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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May 19. 2023

종교 전쟁


햇볕은 쨍쨍 대머리는 반짝이던 초여름이었다.


학교에서 벗어나는 건 언제나 신나는 일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교실에서부터 교문밖까지 와아아아 소리치며 달렸다. 실내화 주머니를 빙빙 돌리면서 서로의 엉덩이를 공격하기 바빴다. 하지만 더운 날씨 탓인지 교문밖을 나서자 그것도 금세 시들해져 버렸다. 


문방구 앞에서 떡볶이와 얼린 빠빠오 그리고 뻥스크림을 보며 침을 흘렸지만 난 돈이 없는 척을 했다. 난 이백 원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 입이 개는 되었기에 차마 돈 있단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난 원은 라면을 사고 원은 오락실에 가서 오십 원씩 넣고 오락 두 판을 할 계획이었다. 우린 흐르는 침을 닦고 다시 털레털레 걸었다. 집 근처에 다다른 친구들은 하나 둘 각자의 집 쪽으로 흩어졌고 승훈이와 이서 걷던 중이었다.


"! 맞다.  내랑 교회갈래?"


승훈이가 말했다.


"회? 왜?"


내가 말했다.


"교회 가면 달란트 주는데 그걸로 공짜 떡볶이 먹을 수 ."


"달란트가 뭔데?"


"교회에서만 쓰는 돈인처음 교회 가면 100 달란트 준다. 그걸로 떡볶이, 사발면, 과자로 바꿔 먹을 수 있고 학용품도 살 수 있고."


"진짜? 그냥 교회에 가기만 하면 공짜로 다고?"


", 우리 동네 누나가 내한테 말해줬는데 나는 교회 나오면 특별히 150 달란트 준다고 했다. 그리고 여름방학 하면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라고 적힌 티셔츠도 주고 1박 2일로 교회에서 캠프파이어도 하러 간다고 했다."


"우와! 캠프파이어? 쥑이네. 그러면 이번주 토요일에 당장 가자!"


"오케바리!"  


손꼽아 기다리던 토요일이 왔다.  승훈이와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에서 제일 큰 교회로 갔다. 


"일찍 왔네. 근데 는 누고? 승훈이 니 친구가?"


승훈이 동네 누나가 말했다. 누나는 피부도 하얗고 큰 눈에 쌍꺼풀도 있는 예쁜 누나였다. 또 걸스카우트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뭔가 공부도 잘할 거 같고 부티도 흘렀다.


"어, 친구도 데리고 왔다. 이름은 뺑그이다."


"안녕하세요."


난 얼굴이 조금 붉어져서 누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뺑그이? 이름이 웃기네. 나는 은주다. 은주. 그냥 은주 누나라고 부르면 되겠네. 일단 안으로 들어 가자. 달란트 시장 다고 지금 바쁘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연갈색 걸스카우트 베레모눌러 은주 누나가 앞장섰고 우리는 그 뒤를 졸졸 쫓았다.


교회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장이 엄청 높고 복도가 펼쳐졌다. 밖에서만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느낌이었다.  토끼눈으로 교회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또각또각또각'


은주 나가 걸을 때마다 교회 복도에 소리가 울렸. 연갈색 걸스카우트 원피스 아래로 단정하게 무릎까지 흰 양말을 올려 신었고 그 아래 벨크로가 있는 까만구두가 보였다. 두의 앞코가 반짝반짝거렸다. 난 내 운동화를 보았다. 흙장난도 많이 하고 축구도 많이 해서 원래는 흰색인데 누레진 운동화가 되게 초라해 보였다.


누나가 안내한 곳에 나무로 된 큰 문을 열고 강당으로 들어섰다. 승훈이와 나는 여섯 명씩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에 다른 애들과 섞여 앉았다. 그러고 마이크가 울리면서 뭐가 뭔지 모르겠는 기도가 시작됐다.


"여기 이 자리에 하나님의 어린양들이 모였슙니다."


"아멘"


"믿슙니까?"


"아멘"


난 목사님이 교장선생님처럼 느껴졌다. 교장선생님이나 목사님이나 참 말이 많구나 싶었다. 억양이 좀 이상했다. 자꾸 슙니다, 슙니다. 습니다를 슙니다라고 발음했다. 난 얼른 기도가 끝나기를 기도했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떡볶이와 사발면만이 둥둥 떠다녔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100 달란트를 받았고 승훈이는 누나의 약속대로 150 달란트나 받았다. 정말 달란트라고 적힌 딱지 같은 종이를 주면 떡볶이를 접시에 담아주고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줬다. 


