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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May 15. 2023

우울하신 분들 읽어보세요

제가 예전에 약을 먹었습니다. 한 번에 한 80알 정도를 먹었습니다.


소맥과 함께


저만의 황금비율이 있어서 그 레시피로 먹었는데도 이게 말이 80알이지 다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드셔 본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아! 드셔 본 분이 거의 없겠네요.


삼키려는데 약들이 녹아서 입안에서 걸쭉하게 떡지고 쓰고 역하고...... 

글을 쓰는데도 떠올라서 인상이 구겨지네요. 그 떡진 걸 소맥으로 구겨 넣는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튼 왜 먹었냐?


장사가 망했고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도 봤고 결혼하니 마니 했던 여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하면서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그러는데 그 와중에 가 기껏 한다는 말이


"그래서 했어? 했냐고!"


"그게 중요해?"


"어! 제일 중요해!"


"했어... 됐어?"


귀에 이명이 들리면서 화면이 뿌옇게 변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을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달달달 떨리는 손이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 덩그러니 서 있는 냉장고 문을 열어 소주를 집더군요. 병을 내리 다 마시고 병은 홀짝홀짝 마시다가 잠이 든 거 아니 기절을 한 거 같습니다.


기절에서 깨면 또 술 먹고 기절했고 또 눈 뜨면 술 먹고 기절하다가 술을 입에 대니 몸이 시위를 하듯 다 토해내더군요. 위가 뒤집어진다는 말은 느껴 보았지만 위가 뒤집어져 입 밖으로 탈장할 듯 격렬한 반응의 느낌은 처음 느껴 보았습니다.


우울. 제게 우울은 그랬습니다.


빈 가게에 휑뎅그렁 행여나 손님 들어오나 길거리 기웃. 옆가게 기웃...... 

내가 못났고 내가 실패자고 난 망했고 난 쓸모가 없고 다 내 탓이고 월세 낼 돈도 없고 장사가 안 되니 점점 추가되는 메뉴들. 

그간 고심해서 추가한 메뉴들로 수정한 메뉴판을 보니 궁색하고 초라하며 고심한 게 고작 저따위인가?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군요.


보고 싶다. 안 보고 싶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가 보고 싶다. 자랑스럽게 애인에게 잘되는 가게를 보여주고 싶다. 돈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내가 보고 싶다. 친구들에 당당한 내가 보고 싶다. 사우나도 하고 머리도 멋지게 자른 나를 보고 싶다. 내 새 옷이 보고 싶다. 내 새 차가 보고 싶다.


우울증은 안 보고 싶다입니다. 보고 싶은 게 없다입니다.


눈을 뜨면 드는 생각이 다 고통이니 술에 힘을 빌리고 아니 술에 얻어맞아서라도 기절이 평온인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고 싶다. 특히 거울에 비친 나. 안 보여 주고 싶다. 부모님, 애인, 친구들에 초라한 내 가게 초라해진 내 모습 숨기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원을 갔고 약을 처방받았고 약을 먹으면 자야 정상인데 못 잤다고 하니 심각하다고 입원을 권유하더군요. 일반인이 먹으면 24시간 이상을 기절할 용량이라며... 흔들어 깨워도 깰 수가 없는 용량이라며...


"적극적 대처는 입원입니다. 소극적 대처는 사고 친 후 입원이고요. 결론은 결국 입원하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의사가 하며 정말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정말 따뜻하게 제 손을 잡고 말하더군요.


"죽지 마세요."


결국 저는 약을 80알가량을 먹는 사고를 쳤습니다. 처방받은 정신과 약과 그냥 약국 몇 군데 가서 타이레놀 뭐 감기약인지 뭔지 닥치는 대로 사서 가방에 넣고 지금 생각하면 업주분께 정말 죄송한데 여자 친구와 자주 갔었던 모텔로 갔습니다.


습관이 무섭죠. 가던 데 가는...


그런 머리는 또 어디서 떠올랐는지 편의점에서 소주 맥주를 사면서 청테이프도 샀습니다. 기절했을 때 행여나 토할까 봐.


소맥에 약을 다 먹으면 기분이 어떨 거 같으세요?


슬픕니다. 


그제야 엄마가 떠오릅니다.


아빠도 떠오르고 형 누나랑 장난치고 놀던 것도 떠오릅니다. 그래도 마지막 내 얼굴 보고 나한테 마지막 인사나 하자 하고 봤는데 거울에 비친 나는 무슨 포로처럼 청테이프를 입에 붙이고 있네요. 포로처럼 거울 속에 비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또 엄마가 떠오릅니다.


한없이 미안한 마음만......


