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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Sep 10. 2023


"엄마 내 발도 좀 씻겨도 왜 아빠 발만 씻겨주는데"


"하이고 니 발이랑 아빠 발이랑 어디 갔나. 아빠는 하루종일 열심히 돈 벌어온다고 고생했다이가. 니도 엄마 호강하구로 저기 어디 가서 돈 벌어 온나. 그러면 얼씨구나 니 발도 광나구로 씻겨 주꾸마."


"우와, 돈 못 버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됐다마 나는 그냥 안 씻을란다."


"야가 또 잔머리 굴린데이. 니 안 씻으면 밥 안 준데이. 퍼뜩 씻어라!"


"나도 씻겨 달라고!"


"나가서 돈 벌어오라니까!"


아빠는 엄마와 나의 대화를 졸린 눈으로 듣고 있었다.


"니도 얼른 장가가서 니 마누라한테 발 씻겨 달라해라. 왜 남의 마누라한테 그라고 있노! 하하하하하!"


아빠가 말했다.


덥수룩한 수염, 헝클어진 머리, 먼지가 수북한 작업복과 진흙이 잔뜩 붙은 작업화를 신고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엄마는 한 번씩 세숫대야에 물을 받고 아빠의 발을 손수 씻겨주었다.


"근데 아빠는 발톱이 왜 이상하게 생겼노?"


"아...... 아빠 발톱 이거 말이가? 이거는 아빠가 일하는데 철근이 아빠 발로 떨어져서 그때 다친거다이가. 아빠는 너그 공부시킨다고 이래 일하다가 다쳐도 또 일하러 나가고 그라는데 니는 공부 열심히 해야겠나? 안 해야겠나?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아나? 남 밑에 일하면서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이 말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큰소리 떵떵치고......"


병실 침대 위에 누운 아빠의 차가워진 발을 쓰다듬으니 어릴 적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고 발을 씻겨줬던 때가 떠올랐다.


아빠는 가만히 자고 있는 거 같은데

자는 게 아니란다.


흔들어 깨우면


"아이고 우리 근이 왔나"


하고 웃으며 말할 것 같은데

이제 말을 안한단다.


눈감고 편안하게 같은데 

자는 게 아니란다. 


아니란다......


아빠 발이 맞나 싶을 정도로 퉁퉁 부은 발이지만 일하다가 다쳐서 반만 남은 발톱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발톱을 어루만졌다.


이 퉁퉁 부은 발로 우리 가족 먹여 살린다고 얼마나 많이 걸어다녔을까. 가고 싶은 곳은 많이 못 밟고 먹고산다고 가기 싫은 곳 많이 밟고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진흙이 덕지덕지 붙은 작업화가 아닌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푹신한 구두 하나 사 드릴 걸. 일한다고 고생만 실컷한 애처로운 아빠 발을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주물러 드릴 걸 후회하며 아빠의 차가워진 발을 자꾸 어루만졌다.


 "아빠! 이제 퉁퉁 붓고 발톱도 깨져서 못생긴 발에서 나와가꼬 마음껏 훨훨 날아다녀라! 좁고 아픈 발 안에서 많이 힘들었제. 이제는 아프지 마라. 내가 말도 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아빠 속만 썩혀서 진짜로 미안하다. 내가 돈도 많이 벌어서 해외여행도 많이 보내고 특급호텔 같은 데서 엄마랑 좋은 것도 맛있는 것도 많이 대접하그랬어야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내가 진짜 미안하데이. 사랑한다는 말은 끝내 하지도 못했네. 그게 제일 미안하네. 아빠 사랑한데이. 내가 진짜로 많이 사랑한데이. 아빠 잘 가래이. 아빠 좋은데 가야된데이  좋은데 가야된데이."


 싸늘해진 아빠의 발을 붙잡고 그렇게 한참을 다.






문득


내 발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걸었던 많은 곳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문득


그들도 걷고 있겠지

나도 걷고 있겠지


문득


어쩌면 우린 모두

헤어짐을 향해 참 열심히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득


미안해지고


문득


고마워지고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들

그리워지는 사람들


아빠가 떠난 열세 번째 밤에


문득 스치는 많은 생각들

문득 스치는 많은 반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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