"우와 쥑인다. 우리 앞으로 교회 열심히 나오자! 결석 안 하면 상으로 달란트 또 준댔다."


"오케바리!"


승훈이와 나는 주택복권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신났다. 우린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었다.


다음날 일요일 오전 8시에 는 잠자리에서 벌떡 다. 그리고 교회 갈 준비를 했다. 치집 지어진 머리를 물로 진정시키다가 은주 누나가 떠올라 귀찮음을 무릎 쓰고 머리를 감았다. 리고 옷장 서랍을 열어 면바지와 남방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삼촌이 입학 선물로 사준 돌핀 손목시계도 찼다.


"니 뭐하노?"


눈이 휘둥그레진 엄마가 내게 물었다. 일 년 내내 위아래가 파란색인 학교 체육복만 맨날천날 입고 다니던 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욕한다고 다른 걸 입히려고 하면 싫다고 생난리를 치던 녀석이 순순히 그것도 스스로 단정하게 옷을 입는 모습에 엄마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하물며 일요일 아침엔 흔들어 깨워도 이불을 돌돌 말고 게으름을 부려야 될 녀석인데 말이다.


"내 오늘 약속 있다. 나갔다 올게. 이백 원 ."


엄마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일 학년 땐 하루 용돈이 백 원이었고 이학년이 되고 이백 원으로 용돈이 인상되었다.


"그래. 자, 이백 원."


엄마는 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이백 원을 주었다. 늦잠도 안 잤고 깨끗이 씻었고 옷도 말끔하게 입었으니 뭐라고 명분이  것이다.


난 신발장을 열어 년에 한 번 신을까 말까 한 랜드로버 갈색 구두를 꺼내 신었다. 엄마가 친척 결혼식에 간다고 사줬던 구두였다. 엄마의 당황해하는 시선이 등뒤로 꽂혔다. 난 무시하고 의젓하게 구두끈을 묶고 대문을 열어 집밖으로 나왔다. 한 블록 정도를 걸었을 때 뒤에서 누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돌아보니 누나였다.


"아야! 왜?"


"니 아침부터 쫙 빼 입고 어디 가노?"


"교회 간다. 교회!"


"교회?니가 거기를 왜 가는데 왜? 지옥 갈까 봐 겁나나? 하하하."


"시끄럽다. 꺼져라!"


누나는 습관적으로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난  때릴까 봐 뒤통수를 손으로 가리고 냅다 교회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교회에 도착했지만 혼자 들어가기가 창피해서 교회 담벼락 에서 승훈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 교회 앞은 사람들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 그리고 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들은 손에 성경책을 하나씩 들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도 하고 악수도 했다. 난 그런 다정스러운 모습들뭔가 부끄럽게 느서 더 담벼락 뒤로 몸을 숨겼다.


" 뺑그이 아이가? 여기서 뭐하노!"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난 놀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 우혁이네."


같은 반인 우혁이었다. 최우혁은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 사는 애였다.


"우혁이 친구가?"


우혁이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단정한 머리를 한 아저씨는 멋있게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신사였다.


"우리 아빠다.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난 꾸벅 인사를 했다.


"우혁이 하고 친하게 지내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네"


"뺑그이 니도 교회 다니나?"


"어제부터 승훈이랑 다니기로 해서 지금 승훈이 기다리고 있다."


우혁이와 우혁이 아빠는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교회 안으로 사라졌다. 우혁이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빠도 넥타이를 맨 양복을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했다. 그러고 보니 교회에 온 아저씨들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 친구들과 걸어가는데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은 아빠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아빠도 교회에 다니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양복을 입지 않을까. 아빠도 교회에 다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양복 입은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덧 교회 앞에 많던 사람들은 다 교회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승훈이는 예배 시간인 9시가 넘어서도 나타나질 않았다.  혼자서라도 들어가 볼까 교회 정문 안쪽 큰 전신 거울 앞까지 갔다.


'또각또각또각'


내 랜드로버 구두에서 은주 누나 구두처럼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난 큰 거울 앞에서 텔레비전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탭댄스를 흉내 냈다. 


'따그닥따그닥따그다다닥'


경쾌한 구두소리가 재밌었다. 난 웃으면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서 옆을 보니 어떤 아줌마가 날 보고 서 있었다. 난 창피해서 얼른 교회밖으로 달려 나왔다. 희미하게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씩씩거리면서 승훈이 집에 갔지만 승훈이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난 쫙 빼 입은 보람도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니 어디 갔다 오노?"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선 내게 따져 물었다.


"왜?"


"누나한테 다 들었다. 니 교회 갔나?"   


"어, 왜? 교회 가면 안 되나?"    