눈을 뜨니 이게 천국인가? 눈앞에 엄마도 보이고 형, 누나도 보이고 축 처진 어깨로 담배 피우는 아빠도 보입니다.


퇴실을 알려도 아무 반응이 없자 약 16시간 후에 저를 발견하고 모텔 업주가 신고했다네요.


온몸에 피멍이 들어있더군요. 특히 사타구니와 겨드랑이 땀이 많이 나는 쪽은 엄청 심하게요. 주인 잘못 만난 내 몸뚱이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못난 주인 놈 살리고자 혼신의 힘으로 약을 몸 밖으로 분출해서 그렇다네요.


안 죽은 게 다행이라며 그렇게 저는 의사의 예언대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정말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가출하고 말썽을 하도 부려서 감금된 10대 비행소녀가 있었고 머리가 돌아버린 서울대를 나왔다는 박사도 있었습니다. 그 박사와는 바둑을 뒀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바둑판을 제 앞으로 가지고 오면 우린 바둑을 뒀습니다. 수십 판이 넘는 대국 중에도 대화는 단 한마디도 나누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식당 하는 아들은 술 취해서 엄마에게 추행하고 함부로 하는 아저씨 손님들 때문에 화병으로 입원했다고 했습니다. 한 번씩 얼굴이 심하게 붉어지면서 뒤로 나자빠져 발작을 했습니다. 조증으로 하루 종일 신나게 춤추는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귀신이 보이고 정체불명의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는 환청 환각 환자들도 있었네요. 발병 후 3개월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영원히 불치가 된다는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정신분열증 아이와 정말 코미디 에피소드처럼 감나무에서 떨어져 허리의 신경이 뇌에 충격을 줘서 머리가 돌았다는 부잣집 아들도 있었습니다. 엄청 부자더군요. 다중인격이라는 사람도 보았고 손목을 그어서 수십 바늘을 꿰맨 채 입원한 남고생도 보았습니다.


말이 산으로 가네요.


여하튼 시간은 흐르고 저는 퇴원을 하였습니다. 의사가 절대 약 먹으면서 술 먹지 말랬는데 퇴원 기념으로 친구들이 파티를 해줬습니다. 제가 술 먹으면 안 된다는 거 숨겼습니다. 퇴원하니 마시고 싶더라고요. 


거나하게 술을 마시다가 제가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데 술에 취한 친구들이 자기네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저는 벽 뒤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저 새끼 안 죽는다. 솔직히 뒤지려면 뛰어내리면 100프로 성공인데 굳이 약을 처먹었겠노. 지도 안 뒤질 거 알고 저런 거다. 내 이만큼 아프다. 내 좀 알아도 그런 거지. 관종이다. 관종. 씨바 솔직히 안 힘든 사람 어디 있노. 이별한다고 다 뒤지나 장사하다가 망한다고 다 뒤지나. 누구는 안 힘드나 씨바......"


"맞다. 맞다. 술이나 마시자."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그렇더군요. 바로 가지 못하고 벽뒤에 좀 숨어 있다가 이야기의 주제가 바뀌고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훗날  말을 한 친구가 제가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데 저랑 아는 여자와 만난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점마 저거 예전에 여자 때문에 죽니 마니 했던 거 알아요? 에이 만나려면 그 정도는 미리 알아야 되지요. 점마 멘털이 얼마나 약한데요. 호감 있어요? 만나다가 사귀게 됐는데 좀 싸우고 또 헤어지니 마니 얘기 나올 수도 있는데 그때 자살쇼라도 하면 어쩔 거예요? 내가 저거 죽니 마니 할 때 내가 다 케어해 줬다 진짜. 친구들 다 나 몰라라 할 때 내가 가서 얘기 다 들어주고 그랬다. 내가 사람 하나 살렸다니까요."


벽에 기대 둘의 대화를 듣다가 너무 창피해서 핸드폰은 꺼 버리고 술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약이 떨어져 병원에 다시 내원했습니다. 뭐 내 의지라기 보단 가족의 의지로 주기적으로 갔습니다. 염치값은 그래도 해야겠더군요.


"컨디션은 어때요? 잠은 잘 오나요? 식사는요? 사람들과의 관계는요? 술은 드시나요?"


"약 먹기 싫어요."


턱을 괸 의사가 입을 떼고 말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약은 결코 좋은 약이 아닙니다. 뇌를 건드리는 성분이 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되도록 안 드시는 게 좋은데 증상이 있는 환자는 드셔야 합니다. 죽는 것보다 자해나 돌발행동으로 가족들에게 또 본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요. 약 먹기 싫으세요?"


"네"


"그럼 제가 제일 좋은 약국을 하나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네?"


