듯이 말하자 그녀 역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 마을을 다시 찾은 그는 그녀를 못 가게 말리는 한센 병 주민들과 목사내외를 뿌리치고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고향인 부산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아들딸 둘을 낳고 잘 살았다.
이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주5일 근무가 일상이 된 어느 금요일 밤, 그는 퇴근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과 기분 좋게 술을 마신 후, 아파트로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건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간혹 술에 취해 다른 층을 찾아간 적이 있던 그는 몇 번이나 호수를 확인했지만 분명 그의 집이 맞았다. 부랴부랴 집 열쇠로 문을 따 들어간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살림살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엔 지리산이 가까운 산청이었다. 본가와 친구 집을 전전하던 그는 한 달 후에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마을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상수리나무가 버티고 있는 마을 입구에 아내가 서 있었다. 그녀가 다시 그를 버리고 간 지 꼭 한 달만이었다. 이번에도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녀를 따라 집으로 간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와로 된 고택이었지만 그녀가 기거하는 곳은 본채가 아니라 옛날 머슴들이 쓰던 두 칸짜리 방이었다. 겨울이 채 가지지 않은 날에 딸아이가 냉방에서 이불을 덮어 쓴 채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에 억장이 무너져 그녀에게 모두 나 때문이야, 하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때처럼 울지 않았다. 대신 아내는 그의 손을 잡으며 우리 이곳에서 ‘헨리 니어링’ 부부처럼 살자고 조용히 말했다.
그제야 이 모든 게 운명이라 생각한 그는 군소리 없이 정년이 십년이나 남은, 젊은 청춘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후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본가와 처가식구들은 모두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 후 퇴직금과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인근 깊숙한 산골에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자, 느닷없이 그녀는 그에게 새집에서 살려면 그동안 도시에서 행했던 나쁜 습관을 버려야한다며 암환자전용쉼터에 그를 보내버렸다. 그곳은 그의 집보다 훨씬 더 깊은 산골이었다. 결국 그의 고질병인 술, 담배를 끊으라는 소리였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몸서리치게 그를 괴롭히던 직장상사가 이제 아내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눈 내리는 겨울이었다. 한 달 동안 초죽음상태로 그곳에서 보내던 그는 마침내 눈발이 휘날리던 어느 날, 너무 술이 고파서 두어 시간을 걸어서 읍내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는 읍내의 허름한 가게에서 낱담배를 피우며 소주를 마시다 그만 아내의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처참하리만큼 싸늘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배되었다.
이쯤 읽었으면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필자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들 중, 어떤 이는 내가 자발적 가난을 몸소 행하기 위해 산골로 갔다고 하고, 다른 이는 도시의 풍요와 편의를 뒤로 한 채 생면부지의 땅에 자유를 찾아 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사실이 아니란 것을 밝히며, 이 시각 현재 도시를 떠나고 싶은 자들은 하동 이원규 시인의 시 중,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시라’는 지엄한 충고를 현실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