"하이고야......"


엄마가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  


"니 한 집안에 종교가 두 가지면 집안에 우환 생기는 거 아나 모르나? 우리 집은 불교고 부처님을 믿는데 니가 교회 댕기면 부처님이 이놈! 하고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거라. 함부로 교회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알았나!"    


"그런 게 어디 있노! 나는 이제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갈 거다!"


"하이고야, 야가 큰 일 날 소리를 하네. 니 교회가 어떤 덴 지는 알고나 나?"


"알지!"


"뭘 아는데?"


"음... 절은 맛없는 풀만 주고 맛없는 비빔밥 주는데 교회는 맛있는  많이 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산타할아버지가 선물도 주고 카드도 서로 주고받고 사람들이 다 신나는 축제다. 근데 부처님 오시는 날은 아무도 안 신나잖아. 그리고 교회는 여름에 여름성경학교라고 해서 캠프파이어도 하고 교회는 꼬박꼬박 잘 나오면 용돈처럼 달란트 보너스도 준다."


"하이고야, 교회가 이래 무섭다. 어째 하루 만에 아를 이래 꼬시 놨노. 하이고야, 보통 큰일이 아니네."


그때 안방 문이 활짝 열렸다. 아빠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니 욜로 와서 앉아 봐라."


"왜?"


"아부지가 앉으라면 앉아야지 어디서!"


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았다. 아빠는 양반다리를 하고 내 앞에 앉았다


"니가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노, 니가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느냐 이 말이다. 대답해 봐라."


"엄마 아빠가 낳았으니까."


"그렇지! 그러면 이 아빠 엄마는 또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노? 말해 봐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낳았으니까"


"그렇지! 니는 아빠 엄마가 있으니 니가 존재하는 거라. 그리고 아빠 엄마는 할아부지 할무이가 존재하니까 내가 있고 엄마가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위에 또 할아부지에 할아부지가 있고 할무이에 할무이가 있으니 할아부지 할무이도 존재한다 이 말이다. 그러니 결국 니가 존재하기 위해서 위로 또 그 위로 또 그 그 위로 다 조상님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지금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조상을 섬기고 예를 갖추는 것은 우리 후손이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자 의무인기라. 그게 뭐고? 말해 봐라."


"제사."


아빠는 술을 많이는 못 마시는데 술을 마셨다 하면 이 말들을 술주정처럼 자주 해서 귀에 못이 박힌 상태였다.


"잘 아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제사를 안 지내는 거 니 알고나 교회에 갔나?"


"? 그거는 몰랐는데?"


난 그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 봐라. 이 봐라.  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제사도 안 지낼 거네? 엄마, 아빠가 겨우 일 년에 한 번 맛있는 거 먹으려고 꼬박 기다렸다가 밤 12시에 느그 집에 갔는데 허탕치고 아무것도 못 먹고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가야 되겠네? 와 섭섭하네 이거!"


"......"


"좋다. 아빠가 니 교회 안 간다 하면 니한테 선물 하나 줄게. 뭐해주꼬 통닭 사주까? 장난감 사주까?"


난 속으로 오! 예스! 를 외쳤지만 심드렁한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머릿속으로 무얼 선택할지 엄청난 속도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 교회 안 갈 테니까. 내 보이스카우트 시켜도!"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엄마 쪽을 보았다. 엄마도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가 번뜩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하이고야, 그거 다달이 회비 내는 거 아니가? 옷 사야지 뭐 회비 내야지. 그거 돈 많이 든다카든데. 근데 그거는 왜 하고 싶은데?"


난 보이스카우트 옷이 입고 싶었다. 특히 허리춤에 찬 밧줄이 멋있었고 노란 스카프를 고정시키는 곰, 사자, 늑대 같은 마스코트도 멋있었다.


"보이스카우트는 세계에 평화를 위해서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


"하이고야, 니 집 어질지 말고 청소나 라. 밥 먹은 거 설거지도 하고 양말이나 잘 뒤집고 하이고 봉사? 기도 안찬다. 엄마가 말했제? 우리 집살 때까지는 아끼고 또 아껴야 된다고 뱁새가 황새 쫓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거다. 알겠나! 고마 통닭이나 한 마리 먹어라."


통닭은 차마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었다.


멕시칸 양념통닭이 먹고 싶다고 했지만 괜히 메이커 이름값으로 돈만 더 받아낸다는 엄마의 논리로 시장통 켄터키통닭집에서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를 다. 누나는 나 때문에 얻어먹게 된 주제에 내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닭다리부터 는 염치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달란트를 받으면서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는데 매주 일요일 오후 11시 정도면 교회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나를 찾았다. 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내 방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고 엄마는 10시 30분부터 천수경이라고 적힌 테이프를 전축에 넣고 틀었다.