"환자분에 가장 좋은 약국은 환자분 몸 안에 있습니다. 다리가 뭉치면 마사지로 풀립니다. 어깨가 뭉쳐도 마사지로 어느 정도 풀립니다. 하지만 뇌는 신체 기관중 유일하게 마사지가 되지 않습니다. 단단한 두개골 때문이죠. 뇌가 뭉치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느냐? 부정적이고 공격적이고 우울해지고 비관적이어지게 됩니다.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팔이야 하듯이 이마를 짚는 행동은 뇌가 뻐근하다는 말입니다. 근데 다행히도 뇌를 마사지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발바닥에 자극을 가하면 뇌를 마사지하는 효과가 발생됩니다. 발바닥에 자극을 가하는 건 간단합니다. 걷기 그보다 더 좋은 건 달리기. 지속적인 발바닥 자극은 뇌를 마사지해서 활성화시키는데 신비로운 건 일할 때 움직이는 노동의 발바닥 자극은 뇌도 피로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신기하죠? 산책을 하시고 등산을 하시고 달리기를 하세요. 그러면 지구상에서 제일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없는 유익한 약이 나옵니다. 약사도 본인이고 처방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약국이 본인 몸 안에 있는 것이죠. 많이 뛰면 식욕촉진제와 수면제가 나옵니다. 항우울제가 나오고 신경안정제가 나옵니다. 엔도르핀과 세르토닌이 나와서 행복감을 느끼죠. 소화제가 나와서 소화도 잘 됩니다. 모공 깊은 곳에 노폐물이 뽑아내는 화장품이 나오니 혈색도 좋아집니. 다이어트 약이 나오고 혈액이 빨리 돌아 천연 비아그라도 매일 복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말랑해진 뇌와 총명해진 눈으로 타인을 보는 시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랑한 대처의 판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가장 좋은 약국은 본인 몸 안에 있습니다. 꺼내어 먹고 말고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저는 그때 기껏 한다는 소리가.


"아니 의사 선생님 제가 약 지으러 안 오면 손님 떨어지는 거 아니세요?"


약이 먹기 싫었던 저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습니다. 저는 헬스장을 등록했고 무작정 뛰었습니다. 5분에 헛구역질이 나면서 한계에 부딪히고 30분 걷기에도 지겨워 뒤지겠더군요.


뛰고 걷고 뛰고 걷고를 반복하다 보니 인생에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야기하라면 러닝머신 30분 안 쉬고 뛴 그날.


달리면서 끌까 말까 아 그만할까 말까 온갖 고민 끝에 아 씨바 씨바 하다가 도달한 30분 그날의 영광이 지금도 그 성취감이 생생합니다.


"어? 니 웃네?"


"개콘 보는데 웃지 그럼 울까?"


"니 안 웃었다 존나 웃겨도 니만 안 웃었다. 근데 웃네?"


"내가 안 웃었다고?"


달리기 하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보고 안 웃었단 말에 제가 다 놀랐습니다. 정말 안 웃었다는군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연인도 내가 가장 친하다고 했던 친구도 내가 매일 달리기를 하던 상황이었다면 내가 말랑한 눈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자주 웃었더라면 둘 다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탓한 적이 있지만 돌이켜보니 전혀 아닙니다. 다 내 탓입니다. 내가 그들을 떠밀었던 겁니다.


남 탓 하지 마세요.


그건 굳어버린 당신의 뇌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는 것입니다.


2012 입원했고 2013부터 하루 10km씩 매일 달렸습니다. 


"저기 검프 온다. 검프!"


헬스장에서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10km 이상을 뛰고 어떤 날은 22km 하프까지도 뛰니 뒤늦게 알았는데 회원들끼리 저를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렀다더군요. 


달리면


관계의 스트레스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가 턱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헉헉거리는 호흡에선 내뱉고 싶었던 거친 말들이 뿜어져 나옵니다. 불안한 미래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브런치에 가끔 우울증을 겪는다는 글들이 보입니다. 우울하신 분들 저한테 속는 셈 치고 걷고 뛰세요. 저 같은 모질이도 극복했습니다.


장사로 망했던 놈이 작년 12억 매출을 올렸습니다.


예전 친구들 다 안 만납니다. 나를 위하는 건 결국 내가 할 일입니다.


잊지 마세요!


가장 좋은 약국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제인은 떠나고

인생에 역경이 왔을 때

포레스트 검프는 무작정 달렸습니다


전진을 위해 정리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면서요

3년간 달리기만 했던 검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은 그대로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뇌가 말랑해지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오래 달리는 것처럼

꾸준하게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딛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곳에

두발을 딛고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들보다 조금 멍청하면

남들보다 조금 재능이 없으면

남들보다 조금만 더 꾸준하면 됩니다.


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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