"안녕하세요? 계십니까?"


엄마는 전축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교회사람들이 등장하면 볼륨을 더 크게 높였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하이고  자꾸 오십니까. 우리 집은 불교라예. 반야심경 들리지요. 우리 집은 하루종일 이거만 듣습니다.  근이가 뭣도 모르고 맛있는 거 준다니까 친구 따라갔다는데 죄송합니다. 근데 교회는 못 갑니다. 불교라예. 불교."


나와 누나는 잠근 방문에 귀를 대고 밖에 상황을 살폈다.


"예, 어머니. 이 믿음이라는 게 처음에는 낯설고 그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얘기도 좀 들어보고 교회 나와서 좋은 말씀도 듣고 형제분들과도 지내다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실 겁니다."


"하이고 하이고 그 얘기는 저번 주에도 했던 말 아닙니까. 고마 우리는 살던 대로 살게요. 만 오셨으면 합니다. 내 우리 근이가 먹은 거 두 배로 아니 세 배로 보상할게요. 자꾸 이래오셔서 서로 될 일이 아닙니다."


"네, 어머니 그러면 딱 5분만 주시겠어요?"


모든 게 나 때문인 듯해서 미안했다가 또 승훈이 이 새끼 때문이라고 원망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나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아야!"


"쉿! 조용해라!"


누나가 소곤소곤 말했다.


"왜 때리는데!"


나도 소곤소곤 말했다.


"바보야, 주소랑 전화번호를 엉터리로 적어야지 니 바보가?"


"아! 맞네. 근데 누나는 그거 어떻게 아는데?"


"나도 달란트로 떡볶이 먹었지롱! 나도 먹기만 하교회는 안 나갔다.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다 다르게 쓰고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진짜가? 아 내만 그 방법을 몰랐네. 근데 누나가 이따가 점심밥 먹을 때 엄마한테 짜파게티 끓여 달라고 말 좀 해주면 안 되나? 원래 일요일 점심은 짜파게티 먹었는데 교회사람들 오고나서부터 엄마가 아예 안 끓여준다이가."


"다 니 때문이다이가! 니는 한 대 더 맞아라!"


"아야!"


교회사람들은 돌아갔고 난 엄마한테 또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시무룩해 있으니 엄마가 오랜만에 짜파게티를 끓여줬다. 난 삐져서 안 먹는다고 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먹다가 냄비에 뭍은 짜장 양념까지도 혀로 싹싹 핥아먹었다. 


엄마는 일요일에는 신발공장에 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짜파게티를 먹으면 엄마는 묵은지를 물에 씻거나 무짠지를 올려 물만밥을 먹었다. 엄마는 그게 짜파게티보다 훨씬 맛있다고 했다.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밥을 다 먹으면 엄마는 후식으로 맥심 커피 두 스푼 프리마 한 스푼 설탕 두 스푼을 밀양도자기 커피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빠다코코넛과 함께 먹었다. 커피에 빠다코코넛을 찍어 먹는 게 최신 유행이라고 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실로폰 '' 소리와 함께 참가자가 탈락하면 엄마는 신나게 웃으면서 근아 근아 저거 봐라 저거 봐라 웃기제? 했다. 하나도 안 웃겼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시상식까지 다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꼭 도중에 잠이 들었다. 왜 엄마는 신나는 일요일에 놀지 않고 저렇게 낮잠만 잘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보새벽 6시에 집을 나서는 아빠 밥을 차려주느라. 누나와 내 도시락을 싸느라. 허구한 날 오늘 잔업한다는 전화를 하고 밤 9시가 돼서야 집에 오느라 밀린 잠이 참 많았겠구나 싶다. 


송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난 엄마의 밀양도자기에 담긴 커피와 빠다코코넛 그리고 낮잠을 자느라 오르락내리락 하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약 3주간 벌어졌던 종교전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다행히도 아무 우환 없이 그로부터 2년이 흘렀고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첫 우리 집이었다.





난 종교란에 무교라고 기입한다.

종교는 자유다. 그냥 에피소드다.

종교, 정치 이런 왈가왈부는 되도록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믿을 사람 믿고 말 사람은 말고

어떤 계기로 내가 내년부터

교회에 나갈지도 절에 다닐 지도

세상 일은 모를 일이다.

그땐 또 내 자유대로 하면 되는 거다.


난 그저 부디 전 세계의 종교전쟁들도

통닭으로 원만한 합의와 이해가

이루어지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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